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복수' 언제 끝날까

이스마일 카다레, 조국 알바니아 걱정
두 가문의 끔찍·부조리한 숙명 담아내
당신을 위한 책 한 권
▲ 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280쪽, 1만4000원 문학동네

“이건 끔찍하고 부조리하고 숙명적이야.”

태어날 때 이미 죽음이란 굴레 속에 살아야 한다면, 선천적 죽음이 아닌 후천적 죽음이 늘 도사린다면 그게 사는 것일까. 아니면 죽어가는 과정일까.

꼬리물기처럼 책을 읽는다. 최근 손을 떠난 책에서는 노벨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가 신랄하게 비판받았다. 또 그 속에 2019년 박경리 문학상을 받은 이스마일 카다레가 있었다.

그가 궁금했다. <부서진 사월>로 태어나 처음 알바니아 문학을 접했다.

책은 살인의 당위성으로 시작된다. “베리샤가의 그조르그가 제프 크리예키크를 쏘았어요!”라는 문장은 잔인하다. '알바니아' 산악 지대에 남아 있는 카눈(kanun)이라 불리는 관습법의 운명을 짊어진 그조르그. 그는 3월17일 살인한다. 그리고 “쏘는 것은 너지만 살인을 하는 것은 총이다”라는 전해지는 말로 위안을 삼지만 그는 그렇게 한 달 남은 죽음의 굴레 속에 빠진다. 피의 복수는 대베사라는 한 달의 휴전기를 준다.

'왜'라는 이유는 카눈 앞에 무모하다.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관습 속에 살아야 하는 알바니아 산악 지대의 삶은 복수가 복수를 낳을 뿐이다. 그렇게 70년 전 시작된 두 집안의 복수는 끝나지 않는다. 40여명이 피의 복수로 생을 잃었지만, 카눈은 계속된다. 그렇게 두 집안은 “살아 있는 자들이란 이승에서 살도록 허락받은 죽은 자들”이다. 피의 복수를 하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집안에서, 군중 속에서 창피를 당하고 쫓겨날 수밖에 없다.

피의 복수 위에 사는 사람도 있다.

카눈으로 피를 봤다면 핏값을 지불해야 한다. 핏값으로 대공의 지위를 유지하는 오로시성이다. 그곳은 카눈의 부조리가 세상에 짙어지는 것에 불만이다. 핏값이 나날이 줄기 때문이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카눈의 망상을 지적하는 장치로 베시안 부부를 등장시킨다. 조국 알바니아를 사랑하고 주변국의 위세를 걱정한다. “햄릿의 회의와 산악 지방의 저 햄릿의 회의는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피의 복수 앞에 덴마크 왕자와 알바니아 산기슭 청년의 고뇌의 무게는 같다. 그렇게 핏값을 지불하러 떠난 그조르그와 베시시 부인 디안의 찰나의 눈빛이 교환되고, 순간은 억겁처럼 두 눈빛 속에 여운과 아쉬움을 담는다.

그조르그에게 3월17일, 3월21일, 4월4일, 4월11일은 존재한다. 4월18일, 5월의 어느 날을 맞을 수 있을까. 유달리 그해 알바니아 산악의 봄은 늦게 찾아왔다.

내 삶 언저리에도 늘 동태복수법이 만연한다.

“네 피를 흘리고 싶지 않다면 남의 피를 흘리지 말라”는 말이 공허하다. 관습법은 사라졌지만, 법 테두리 속에서 교묘히 복수가 복수를 양산한다.

여전히 독재의 그늘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알바니아를 걱정하는 이스마일 카다레. 그의 조국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카눈의 야만적 행위는 언제쯤 사그라질까. “나는 비정상적 국가에서 정상적 문학을 창작한 셈이다”라는 이스마일 카다레의 발언에 숙연해진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은의 도시로 불리는 알바니아의 남부 지로카스트라에서 태어났다.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에 이어 <부러진 사월>을 통해 “그는 그의 조국 알바니아보다 유명하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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