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부천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열린 한 전시에서 공동으로 큐레이터를 맡은 적이 있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 때였고,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몇 개월 지난 시기기도 했다. 여러 연유로 만화가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배제되거나 아픔을 겪은 이들을 어찌 담아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시의 주 화두가 되었고, 나는 그 가운데에서 나라의 역사와 같은 시기의 만화사를 함께 나열함으로써 관람자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사고는 전시가 끝나고 터졌다. 전시 내용을 글로 풀어내 도록에 싣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내 글이 문제가 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역사 서술'. 개중 박정희 부분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당시의 담당자는 나를 찾아와 글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글 때문에 이 도록은 판매용으로 나올 수 없게 되었으며, 당신이 글을 고치지 않으면 당신만이 아니라 전시에 참여해 도록에 글을 실은 모두가 원고료를 받지 못할 것이다! 결국 나는 내 글을 문자 그대로 걸레짝으로 만들어야 했고, 그 순간순간이 지금도 한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의 담당자를 조금 이해한다. 상급 부처에 '조인트'를 까일 상황이면 기관의 일개 직원이야 별 수 없었으리라.
현재로 돌아와서, <윤석열차>란 카툰이 화제다. 정확히 한 정권을 건너 뛰어 돌아온 우파 정권에서, 같은 기관과 얽힌 문제가 화제 선상에 올랐다. <윤석열차>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의 카툰 부문에서 출품된 작품인데, 정권의 문제점을 풍자한 내용을 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무려 경고씩이나 날리면서 그야말로 전국에서 모르는 이 없는 작품에 등극했다. 카툰 장르에서 비방도 아닌 풍자를 했다고 문제 삼는 게 어처구니도 없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해외 작품 표절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다 해당 작품의 원작자에게서 표절 아니라는 답변을 받는 바람에 더 이상 어찌 할 방도를 찾지 못한 채 만화 업계인들의 분노 앞에 다음 행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작 작품의 수준에 대한 평가가 더 이뤄질 기회는 정부부처 차원의 준동과 함께 영영 사라졌다. <윤석열차>는 역설적으로 정부의 준동을 이끌어낸 명작(?)으로 만화사에 남게 됐다. 정말 이럴 줄 몰랐을까. 모든 필화 사건은 역사의 법정 앞에서 해당 시기 정부의 완패로 결론난다. 윤석열 정부는 이 서사 앞에서 악당으로 규정됐다.
재밌게도 내 원고 수정 때와는 달리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정권 비판적인 표현을 두고 몸을 사리며 상을 안 주거나 빼앗지는 않았다. 작품을 낸 학생이 더 험한 꼴을 안 보게 돼 다행이긴 한데, 차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관련 예산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갈 것이라는 우려가 업계에서 목하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번 건을 이유로 예산을 치사하게(!) 틀어막는다면 오히려 이 기관이 지닌 병폐를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현명한 선택을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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