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역의 한 노숙인 텐트 모습./사진=노성우 기자

다양한 사연으로 거리 노숙을 하거나 단칸 쪽방촌까지 흘러 들어온 이들의 명절은 더 서글프다.

가족, 친지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명절 연휴에도 몸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외롭게 지내야 하는 쪽방촌 사람과 노숙인을 만났다.

▲수원역 노숙인 텐트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명절이고 뭐고 다 똑같아요.”

설 명절을 앞둔 19일 오전 수원시 팔달구 수원역 환승센터 인근에서 만난 노숙인 A(73)씨는 “남편과 사별하고 노숙한지 2년 반이 됐다”면서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환승센터 밖에 있는 자전거 주차박스의 벽면을 따라 노숙인들이 지내는 1인용 텐트 10여개가 줄지어 서있었다.

공공장소 노숙행위를 금지한다는 계고장이 박스 벽에 붙어 있지만 엄동설한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자진철거를 기대하긴 어렵다.

2∼3년 전 만해도 맨바닥에 침낭 하나로 한파를 막아내던 것에 비하면 노숙인들의 사정이 좀 나아졌다.

하지만 조그만 텐트 안은 담요와 옷가지, 여행용 가방, 컵라면, 믹스커피, 물통 등 각종 물품들로 가득해 편히 몸을 누이기도 어려워 보였다.

자식도 없이 남편마저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A씨에게 유일한 피붙이라곤 남동생이 유일하지만 서로 연락은 안하고 지낸다고 했다.

그는 “남동생이 제사는 지낼 텐데, 연락하기는 좀 그래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교회에서 라면이나 빵을 주면 그걸로 한끼 먹고 돈이 없어 다른 건 못먹어요.”

A씨의 유일한 소득은 정부에서 주는 노령연금으로, 매달 25일 30만7000원씩 나온다고 한다.

하루 1만원 꼴인 셈인데, 이 돈으로 아플 때 약을 사먹거나 추위를 대피해 핫팩도 사놓아야 해 여유는 없다.

그는 “명절에 뜨거운 우거지 해장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성 노숙인 B(61)씨는 수원역 대합실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명절도 그저 똑같은 날”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마디 거들었다.

지방은 물론 중국까지 나가 용접 일을 하다 4∼5년 전부터 노숙을 시작한 B씨는 30대 아들 1명과 20대 딸 1명, 남매가 있다고 한다.

그는 “명절인데 자녀들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안 보는게 낫지. 이 모습으로 만나면 내가 또 창피하잖아”라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환승센터 지하에도 엉덩이를 붙일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짐보따리를 가진 노숙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숙인 가운데 일부는 오전부터 안주도 없이 소주와 막걸리로 빈속을 달래며 추위를 쫓기도 했다.

수원시에 따르면 수원역 주변에는 현재 약 50여명의 노숙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역사 인근 ‘정나눔터’에선 노숙인 등을 위한 무료급식이 이뤄지고 있다.

교회나 절 등 종교단체에서 요일별로, 시간대별로 돌아가며 밥과 국, 반찬, 컵라면과 간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날 만난 노숙인들의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는 노숙인 텐트가 강제철거될 것이란 불안감이다.

한 노숙인은 “주변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가 2∼3월쯤 되면 수원시에서 노숙인 텐트를 없앤다고 하는데 여기서 나가면 어딜 가느냐”고 푸념했다.

▲ 수원 팔달구의 한 쪽방 내부 모습./사진=노성우 기자

▲수원 쪽방촌 사람들

비슷한 시각,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의 한 쪽방촌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C(64)씨의 보금자리.

지난해 9월 화재가 나기도 했던 이 쪽방촌의 작은 마당 한쪽으로는 손바닥만한 방 4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설이 코앞이지만 명절 분위기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쪽방촌 안은 적막했다.

대문을 조심히 밀고 마당으로 들어가 그의 쪽방 문을 두드리자, 잠시 뒤 지팡이를 짚은 C씨가 수척한 얼굴을 내밀었다.

월세 24만원짜리 2∼3평 남짓한 방 안 살림살이라곤 작은 텔레비전과 소형 냉장고, 얇은 이불과 전기장판, 옷가지 몇개 등이 전부였다.

미니밥솥과 양은냄비, 후라이팬, 휴대용 가스버너, 식용류와 간장통, 즉석밥과 조미김도 눈에 띄었다.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 한동안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1년 전쯤 이 곳에 들어왔다는 C씨는 뼈만 앙상할 정도로 야위여 보였다.

“일은 못하죠. 이런 상태에서 뭔 일을 하겠어요.”

다리가 성치 않은 C씨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월세와 전기세를 내며 근근이 살고 있어 물리치료도 받기가 쉽지 않은 눈치다.

그렇다보니 평일 하루 한번 팔달노인복지관에서 방 앞에 놓고 가는 도시락이 그에게는 큰 보탬이 된다.

치아까지 빠진 C씨는 배달 도시락이나 주변의 슈퍼에서 두부 같은 것을 사다 즉석밥, 김치 등과 함께 대중없이 끼니를 때운다고 덤덤히 말을 이었다.

고향을 묻는 말에 “(고향도) 없다”고 답한 그는 “명절에도 그냥 여기 있을 것”이라고 나지막이 말한 뒤 다시 방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옆 쪽방에서 만난 60대 D씨의 방 안 한켠에는 행거에 걸어놓은 옷가지들이 가득했고, 방바닥에 간신히 깔아놓은 전기장판에 한사람만 누으면 공간이 다 찰 정도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허리를 숙여야만 서있을 수 있는 작은 부엌이 따로 있지만, 주방집기는 소형 싱크대에 밥솥과 냄비, 가스버너, 그릇과 수저 등 단출했다.

3년째 홀로 이 곳에 산다는 D씨는 “(공사)현장 일도 하루씩 하고 그러는데 요즘은 겨울이라 일도 없다”며 “식사는 복지단체에서 준 김치와 밥, 국 그리고 인근 중앙시장에서 사온 반찬으로 직접 해결한다”고 말했다.

대문 옆 공용화장실을 다녀온 뒤 “불편해도 어떡해요. 그래도 살아야지”라고 한 그는 이름 모를 복지기관에서 한달 전쯤 나눠준 전기장판과 겨울이불로 추위는 그럭저럭 버틸만 하다고도 했다.

“이번 설에는 기차 타고 고향 진주나 한번 내려갔다가 올까 생각 중”이라는 D씨는 새해 소망을 묻는 말에 “그런 게 어디 있겠느냐”며 절레절레 손을 내저었다.

인근 팔달구 구천동에도 9개 방이 모여 있는 쪽방촌에 7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쪽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난 2017년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낸 자료에서 ‘일정한 보증금 없이 월세나 일세를 지불하는 0.5~2평 내외의 면적으로 취사, 세면, 화장실 등이 적절하게 갖춰지지 않은 주거공간’이 ‘쪽방’으로 정의돼 있기는 하다.

도내 시군들은 쪽방촌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일례로 수원시나 안산시는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에 사는 주민들을 위한 주거상향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팔달구 남수동, 구천동에 있는 주택 가운데 주방은 개별적으로 사용하지만, 화장실을 공용으로 쓰는 곳도 다른 주택에 비해 열악하기 때문에 쪽방으로 분류해 확대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산시 관계자는 “작년에는 여관, 여인숙 등에 사는 106가구의 공공임대주택 이주를 지원했고, 올해는 120가구 정도를 이주 목표로 잡고 있다”고 전했다.

/노성우 기자 sungco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