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물가에 문의 늘어
▲ 가계부 관련 이미지./인천일보DB
▲ 가계부 관련 이미지./인천일보DB

“아이 학원비에 이런저런 공과금, 아파트 대출 부담까지. 월급 빼고 다 오르니 앞이 막막하네요. 얼마나 더 아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부 김모(49)씨는 한 달 생활이 빠듯해 진지 오래다. 외벌이에 치솟는 물가에 장 보기가 겁나고 대출이자까지 늘면서 경제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형편이 더 힘들어지면 가지고 있는 '귀중품이라도 팔아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불경기에 인천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 지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다 이를 잡기 위한 유례없는 금리 인상이 계속되면서 가계와 소상공인들이 울상이다.

26일 한국은행 인천본부에 따르면 인천지역 금융기관 가계대출은 지난 7월 1363억원에서 8월 2557억원으로 증가폭이 확대됐다.

소비자물가도 상승했다. 경인지방통계청이 발표한 9월 인천시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5.5% 올랐다. 앞서 지난 7월 인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세계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 7월 6.4%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인천지역 전당포를 찾는 서민들의 발길도 늘어나는 추세다.

코로나19와 고금리, 고물가 등 경기 악재로 금융권이 아닌 전당포를 통해 소액을 융통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지만 은행창구를 이용할 수 없다보니 마지막 창구인 전당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미추홀구의 한 전당포는 “전당포에 어떤 물건까지 맡길 수 있는지 묻는 문의 전화가 많아졌다”며 “실거래로 다 이어지진 못하지만 그만큼 전당포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생긴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은 알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인천일보는 꽁꽁 얼어붙은 경제 상황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생활을 전당포를 통해 살펴본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은행 문턱이 높은 이들은 여전히 전당포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12면<[전당포에서 삶을 보다] 1. 희승씨의 전당 외길 49년>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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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에서 삶을 보다] 1. 희승씨의 전당 외길 49년 '전당포, 대부 3F'.빨간 글씨로 적힌 간판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계단을 타고 숨 가쁘게 올라가다 보면 철문에 다다른다. 문턱을 넘자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딩동' 소리와 함께 주인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전당포 주인장 허희승(가명·68)씨는 창살 넘어 손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다. 허씨는 49년 동안 인천 중구 동인천역 인근에서 전당포를 하고 있다. #희승씨 전당포의 과거와 현재가장 따뜻하고 눈이 적게 내린 겨울로 기록된 1973년. 고등 [전당포에서 삶을 보다] 2. 서민 경제 가늠자 '인천 부두노동 불황으로 빈민들이 전당포로 몰려들고 있다.'1934년 10월 28일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기사다. 당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일노동자 수가 조선 1위인 인천에서 빈민들의 전당포 방문이 늘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에 따르면 1년간 주민 10만181명이 전당포를 찾아 23만1486원의 물건을 맡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 현상의 원인은 부두노동의 불황으로 꼽혔다.전당포는 예부터 서민 경제를 헤아리는 창구였다. 은행과 신용카드가 활발해지면서 전당포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줄어들었지만, 전당포를 찾는 사람들은 [전당포에서 삶을 보다] 3. 계속될 이야기 어두컴컴한 뒷골목에서 만나는 허름한 전당포.이런 모습을 간직한 전당포가 사라지고 새로운 전당포가 들어서고 있다. 딱딱한 인상을 주는 쇠창살이 아닌 안락한 소파가 손님을 맞이하고 매장 보안은 전문업체가 관리한다. 모바일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서 생긴 변화다.담보되는 물건도 달라졌다. 과거 귀금속과 시계 등이 주요 담보물이었지만 이제는 명품가방과 IT기기 등 고가 제품도 담보물이 된다.전당업이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은 몇푼 융통을 위해 오늘도 전당포 [썰물밀물] 전당포의 기억 전당포(典當鋪)는 물건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사금융업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엔 개화기 때 일본인들이 처음으로 전당포를 세웠다고 한다.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서민들이 급전을 구할 수 있는 유용한 역할을 했다. 신용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전당포 대출은 서민들에겐 마치 목마른 이에게 갈증을 해소하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급하면 은행으로 달려가거나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는 등 '신용사회'로 진입한 까닭에 전당포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전당포는 1960~70년대엔 TV·냉장고 따위의 가전제품을 자주 담보로 잡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