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컷 - 인생을 장담할 수 있나?

인생은 참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네 부모님 세대가 보면 ‘젊은 애가 뭘 알아’라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삼십년 남짓 살아온 성아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때로는 나에게만 왜 이렇게 가혹한가 싶어 남몰래 베개에 주목을 꽂고,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행운과 행복에 입꼬리 한쪽을 슬며시 들어 올린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도 그랬다.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냅두고 뺑뺑이 추첨에서 떨어져, 거북이 등딱지 같은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1시간 거리 학교를 3년간 오갔다. 

수능 날에는 평소 한 번도 없었던 실수로 시험을 망쳤다. ‘최소 인서울은 하겠지’라고 자신했던 성아는 간신히 턱걸이로 수도권 한 대학에 입학했다.

취업도 쉽지 않았다. 유명하지 않은 대학 졸업장에 인문대 출신 성아가 비집고 들어가야 할 취업의 문은 너무 좁았다. 몇 점 안 되는 토익점수와 시험 때만 반짝 외워 딴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평생 쓰일 일이 있는지 모르겠는 한국사 자격증은 성아 말고도 문과 취업생들의 기본 중 기본이었다. ‘이러다 길거리에 나앉는 거 아냐?’ 싶을 때 운 좋게 생각지도 않은 합격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대학 졸업 전 취업해 10년 가까이 나름대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성아는 자신에게 찾아온 인생 최고의 행운으로 지금의 남편 준수를 만난 일을 꼽는다. 결혼에 회의감을 가졌던 성아의 마음을 연애 1년 만에 바꿔놨다. 결혼을 결심한 성아는 ‘인생은 역시 생각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곱씹었다.

다정다감하고 온유한 성품의 준수는 성아가 바라는 이상형에 딱 맞아 떨어졌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자신에 비해 감정 기복이 심한 성아를 늘 다독여주며 신뢰감을 주었다. 준수는 그런 성아가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돌고 돌아 만난 둘은 성아가 31살, 준수가 35살 때 가정을 이뤘다.

서울에서 태어난 성아와 경기도에서 태어난 준수는 부모님들이 결혼 초반 일찌감치 인천에 자리를 잡으면서 30년 가까이 인천에서 살았다.

성아는 서구·부평구·계양구로 묶인 북부권에, 준수는 연수구·미추홀구·남동구 등 남부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누군가 고향을 물어보면 스스럼없이 ‘인천‘이라고 답한다. “내 기억의 시작이 인천인데, 태어난 곳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둘은 입을 모았다.

인천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둘은 자연스레 인천에 신혼집을 마련하기로 했다. 양가 부모님들이 인천에 계셨고, 익숙한 지역을 떠나 굳이 타 지역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값은 인천 정착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신혼집은 조금 더 저렴한 성아가 자란 동네에 마련하기로 했다.

경기도 남부권에서 일하던 준수는 신혼집 위치가 정해지고 이직을 고민하다 인천 북부권으로 직장을 옮겼다.

준수가 살던 연수구에서 경기도 남부권인 회사까지는 넉넉히 40분이면 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신혼집에서 준수 회사까지는 두 배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인천 북부권에서 남부권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악명높은 장수IC를 거쳐야 했다. 평일 한가한 낮에도 40분은 기본으로 걸리는 구간이다. 출퇴근 시간이라도 겹치면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붉은색이 노란색으로 바뀌기만 기다리며 거북이 운전을 한다. 신혼집에서 출퇴근한다면 그 지루한 구간을 거쳐 남부권에 도착해 다시 경기도 회사까지 온 만큼을 달려야 했다. 준수는 퇴근 후 신혼집이 있는 인천 북부권까지 며칠을 오가다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직 결정하기까지 별로 고민 안 했어. 퇴근하고 성아 동네까지 자주 오갔는데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만 2시간이더라고. 인천에 직장 있는 성아 퇴근하면 집에서 혼자 나만 목 빠져라 기다릴 텐데. 1시간이라도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같이 저녁 먹는 건 고사하고 야식 먹게 생겼더라고. 다행히 내 직업군이 이직이 자유롭기도 하고 경기도를 꼭 고집할 이유도 없었거든. 그래서 재빨리 이직 준비해서 인천으로 직장 옮겼지. 아, 내가 살던 연수구에 신혼집 구하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대출 포함해 우리가 가진 예산보다 많이 비쌌어. 성아네 동네로 가는 게 그 당시 여러모로 합리적이었어. 이직도 잘했다 싶어. 가족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잖아."

지역을 결정하고 신혼집을 얻기까지 조금 여유롭게 생각하기로 했다. 익숙한 지역이다 보니 대충 시세도 알겠다, 급할 것 없이 천천히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취직해 꼬박꼬박 모아놓은 몇 푼에 은행 도움 묵직하게 얹으면 두 명쯤 발 뻗고 살 보금자리 마련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당시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가 2%대였으니, 맞벌이인 성아와 준수가 아껴 쓰면 환갑쯤엔 다 갚을 거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다 마음이 조급해진 건 2020년 3월 초. 서울 집값이 폭등한다는 뉴스가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왔고, 풍선효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면 다른 곳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현상)으로 서울 인근인 인천과 경기도 일부에서도 부동산 상승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말들이 돌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확실히 전 실거래가에 비해 매물들 가격이 높았어. 불과 몇 개월 차이인데 몇천만원씩 뛰었다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한두 달이라도 먼저 집 알아봤겠지. 5년 전이나 몇 달 전 매물 가격이나 비슷해서 오를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발 등에 불 떨어져서 준수랑 시간 날 때마다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녔어.”

성아와 준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예산 범위 밖으로 동네 집값이 삐죽삐죽 삐져나왔다. 지금은 몇 천만 원이지만 몇 억으로 오르는 건 순식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자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성아를 위해 최대한 지하철역 가까운 곳에 신혼집을 마련하려 했던 계획은, 치솟는 집값에 밀려 “환승 할인도 되는데 버스 한 번 타고 (역까지) 가지 뭐”로 변경됐다. 

3월 중순, 집값이 최고점을 찍기 전 성아와 준수는 준공 27년 된 아파트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2컷 - 내 집은 여기인데, 내 마음은 저 아파트에

성아와 준수네 방 창문을 열면 횡단보도 하나 사이에 대단지 아파트가 보인다. 복도식 20평대부터 계단식 50평대까지 다양한 평형으로 구성됐다. 요즘 신도시에 지어지는 신축 아파트 빼고는 구경하기 힘든 대형평수가 이들 원도심 동네 곳곳에 포진됐다. 삼대가 함께 사는 모습 흔했던 1990년대에 지어진 대단지 형님 아파트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들 아파트 단지에서 한 블록 외곽으로 빠진 성아·준수네는 500세대 남짓으로 국민 평형인 30평대가 주를 이룬다. 

핵가족인 3∼4인이 살기에 부족함 없는 공간이지만, 가족구성원의 수가 ‘5’를 넘어가면 조금은 빡빡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요즘 성아·준수네가 그렇다.

성아와 준수는 결혼 후 두 달 만에 아이를 임신했다. 벌써 그 아이가 두 돌을 넘겼다. 활발한 사내아이는 이 방 저 방을 누비며 매일 매일 에너지 총량을 갱신한다.

출산 당시 15시간 넘는 진통에, 과다출혈로 인한 자궁 적출 위험까지(다행히(?) 과다출혈에서 끝났다) 겪었던 성아는 출산 전의 건강을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끊어지는 허리 통증에 매일 시큰거리는 손목, 안 아픈데 없이 모든 뼈가 욱신거렸다. 애 낳으면서 뼈가 갈린 거 아닌가 싶었다.

책과 뉴스에서만 보던 산후우울증이 성아에게도 찾아왔다. 몸과 마음이 함께 욱신거렸다. 맞벌이에 바쁜 성아·준수를 위해 성아 부모님이 합가를 결심했다.

처음에는 27평짜리 성아 부모님 집과 30평대 성아·준수네 집을 팔아 50평대 아파트로 가기로 했다. 두 집을 내놓은 시기는 2022년 5월. 끝모르고 치솟던 부동산이 높은 금리에 반비례로 차츰 떨어지는 때였다. 

운 좋게 그해 여름 성아 부모님의 집은 사들였던 금액보다 몇 천만 원 더 올려 매도에 성공했다. 반면 천만 원 단위로 낮게 불러도 성아·준수 집은 나가지 않았다. 

몇 주에 한 번씩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있었어도, 매수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알겠더라고. 크게 나쁠 거는 없는데 또 크게 좋을 것 없는 집이거든. 지하철역에서 멀기도 하고. 베란다 창문 열면 차들 지나가는 소리 크게 들리지, 오래됐지, 적당히 리모델링해서 살긴 좋지만, 이 집 살 돈이면 좀 더 모아서 한 블록 위에 있는 집 사지. 나 같아도 그러겠어. 우리야 돈 없는 신혼인지라 있는 예산에 맞춰 감사한 마음으로 샀지만.”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는’ 성아·준수네 집은 끝내 부모님 집 잔금날까지도 팔리지 않았다. 30평대 아파트에는 성아 부모님과 성아·준수, 세 살짜리 아들, 사람 나이로 치면 팔순에 가까운 노견까지 ‘5인 1견’이 북적이며 산다. 그 사이 아파트는 최고점을 찍고 다시 1억 원이 떨어졌다. 

“제일 올랐을 때 잘 팔렸으면 두 집 합치고 대출 좀 받아서 50평 아파트 들어갈 수 있었거든. 근데 지금 내 집은 떨어지고 이상하게 대형 평수 아파트는 크게 안 떨어졌어. 이제 거기 갈라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대출받아야 해. 오히려 대형평수가 귀해서 그런가 우리집보다 덜 떨어지더라고. 아, 물론 거기 아파트 위치가 더 좋아. 그래서 가격 방어가 되는 건가?”

성아·준수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앞으로 5년 동안 ‘긴축정책’을 펴기로 했다. 목표는 앞서 말한 한 블록 위 대단지 아파트 입성. 좁은 평형에서 업그레이드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미 성아·준수네 대부분의 생활반경이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아들이 다니는 민간 어린이집은 그 아파트 내에 있다. 돌 무렵 현재 사는 아파트 단지 내 가정어린이집을 보냈지만, 원아가 적어 또래가 많은 민간 어린이집으로 올해 3월부터 옮겼다. 활동량 많은 아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잔디 마당과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이 있는 그곳이 부부 마음에 꼭 들었다. 

향후 배정받는 초등학교도 그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성인 기준 10걸음만 걸으면 도착한다. 현재 집에서는 6차선 큰 횡단보도와 2차선 작은 횡단보도 2개를 포함해 10분 정도를 걸어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 

성아와 준수가 자주 가는 마트와 단골 미용실, 수다 떨기 좋은 널찍한 프렌차이즈 카페, 가끔 허리 물리치료 하러 가는 정형외과와 약국까지 그 대단지 아파트 맞은편 상가에 즐겨찾는 시설이 밀집해있다. 지금 집에서는 그야말로 잠만 자는 셈이다.

“그냥 이 동네에서 조금 더 편하게 살고 싶은데 그 몇억 더 얹는 게 쉽나. 내 동선이 효율적일수록, 누리는 게 편할수록 그 아파트값은 비싸더라고. 돈 모아야지. 근데 300만원 남짓 벌어 언제 모아 이사하려나 싶어. 지금 사는 집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집인 건 아닐지…. 지금 집도 좋긴 한데, 또 마냥 좋지만은 않으니깐. 어떻게 다들 비싼 집들 턱턱 사들이는지 모르겠어.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로또 사. 우리 월급으로는 택도 없잖아. 5000원 되기도 힘든데 5억 넘는 집은 무슨 돈으로 사냐고.”

 

 

3컷 - 다자녀 좋은 거 누가 모르냐고

외동딸로 자란 성아와 외동아들로 자란 준수는 자녀계획에 대한 뜻이 같았다. ‘이왕이면 두 명 이상은 낳자.’ 외동으로 자라며 누리는 것도 많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성아 어릴 적 주변 친구들은 늘 형제와 투덕거렸다. 냉장고에 숨겨둔 과자를 먹었다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오빠 물건 건드린 죄로 동생이 아끼는 긴 머리 바비인형 미미는 곧 군에 입대하는 듯 주방 가위에 머리 한 줌을 잃고 까까머리가 됐다. “우리 오빠 진짜 싫어”라는 친구 볼멘소리에 “난 아무도 없어 다행이다”며 속으로 안도했다.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친구가 하굣길에 4학년 언니한테 한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자기를 째려봤다나. 그 소리 들은 친구의 두 살 터울 오빠는 발도 닿지 않은 높은 안장의 자전거를 하나씩 낀 친구 3명을 대동해 그 언니를 찾겠다고 씩씩거렸다. 성아는 그날 저녁밥을 먹으며 “나도 오빠 갖고 싶어“라며 툴툴거렸다.

"성아도 나도 혼자이다 보니 이왕이면 두 명은 낳자고 했었어. 지금은 외동으로 마음 굳혔어. 무엇보다 성아가 다시 출산하는 일도 걱정되고 육아도 만만치 않잖아. 가끔 성아가 아들 있으니 딸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냥 좋겠다가 다야. 애 한 명 키우는데 성아랑 나, 부모님까지 모두가 달라붙어야 해. 여기서 한 명 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야.”

“가끔 한 명 더 있었으면 싶을 때가 있어. 그래서 두 명 이상 낳은 지인들한테 물어본단 말야. 그러면 다들 힘들다고 해. 두 명이니 두 배 힘들 것 같지만 네 배 힘들다고. 제곱으로 힘들대. 그래도 결론은 둘이라 좋대. 아주 어렸을 때는 손 많이 가도 조금만 키워놓으면 자기들끼리 놀고 의지한다고.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하대. 나중에 자기들 떠나면 피붙이 한 명이라도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고. 커보니 그렇잖아. 언제 떠날지 모르는 마당에 혼자 남을 자식 걱정되고.”

성아는 몇 달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느닷없이 둘째에 대한 진지하게 고민했다.

3남매 중 둘째인 성아 엄마는 위로 언니와 아래 남동생을 뒀다. 20년 전 폐암으로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몇 년 전 첫째 딸인 언니가 환갑도 안 돼 암으로 소천했다. 남은 건 두 살 터울의 남동생 하나. 쓸쓸했을 그 장례식장에서 성아 엄마와 삼촌은 어렸을 적 부모님과의 기분 좋은 추억을 하나씩 꺼내며 슬픔을 달랬다. 그 모습이 성아 마음에 콕 박혔다.

“장례식 끝나고 준수랑 얘기했어. 나중에 우리 둘 다 죽고 나면 아들 혼자 그 넓은 장례식장 지켜야 할 텐데 생각만 해도 너무 속상하다고. 우리는 형제들도 없잖아. 그러니 함께해 줄 아들의 사촌들도 없고. 애초에 이런저런 상황 생각하고 고민해서 두 명 이상 낳자고 한 건데 막상 결혼해서 보니 지금 상황에서는 부모 욕심인 거지. 일단 두 명 키울 자신이 없어.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몸도 마음도 힘든데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텨. 또 반복될 텐데. 경제적 뒷받침도 안 돼. 남편이랑 나랑 대기업 다니는 것도 아니고 중소기업 다녀서 모아봤자야. 애들 한 명 키우는 데 몇억씩 들어간다잖아. 요즘 학교 교복도 급식도 무료라고 해도 사교육 아예 안 시키느냐고. 당장 초등학교 들어가면 점심시간이면 끝나는데, 우리 퇴근할 때까지 학원 뺑뺑이 돌려야지 뭐. 그때면 부모님들 칠순이 코앞인데 힘들셔서 맡길 수도 없어. 돌봄교실? 그것도 경쟁률 어마어마하다는데 뭐. 방법 없어. 있는 애라도 잘 키워야지. 한 명 키우기도 벅찬 세상이잖아. 저출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

 

 

4컷 - 인천을 보는 눈이 시려

성아와 띠동갑 차이 나는 사촌 언니 주미는 20대 초반 첫사랑과 결혼해 제주도가 고향인 남편을 따라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평생 인천에서만 살던 주미는 첫째 딸이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다시 인천행을 택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보다 풍부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인천이 답이었다고 했다. 당시 학생이었던 성아는 다시 돌아올 만큼 인천이 살기 좋은 곳이었구나 싶었다.

요즘 성아는 그때 주미의 선택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자리 잡기 수월했고 익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육지행이 먼저였고 후보지를 고르다 보니 친정과 친구들이 있는 인천이 자연스레 최종후보지가 된 것이라고.

이 추측은 주변 인물들의 ‘인천 엑소더스(exodus·탈출)’를 통해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성아의 고등학교 친구 희연과 정미는 인천을 떠나 경기도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인천 지하철을 타는 일은 아직 인천에 남은 지인들을 만나러 갈 때뿐이다. 인천에서 살 일은 앞으로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왜라는 질문에 ‘굳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나는 인천 떠나서 살아본 적 없으니 지역마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준수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그런가? 특별히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싶은 이유도 없거든. 둘 다 직장이 인천인 영향도 있고. 근데 인천에 살다가 여러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 나간 지인들 말 들어보면 인천으로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고 하더라. 같은 값이면 인천보다는 경기도로 가겠다고 하고. 다들 그런 거 보면 인천보다 뛰어난 다른 지역의 장점이 있나?"

인천을 ‘굳이’로 꼽는 건 인천 출신 지인들뿐 아니다. 평생 한 번 인천에서 살아본 적 없는 타지역 출신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몇 년 전, 서울에서 살다 저렴한 외곽으로 빠지겠다는 민정에 성아는 인천을 추천했다. 그 정도 예산이면 송도·청라 등 인천에서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민정은 고민하다 경기도를 택했다. ‘동네가 낯선 것도 있는데, 애들 키우는 것도 고려해야 하고’ 등의 이유가 붙었다.

인천이 좋은, 더 솔직하자면 인천이 특별히 나쁘지 않은 성아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그런 말 있잖아. 까도 내가 깐다. 인천 욕해도 인천시민인 내가 하지, 남들이 하면 묘하게 기분 나쁜 거. 물론 인천이랑 타지역 둘 다 살아보고 인천에 대해 평가할 수는 있어. 근데 인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인천이 어쩌니저쩌니 말하면 ‘니가 뭘 알아’ 이런 생각 든다니깐?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한데 왜 유독 인천에 박한가 싶을 때가 많아. 무슨 사건만 터지면 ‘인천 아니냐? 역시 마계인천이다’ 이런 댓글들 달리잖아. 아 맞아, 몇 년 전에는 ‘이부망천’이니 뭐니 정치인이 망언을 하질 않나. 내가 살아보지도 않은 동네에 대해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냐고. 하여튼 밖에서 바라보는 인천 이미지는 확실히 호(好)는 아닌 거 같아. 그럴 때마다 인천 안 개구리는 속상하다고.”

/옮긴이 김원진·곽안나



관련기사
[웹툰 신혼N컷] Ep.5 성아·준수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배민경 작가는 순수미술을 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게 됐다고 한다.지금은 일러스트레이션 박사 과정을 공부하며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인천일보와의 협업에 대해선 “협업료를 지불한다고 하기에 흔쾌히 응했다”고 심플하게 말하는 작가다.인스타 아이디는 ‘bmk_draw’이며, 여기에선 배민경 작가의 일상이 담긴 네컷만화들을 즐길 수 있다./김원진·곽안나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신혼N컷] 5-1.살만한 매력 없는 인천 인천일보는 <신혼N컷> 기획을 통해 결혼과 함께 이런저런 이유로 인천에 젖어든, 인천을 떠난, 혹은 인천에 남아있는 신혼부부들의 다양한 삶의 한 컷 한 컷을 심층 인터뷰와 작가들의 그림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기획의 중반쯤 되는 5편에서는 2030 MZ 세대가 바라보는 '인천'은 어떤지 들여다보려 한다. 이를 위해 인천일보는 지난 2주간 구글폼을 활용해 20·30세대 2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이들의 답변이 절대적이라거나 현상을 일반화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청년 세대가 신혼을 인천에 대입했을 때 어떤 [신혼N컷] 5-2.그래서 변해야 할 인천 <신혼N컷> 다섯번 째 주인공인 성아와 준수는 결혼 후 인천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예산에 맞춰 비교적 저렴한 동네를 후보지로 찍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 동네 서울 집값이 치솟으며 인천 집값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결국 돈에 맞춰 신혼집을 구하다 보니, 역세권과 주요 상권에서 멀어져 조금은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집보다 학교도 마트도 병원도 모두 갖춘 한 블록 위 대단지 아파트에 마음을 빼앗겨 '기필코 입성하리라' 다짐하며 허리를 졸라맨다.두 명 이상의 자녀 계획은 전면 수정됐다. 경 [적는 신혼네컷] Ep.6 정혜·주원 1컷-아침 7시30분쯤 일어나 회사 앞 스타벅스에서오늘의 커피에 파니니를 먹는 삶이란 AM 6:00알람 소리에 꿈에서 깼다. 머리맡에 둔 아이폰에서 ‘중단’ 버튼을 보지도 않고 눌러 아침 알람을 껐다. 분명 몇 분 전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했었는데 그게 다 헛짓이었다. 정혜는 꿈속에서 출근 준비하다가 진짜 아침을 맞이했다. 출근 준비하는 꿈을 꾼 거다.침대 옆 주원은 등을 돌리고, 고양이는 정혜의 다리 사이에서 아직 자고 있었다. 이불 속 포근함을 걷어치우고 나갈까 말까를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정혜는 학교 다닐 때도 일찍 학교까 [신혼N컷] 6-1.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기획 <신혼N컷> 마지막 주인공인 정혜, 주원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신혼 당사자들 사정 외에도 정혜의 엄마와 아빠인 선옥과 장우의 장면들이 담겨 있다.동인천역에서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 강남까지 출근하는 정혜. 그리고 아빠 장우는 정혜가 아기였을 때부터 버스 타고 부평역으로 가 종로까지 1호선으로 일을 다녔다.서울까지 출퇴근 3시간이라는 2대에 걸친 인천형 수난 외에도 젊은 사람들도 벅찬 육아를 2대째 수행하고 있는 선옥의 요즘도 조명했다. 선옥은 60대에 가까워지며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 몸이 예전 같지 않지만 [신혼N컷] 6-2.그대 손잡고 함께 간다면 좋겠네 월요병이 탄생한 배경이자 토요일마다 복권방 앞에 로또 줄이 길게 서는 이유고 때로는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도 밀접하게 관여하는 '가계소득' 문제는 신혼에겐 더욱 지엄한 존재다. 주택 마련에 혼인, 임신, 출산, 육아 등등, 살면서 이런 목돈 지출을 해본 적 없는 청년들이 말 그대로 돈 잔치에 시달리는 시기다. 안타깝게도 슬픈 소식이 있다. 인천 신혼 평균 가계소득은 광역시 가운데 꼴찌이자 전국에서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통계청이 작성한 '행정자료를 활용한 2021년 신혼부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혼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