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성우 경기본사 안양담당 기자.
▲ 노성우 경기본사 사회부 기자

1900년대 한인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피땀을 흘렸다. 미국 본토로 건너가 정착한 한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숱한 차별에 딛고 뿌리를 내렸다. 1960∼70년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독일, 중동에서 말 못 할 설움을 느끼며 외화를 벌어왔다. 그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됐다.

이제는 동남아 국가 등지에서 '코리안 드림'을 쫓아 한국 땅을 밟는 외국인들이 늘어났다. 이들도 과거 우리처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가족을 위해 이국땅에서 숱한 차별을 경험하며 미래를 꿈꾼다.

이달 4일 포천의 한 돼지농장에서 60대 태국인 노동자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 역시 고국에 있는 아내와 아들을 위해 숨조차 쉬기 힘든 돼지농장에서 한 달 180만원의 임금을 받고 10년을 일했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이 취업하기 꺼리는 3D 업종에 주로 취업한다. 체류기간이 한정돼 있다 보니 돈을 더 벌기 위해 불법체류를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아마 과거의 우리 한인들도 그랬을 것이다.

지난 11일 A씨의 부인이 남편의 장례를 치르려고 홀로 한국 땅을 밟았다. 취재를 위해 장례식장을 찾았다가 포천지역 몇몇 인사의 대화를 귀동냥하게 됐다.

“캄보디아나 베트남인들은 청소를 자주 했대요. 태국 분들은 청소를 잘 안 하신대…”, “(방안에) 옷 같은 게 쌓여 있잖아. 그건 청소를 안 해서 옷 같은 것이 늘어나서 그런 거지”, “태국, 네팔 사람 방을 들여다보면 천지차이예요”란 말들이었다.

장례식장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과거 한인들도 타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았을 거란 생각을 하니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동시에 이를 버텨낸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노성우 경기본사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