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가 원작자인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손으로 다시금 애니메이션으로, 심지어 극장용으로 돌아왔다. 제목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 제작 소식이 들렸을 때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건 어찌 보면 인지상정이다. 불현듯 '나의 추억을 지켜줘'라는 심정이 들기도 했다. 강백호나 서태웅이 아닌 포인트 가드 송태섭을 중심으로 삼았다는 점도 걱정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다른 무엇도 아니고 <슬램덩크> 아닌가. 덕은 이미 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세간의 숱한 우려를 힘으로 때려눕히는 작품이다. 작품은 원작의 최종전이었던 산왕전의 장면 장면을 원작에서 묘사될 기회가 없었던 송태섭의 개인사를 끌어내기 위한 동기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명장면 명대사를 고스란히 살리되, 송태섭 외 인물 각자를 향한 서사적 장치와 클로즈업을 과감히 덜어내고, 그 외에는 스포츠 경기 장면의 물리적 현실감을 '만화의 그림체 안에서 구현하는' 데에 고스란히 몰아넣었다.
그 결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읽었고 작중 산왕전이 보여주었던 몰입감에 몸서리를 쳐 보았던 사람이라면 2시간여라는 시간을 숨도 못 쉬고 지켜볼 만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그런데 전개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다 보고 나니 정말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적당한 팬서비스가 아닐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주연급임에도 유난히 서사를 배정받지 못한 채 연재 종료를 맞이한 인물이자, 또한 결핍/결손에서 완성으로 향하는 정석적인 성장 서사의 주인공으로 쓰일 만한 인물로 작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게 바로 송태섭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이 걸핏하면 덩크슛을 꽂아대는 괴수대행진 속에서 단신인 송태섭은 그 자체로 불리한 조건이 큰 인물이다. 원작에서는 북산고 주전 중에서 가장 덜 조명됐고 개인 스토리도 적지만, 막상 그 원작에서 산왕전을 끝으로 은퇴한 선배들에 이어 주장이 된 인물 또한 송태섭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바로 그 송태섭에게서 '주장'과 '부주장'이라는 키워드를 뽑아낸 후 그의 어린 시절 속 이야기에 연결해 버무려냈다. 그 결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송태섭에겐 고통스럽지만, 관객에겐 몰입감 넘치는 성장 스토리로 완성되었다. <슬램덩크>로 청춘을 보냈던 이들의 안에 움텄을 일말의 우려를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감동'으로 바꿔낸 까닭은 원작을 그저 충실하게 재현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불황 속에서 못질한 관 뚜껑까지 뜯고 끄집어낸 과거의 작품들이 기괴한 꼴로 망령 취급을 받기에 십상인 요즘, 한 시대의 마스터피스가 이렇게 안 망가진 거로도 모자라 새롭고 진한 즐거움을 주었다는 점에 감사한다. 아직 안 보셨다면, 집중을 위해 가급적 우리말 더빙판으로 감상하시길 권한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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