한국 축구 역사의 현장서 인천 시민구단 꽃 피우다

범시민위 구성, 2002 월드컵 인천 유치 심혈
문학구장 포르투갈전 박지성 골로 16강행
경기 기간 외국인·시민 참여 문화 행사 운영

열기는 K리그로…2003년 인천Utd 창단
2005년 준우승…2012년 숭의아레나 이전
'시설 좋은 구장 운영' 시민 구단 모범 사례
▲ 2002년 6월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의 조별 예선  경기 경기장 모습. /연합뉴스
▲ 2002년 6월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의 조별 예선 경기 경기장 모습. /연합뉴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포르투갈에 극적인 2대1 역전승을 거두고 16강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8강에서 세계 1위 브라질에 1대4로 아쉽게 졌으나,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와 땀방울에 국민들은 한마음이 되어 뜨거운 찬사를 아낌없이 보냈다. 그런데, 바로 20년 전, 공교롭게도 한국과 포르투갈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예선 16강 진출을 가르는 최종전에서 맞대결을 펼쳤는데 바로 그 장소가 인천문학월드컵경기장이었다.

온 국민을 가장 뜨겁게 만든 2002 한일 월드컵은 서울, 인천, 부산, 광주, 대구, 울산, 대전, 전주, 서귀포에서 개최되었다. 개막 행사는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으며, 한국 대표팀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16강을 넘어 4강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 2002년 6월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의 조별 예선  경기 박지성 골 장면. /연합뉴스
▲ 2002년 6월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의 조별 예선 경기 박지성 골 장면. /연합뉴스

우리나라 최초로 월드컵 16강 진출의 역사는 바로 2002년 6월 14일 20시 30분, 인천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D조 예선 3차전 대한민국 대 포르투갈의 경기였다. 당시 대한민국은 1승 1무의 기록으로 승점 4점, 포르투갈은 1승 1패의 성적으로 승점 3점을 기록 중인 상황에서 서로 승리를 따내야 16강을 확정 짓는 중요한 경기였다. 0 대 0의 팽팽한 긴장 속에 후반 24분경,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골 퍼스트 뒤쪽으로 길게 때린 크로스가 박지성 선수에게 정확히 갔고, 박 선수는 크로스로 온 공을 가슴트래핑을 한 후 오른발로 수비수를 제치고 왼발로 멋진 골을 만들었고 추가시간 3분 후 인천문학월드컵경기장에 종료 휘슬이 울려 퍼지며 대한민국은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호날두, 메시급 선수였던 피구, 파울루 벤투 감독을 비롯한 포르투갈 선수들은 경기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고, 한국은 이탈리아와 스페인마저 무너뜨리고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출했다.

▲ 2002년 6월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의 조별 예선 16강 진출 뒤 환호하는 선수들. /연합뉴스
▲ 2002년 6월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의 조별 예선 16강 진출 뒤 환호하는 선수들. /연합뉴스

인천시는 월드컵 개최도시 확정이전부터 범시민유치추진위원회를 구성해가며 월드컵대회를 유치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시민 관심도를 제고하기 위해 2002년 월드컵 유치 기념 자전거타기 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였다. 인천시는 다채로운 홍보프로그램으로 지구촌 최대 스포츠축제 월드컵을 전 시민들에게 인식하도록 하였고, 개최가 확정된 이후에는 월드컵 개최를 관광, 도시 이미지 조성 쪽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인천시는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월드컵 추진기획팀을 운영하였고 월드컵준비위원회를 구성 운영하여 범시민적 관심을 유도하는 홍보 역할을 담당하며 조직위원회와의 업무협조를 담당하였다.

월드컵이라는 최대의 국제 스포츠행사를 개최하는 문화시민으로서의 인천시민사회의 자발적 노력은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의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었다. 실제로 2001년 말, 10개 월드컵 개최도시를 대상으로 문화의식 조사를 벌인 결과 인천시가 1위를 차지했다. 인천시가 문화의식 1위를 차지한 것은 연고 프로축구팀이 없고 축구열기도 타 도시에 비해 낮은데도 불구하고 월드컵 성공개최를 위한 시민열망이 크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민간 차원의 월드컵 축구대회 문화시민운동협의회도 2001년 7월 조직되어 월드컵에 대한 시민 참여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국민윤리 질서 도덕성 함양 등 문화시민운동을 펼치는 역할을 맡았다.

월드컵 인천경기 기간인 2002년 6월 9일 부터 15일까지 월드컵문학경기장과 주변 야외공간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등에서 시민과 외국관광객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진행되었다. '가자! 국제도시로, 인천과의 만남·세계와의 만남'이란 주제로 허브공항과 첨단산업의 중심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인천에서 세계 공통언어인 춤과 노래의 만남을 통해 인류화합과 세계평화를 여는 축제의 장이 열렸다. 또한 문학경기장 주변과 인천 30개소를 문화벨트로 지정해 6월9일부터 15일까지 클라운 마임과 행위예술 난타공연이 5월31일부터 6월30일까지 각종 공연과 전시, 기초자치단체별 지역축제, 지역문화예술단체의 자체 행사가 열렸다. 인천월드컵 문화축제 메인행사로는 6월9일부터 15일까지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세계민속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인천세계민속예술제가 열렸으며, 부대행사로는 인천을 방문하는 중국관광객들의 볼거리 제공을 위한 중국인 장기자랑과 중국인의 날 지정 거리축제, 한류열풍 연예인 공연 등 중국관광객 유치 특별 이벤트를 개최하였다. 그 외에도 인천의 역사성과 특성을 살린 창작극 '비류왕국' 공연, 인천 '심청' 축제, 여성극 '하늘을 여는 날개옷'이 각각 문예회관에서 공연되어 한국과 인천의 문화를 시민들과 관광객에게 제공해 해 명실상부한 지구촌 최대축제에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였다.

뜨거웠던 월드컵이 끝나고 그 열기는 고스란히 K리그에 전해져 2003년에 인천 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한 인천연고의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단이 창단되었다. 인천유나이티드의 창단은 2002년 월드컵으로 인한 인천의 축구열풍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으며 인천문학월드컵경기장의 활용방안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인천 시민구단으로 인기를 얻던 인천 유나이티드는 비록 우승경험은 없지만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꾸준한 기록을 내는 구단이었지만 바로 월드컵 경기장의 큰 크기로 인해 꽉 찬 관중석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고 축구 전용 경기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팬들과 선수들 간의 먼 거리는 아쉬움이 있었다.

결국 인천시에서 새로운 축구전용경기장을 건설하여 2012년 시즌을 앞두고 인천 유나이티드는 숭의아레나를 홈 경기장으로 옮기게 된다. 시민구단이란 연고지인 시민에게 공개 주식매매 등의 수단으로 자금을 모아 창설한 구단, 혹은 연고지의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하며 연고지의 기업에게 광고를 유치하는 형식으로 운영하는 구단으로 우리나라는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 이후부터 많은 시민구단들이 창단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까지 10개의 시민구단이 창단되었다.

▲ 2004년 3월1일 인천 문학경기장에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 창단 첫 경기, 일본 감바 오사카와 친선 시합을 치르고 있다./인천유나이티드
▲ 2004년 3월1일 인천 문학경기장에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 창단 첫 경기, 일본 감바 오사카와 친선 시합을 치르고 있다./인천유나이티드

인천을 연고로 하는 시민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 FC도 이러한 과정에서 창단되었다. 인천유나이티드 FC는 한일월드컵을 치르고 남은 자금 30억과 기업자금 유치, 시민주 공모 등을 통해 150억 원의 초기자금으로 2003년 창단되었다. 2004년부터 K리그에 참가하였으며, 2005년에는 창단 1년 만에 전후기 통합 1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해 리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2006년에는 이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의 개봉으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시민구단의 돌풍을 일으켰다. 거기에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으로 흑자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크지는 않지만 시설 좋은 축구전용구장을 운영하고 있는 등 시민구단으로서는 모범적인 구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렇듯 2002년 한일월드컵 인천 개최는 한국 월드컵 축구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고, 자발적 인천 시민문화 활동의 초석이 된 중요한 평가 받을 수 있으며, 인천 시민이 주주로 참여한 시민축구단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월드컵과 같은 대규모 국제스포츠 이벤트는 개최도시에 관광객유입과 소비 촉진과 같은 경제적 파급 효과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도시 브랜드와 문화를 홍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시민통합 및 자부심 형성, 선진 시민 문화 의식 구축 등의 여러 무형의 효과도 증가시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인천생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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