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인당 소비량 70년간 반토막
정부·지자체, 다각도 대안 모색
편의점·고속도로 휴게소 판매
니가타현엔 '선물 문화' 보편화
쌀, 우리는 없어서 못 팝니다.”
곤두박질치는 쌀값, 도시로 빠져나간 젊은 인력들, 끝도 모르고 높아지는 유가. 국내의 쌀 산업은 역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이웃나라, 일본의 사정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1930~1940년대 연평균 1인당 쌀 소비량이 118㎏에 이르던 일본은 2000년대 들어 52㎏까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쌀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다각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일찍이 쌀 소비 급감으로 직격탄을 입은 일본은 다양한 대처 방안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점차 쌀의 시장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에서 쌀은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일상 곳곳에서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쌀이 있다. 마트는 물론이고 편의점이나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조차 쌀을 구매할 수 있다. 특히 고시히카리의 원산지로 알려진 니가타현에서는 지하철 역전에 쌀 상품샵을 두어 쌀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같은 상품들의 매력적인 요소는 '패키징'과 '스토리텔링'에 있다. 쌀의 품종은 고시히카리 한 종에 불과 하지만 농가마다 가진 스토리텔링과 다양한 패키징 구현이 구매를 돕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밸런타인데이와 같은 특별한 날, 초콜릿을 대신해 쌀을 선물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을 만큼 쌀 선물이 보편화돼 있다. 이 역시 선물하기 좋은 아기자기한 패키징과 브랜딩된 다양한 쌀이 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쌀 소비 급락은 비단 한국사회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일본 전역으로 쌀 소비가 급감하는 현상 두드러지고 있다. 반면 우오누마 지역만큼은 예외다. 이 지역은 오히려 쌀이 부족해 남아도는 쌀이 없다고 한다.
우오누마 농림진흥부 카사이야스 후미 보급과장은 “우리 지역은 현재 쌀이 부족하다. 일본 전역이 쌀이 남아돌아 처치 곤란을 겪고 있지만, 우리 지역만큼은 예외다. 인기 비결은 우수한 미질에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선 쌀 산업의 활성화 대안으로 '가루쌀'의 활용을 제시하고 있다. 가루쌀은 밀가루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쌀 소비 촉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매해 가루쌀 시장의 규모는 늘어나고 있고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14만t 생산을 목표로 확대해 가고 있다.
이처럼 판박이처럼 닮아 있는 두 나라. '쌀의 위기'에 맞서는 서로 다른 대처법. 우리는 일본에서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2회에 걸쳐 보도되는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제24화 위기의 쌀, 미래를 찾아서>에서는 고시히카리 산지인 니가타현 우오누마 지역을 탐방하고 위기에 처한 우리 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일본, 쌀 브랜드·판매처 다양화…맛 좋은 쌀은 없어서 못판다
◆ '쌀의 고장' 일본 니가타현
편의점서 '철도 프로모션 상품' 판매
도로 휴게소·주먹 밥 가게서도 구매
농가 대부분 수확~포장 가내수공업
생산량 감소 위해 '타 작물 재배' 지원
◆ '고시히카리 원산지' 우오누마
연구 개발로 세분화된 품종 재배
한결 같은 맛에 불티…쌀 되레 부족
◆ 한·일 '가루쌀 시장' 부상
한, 불리지 않고 빻는 품종 최초 개발
일, 다각도 연구·정부 적극적인 지원
곤두박질치는 쌀값, 도시로 빠져나간 인력들, 끝도 모르고 높아지는 유가. 국내의 쌀 산업은 역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이웃 나라 일본의 사정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찍이 쌀소비 급감으로 직격탄을 입은 일본은 대처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쌀 산업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판박이처럼 닮아있는 두 나라. 과잉 생산된 쌀이 휩쓸고 간 자리, 우리는 일본에서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쌀, 일상이 되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경기도 이천·여주와 같이 '쌀의 고장'으로 알려진 니가타현까지는 380㎞. 일본에 닿자마자 내리 고속도로를 달렸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들른 휴게소 안은 이제 막 수확을 마친 햅쌀이 손님맞이를 앞두고 있다. 포장도 제각각, 저마다 개성을 두른 듯, 다양한 쌀 브랜드가 가판대를 채우고 있다. 족히 10여 가지는 돼 보이는 쌀 상품에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우리 일행처럼 휴게소를 들른 이들은 마치 커피 원두를 고르 듯, 쌀에 명시된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가며 상품을 살펴댔다.
일본에 명소가 많지만, 제일의 명소는 단연 편의점이다. 일본의 편의점에서는 없는 게 없을 만큼 수천 가지 품목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니가타현 에치고 유자와의 한 편의점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쌀이었다. 국내에서도 편의점에서 종종 쌀을 판매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어쩐일인지 편의점에서 파는 쌀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니가타현의 편의점에서는 철도 개업 150주년을 기념해 프로모션 한 쌀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일본의 기차 사진을 포장에 입힌 뒤 한 끼 분량의 쌀을 담아 보기 좋게 판매 진열대에 올려두었다.
이른 아침, 끼니를 때울 요량으로 우오누마 지역의 한 주먹밥(오니기리)가게를 찾았다. 바쁜 현대인들에겐 이만한 간편식이 없다. 일본인들에게 주먹밥은 우리나라의 김밥처럼 간편식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꽤 이름이 알려진 가게였던지 이른 아침부터 주먹밥을 먹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주먹밥 가게 한쪽으로 마련된 쌀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김밥천국'에 김밥 재료로 쓰인 쌀을 판매하는 격이었다. 다소 비싼 가격인데도 앞다투어 쌀을 주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은 직접 집을 짓는다거나 사용하는 가구 등을 제작하는 DIY문화가 보편화 돼 있다. 이 때문에 관련 재료를 판매하는 홈센터를 지역 어디서든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코메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홈센터로 알려졌다. 전국 1000개 이상의 점포가 있고 다양한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쌀 산지에 있는 코메리를 찾았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가정용 정미기와 쌀 포장재였다. 쌀 농가가 대부분인 니가타현에서는 쌀을 직접 수확한 뒤 도정부터 포장까지 전 과정을 가내 수공업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생산된 제품은 편의점이나 휴게소 등지로 유통됐다.
▲쌀이 없어요
쌀 산업은 한국처럼 일본의 농업과 농정에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매해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 1인당 쌀소비량이 3~40년대까지만하더라도 118㎏을 소비했던 반면, 2000년대 들어 최대 54.6㎏까지 줄어들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쌀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 쌀 대신 보리나 밀, 채소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할 경우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일종의 '쌀생산조정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사정과 마찬가지로 일본 전 지역에서 생산된 쌀에 8할은 정부가 수매하는 방식이고 나머지는 개인이 유통한다. 정부나 지자체는 개인이 유통하거나 판매를 할 때 상품화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의 판로를 모색해 쌀 소비 촉진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고시히카리의 원산지로 알려진 니가타현의 우오누마 지역은 이례적이다. 우오누마 지역은 전체 면적에 5000㏊ 이상이 쌀 농사를 짓고 있다. 우오누마에서는 한해 약 2만5000t가량을 생산하는데 우오누마의 쌀은 100% 고시히카리 품종으로 재배된다. 현지에서는 고시히카리 품종에 대한 연구개발로 세분화된 다양한 고시히카리가 출시되고 있다. 덕분에 맛 좋기로 소문난 우오누마의 쌀은 없어서 못 팔 만큼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우오누마 농림진흥부 보급과에 카사이야스 후미 보급과장은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쌀소비가 줄어 많은 쌀이 남았다”며 “이례적으로 우오누마 지역에서는 쌀이 부족한 실정이다. 생산량이 다른 지역보다 적은 편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오누마의 쌀을 구입하고 있어 쌀 수급이 매우 부족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오누마 지역 쌀의 인기 비결을 묻자 카사이야스 과장은 “맛이 좋기 때문이다.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일교차가 큰 우리 지역에서는 맛이 좋은 쌀이 생산된다. 또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일관된 재배농법 전수로 우오누마 지역 쌀은 한결같은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가루쌀'에 답이 있다
가루쌀(분질미) 재배가 쌀 공급 과잉 문제를 해소할 대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20일 쌀 공급 과잉과 식량 자급률 감소에 대한 대책으로 가루쌀 활성화를 내세웠다.
한국에서는 쌀을 불리지 않은 상태로도 빻아서 사용(건식제분)할 수 있는 쌀가루 전용 품종인 '가루미'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가루쌀 시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그간 물에 불리는 습식제분 형태로 가루쌀을 활용해 왔지만, 밀가루와 비교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면서 쌀가루 가공산업의 활성화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가루미'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이나 중국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 가루미 품종 개발을 계기로 밀가루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쌀소비 촉진을 도모할 계획이다.
일본에서도 가루쌀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쌀 소비 급감에 대안으로 가루쌀이 제시되면서 다각도의 연구개발이 일본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일본 농수성 자료에 따르면 한해 4.2만t(2021년기준) 생산되는 가루쌀을 2030년까지 14만t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NPO법인 쌀가루 촉진 네트워크 코이케 케이지 이사장은 “농가의 고령화와 서구화된 식단으로 일본은 많은 쌀이 남아돌고 있다. 가루쌀을 활용해 쌀의 생산과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건 한국과 똑같다. 일본 정부에서는 가루쌀을 재배할 경우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또 가루쌀로 상품을 만든 업체의 경우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등 가루쌀 소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머지않아 전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위기의식은 밑바닥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의식 수준을 바꿔야 한다.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비해 가루쌀에 대한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