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석 언론인.<br>
▲ 신용석 언론인.<br>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는 신념으로 의료인 출신으로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다가 서거한 이종욱(1945~2006) 박사는 라오스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고 준비하며 몇 차례 라오스를 찾았을 때 지도층 인사들은 이종욱 프로젝트에 대해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2010년 케올라 주한 라오스 대사로부터 우호훈장을 받을 때도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를 언급하던 기억이 난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이제는 도움을 주기 위해 2009년에 창립된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는 개발도상국 의료인들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이 함께 만든 재단이다. 그동안 29개국 840여명의 의료전문가가 주로 서울대 의대에서 연수했고 라오스에서만 160여명이 연수를 수료했다. 내분비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최영길 교수는 “우리가 받은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혜택을 이종욱 프로젝트로 보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5년부터 1961년까지 계속된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미국의 국제협력청(ICA)이 전후 재건을 위해 한국의 공학, 의학, 농학 부문의 인프라 개선을 위해 주도한 개발 원조였다. 집행기관이 된 미네소타 대학에서는 59명의 교수와 전문인력을 서울대에 파견했고 226명의 교수가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특히 우리나라 의학계의 비약적인 발전에 기여했고 ICA가 집행했던 33개 피원조국 계획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종욱 재단이 설립된 같은 해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 중북부에 있는 미네소타주와 우리나라의 인연은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되었다. 인천 상륙작전에 투입된 미 해병1사단은 동해 쪽으로 이동하여 함경도 지역을 지나 압록강으로 진군 중 혹독한 추위와 중국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고전했다. 처절한 장진호 전투에서만도 1만여명의 사상자와 7000여명의 동상(凍傷) 피해자가 속출했다. 해병사단 병사 중에는 미네소타주 출신이 많았는데 미국서도 손꼽히는 추운 지방 출신 병사들도 함경도 강추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 같은 미네소타와 한국과의 인연은 전쟁고아의 입양으로도 연결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미네소타 입양아의 50%가 한국 출신으로 2만여명이 넘고 인구 비율로도 미국 50개 중 가장 많은 수치다. 몇 해 전 서거한 한국 고아의 대모였던 심현숙 여사가 별세했을 때는 <뉴욕타임스>까지 부음기사를 크게 게재했다. 미네소타주를 몇 차례 찾았을 때 만났던 <미네아폴리스 스타 트리뷴>의 안더슨 편집자는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한국이 질 좋은 자동차와 핸드폰을 수출하고 있어 미네소타 주민들이 기뻐하고 있다”고 했다.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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