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9월 칠레에서 살바도르 아옌데 사회당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전 세계의 관심은 라틴 아메리카로 집중되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친미 독재정권을 타도하여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 그와 함께했던 체 게바라가 제3세계에 해방의 꿈을 실현하려다 볼리비아에서 사살당하면서 절망감에 빠져 있던 라틴 아메리카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릴라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서 독재정권을 타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칠레는 전 세계 진보주의적 지식인들의 소망이 결집한 성지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조선일보사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필자는 신문과 TV에서 쏟아내는 칠레 뉴스를 접하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 식민지들이 독립을 얻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또 다른 식민지적 예속이 선거(혁명)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현지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본사에서는 칠레까지의 출장 취재를 부담스러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칠레를 포함한 남미 제국의 광물자원 등 원자재 생산현장을 색채 화보로 연재하기 위한 라틴 아메리카 출장길에 오른 것은 1971년 5월이었다. 파리 주재 칠레 대사관의 협조로 아옌데 대통령과의 회견까지 예정된 칠레 취재는 한국의 젊은 언론인에게는 가슴 벅찬 출장이기도 했다. 페루와 국경 지대의 추키(에스콘디다) 구리 광산은 세계 최대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광대한 원형 노천 광산이었다. 국유화된 에스콘디다 광산의 근로자는 미국이 아닌 칠레의 광산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산티아고 은행에서 환전하니 달러당 15에스쿠도였는데 마침 혁대가 필요해서 가죽 혁대를 골랐더니 가격이 1천 에스쿠도였다. 주인은 조용한 말투로 달러가 있으면 20달러만 내라고 했다. 공정환율과 암시장의 차이가 3배 이상이었다. 부유층들이 칠레를 떠나고 기간산업의 국유화로 에스쿠도 가치가 폭락하고 있었다. 현지의 주요 신문인 엘메쿠리오와 라테세라 신문 등 4명의 중견 언론인들을 에스토리알 레스토랑에 초청하여 오찬을 나누는 좌담회를 진행했다. 전통 있는 식당에서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였지만 미화로 40달러만 내면 된다는 지배인의 배려에도 공정환율로 환전한 에스쿠도로 지불하니 출장비가 바닥날 형편이었다. 그러나 선거혁명으로 진통을 겪는 칠레에서 암시장에서의 환전을 거부하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칠레의 성공을 염원했기 때문이었다.
▶핵무기 개발에 따른 서방 진영의 경제 봉쇄가 장기화하고 최근에는 히잡 반대 시위가 반정부 운동으로 확산하고 있는 이란에서도 안정된 강세 통화로 알려진 리알화 가치가 연일 폭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초부터 리알화 가치가 30% 이상 떨어지고 있어 환전소가 붐비고 중산층들도 물가고에 시달리고 있는 테헤란의 상황이 반세기 전 산티아고를 연상시키는 요즈음이다.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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