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7000년 앞선 사실 확인돼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치 충분”
“재출토 없고 재배벼 단정 불가”
학계 논쟁에 학술발굴 지적에도
기념탑 외엔 박물관조차 없어
쌀은 오랜 세월 우리의 삶과 역사를 지켜온 고마운 존재다. 또한 인류를 배불리 먹여야 할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더욱이 세계 인구의 절반은 이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쌀에 관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바로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생명의 씨앗
2001년, 전 세계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는 일이 이 땅,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충북 청주시(당시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일대로 발견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볍씨는 중국 후난성의 1만500년 된 것으로 기록돼 왔지만, 국내에서 발견된 소로리 볍씨의 추정 연대는 중국의 볍씨보다 무려 3000~7000년이나 앞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벼의 기원지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었지만 주로 중국을 중심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았다. 소로리볍씨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벼의 기원과 진화, 전파 등에 중요한 단서로 연구돼 오고 있다.
청주 소로리볍씨는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지표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찾게 됐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충북대, 단국대, 서울시립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4개 기관이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벌인 끝에 토탄층에서 127톨의 볍씨를 발견했다. 26개의 볍씨 샘플이 서울대 AMS연구실과 미국 지오크론 랩(Geochron Lab),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방사성탄소연구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국내 외 연구기관에 보내졌다. 그 결과 1만3000년~1만7000년 의 연대값을 얻어 소로리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임이 판명됐다. 학계는 소로리볍씨를 벼의 진화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꼽았다. 볍씨의 DNA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재배벼, 유사벼와는 39.6%의 낮은 유전적 유사성을 드러내 현대의 벼로 자리하기까지 구조적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로써 기대하고 있다. 당시 허문회 서울대 교수는 소로리 볍씨를 크게 고대벼와 유사벼로 구분하고 18톨의 고대벼 가운데 17톨이 자포니카 종, 1톨이 인디카 종인 것으로 소개했다. 이 시대에도 우리 선조들은 단립형 벼, 즉 동남아시아의 길쭉한 쌀이 아닌 현재의 국내 쌀 형태와 비슷한 자포니카 종을 선호했던 점이 이채롭다.
소로리 볍씨에서는 소지경이 외부의 힘으로 잘린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야생벼의 소지경에서 보이는 매끈한 단면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자른 거친 단면이 관찰돼 재배벼의 특성을 보였다. 실제 발굴조사 과정에서 벼 수확에 쓰인 도구로 추정되는 '홈날연모'가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조사단을 이끈 이융조 박사(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는 이를 두고 초기 농경단계 사이에 순화가 진행된 '순화벼'라고 해석했다. 지금까지는 학명없이 소로리볍씨로 불렸으나 한국에서 발견된 만큼 'Oryza sative coreaca(오리자 사티바 코레아카)' , '한국의 고대벼'로 명명하고 있다.
▲볍씨논쟁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발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계 안팎은 논쟁에 휩싸였다. 2002년까지만 해도 벼농사의 기원을 중국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했지만 소로리볍씨의 발견으로 대한민국 청주가 벼농사의 기원으로 바뀌면서 주류 학계에선 원색적인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냉대와 외면에도 불구하고 이융조 박사는 국제학계로 발견 사실을 알려갔다.
2003년 BBC가 소로리볍씨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순화벼(World's 'oldest' rice found)'로 보도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얻었다. 같은 해 고고학의 교과서, 'Archaeology'에서는 올해의 발견으로 한국의 소로리볍씨를 선정했다. 'Archaeology'는 제2판(2004)부터 현재까지 소로리볍씨를 쌀의 기원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한 소로리볍씨는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로 보내져 세계 쌀 연구에 쓰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적인 과학전문 학술지 엘저비어(ELSERVIER)에도 소로리볍씨의 연대 측정에 관한 논문(Radiocarbon ages of sorori ancient rice of korea 이융조, 김경자, 우종윤, AJ Timothy Jull)이 게재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소로리볍씨를 두고 학계는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예컨대 소지경의 탈립면이 거칠다 해 재배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연대에 관해서도 연속적으로 역사적 근거 자료가 발견되는 중국의 볍씨와 달리 소로리볍씨 이후의 출토사례가 없다는 점도 약점으로 들었다. 학계는 중부지역의 토탄층에서 학술 발굴이 계속 이어져 추가적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우종윤 원장은 “소로리볍씨가 인류생명문화유산임이 자명하다.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로 얻어진 결과이다. 저명한 학술지나 저서, 전 세계 쌀 학자들이 모인다는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에서도 소로리볍씨를 이미 검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로리 볍씨의 과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볍씨, 소로리볍씨는 고고학적으로나 고생물학 등 여러 학문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 가치를 증명받고 있다. 더욱이 소로리 유적지의 발굴을 이어가 추가적인 학술 자료 확보가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소로리볍씨가 발견된 소로리 유적지 주변을 에워싸고 공장이 자리하면서 사유지화된 부지는 손을 뻗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볍씨가 발견된 청주시 소유의 2000평 남짓 땅과 공장 인근 농지에서 토탄층의 발굴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발굴대상지의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여전히 소로리 볍씨의 가치는 홀대받고 있다. 7년전 소로리 볍씨 상징 기념탑을 세운 것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박물관 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소로리볍씨 기념 사업회 측은 발굴 이후 지속해서 박물관 건립을 요구해 오고 있다. 이 작은 볍씨 하나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2004년 1월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문화유산 관계자들은 이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등재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큰 관심이 쏠렸다.
또 소로리볍씨가 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써 박물관이 충분한 역할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고 있다. 이에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융조 박사는 곧 폐교가 될 옥산초등학교 소로분교를 소로리볍씨 박물관으로 활용할 방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소로분교를 체험공간으로 만들어 인류생명문화 유산의 발원지가 청주임을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함이다. 또 스토리텔링을 통한 관광자원으로써 활용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하며 명소화 추진을 제언했다. 여기에 연천구석기 축제에서처럼 청주의 대표 축제로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융조 박사는 “주요 유적 박물관들은 지역주민들과의 친화적 관계 설정을 형성해내며 성공적인 사례들을 보여왔다. 또 청주 소로리볍씨 출토지와 기념탑, 소로분교를 이어지는 관광벨트는 소로리볍씨를 국제화하는 데 적합할 것으로 보이며 국제회의 방문 학자들로부터 자문을 받은 결과 소로리볍씨 박물관이 소로분교가 적임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원장
“인류생명유산의 원천인 청주에 지속적인 볍씨연구기반시설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대한민국 이 땅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설령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들어 소로리볍씨가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인류생명문화유산의 가치와 세계 제일의 문화유산 보유국이라는 자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지금이야말로 소로리볍씨 박물관 유치가 중요한 시기임을 강조했다.
“소로리볍씨는 인류생명문화유산이자 생명의 씨앗이죠. 쌀은 인류 먹거리의 원천인 만큼 소로리볍씨의 발견은 벼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로 쓰입니다. 인간의 먹거리 형태는 변했을지언정 기본적인 주식형태는 변하지 않았죠. 원천적인 이 쌀의 의미, 소로리볍씨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선 박물관 건립이 매우 중요합니다.”
앞서 고양시에서는 5000년 된 가와지볍씨가 발굴됨에 따라 농업박물관을 가와지볍씨박물관으로 개칭하고 가와지볍씨의 가치를 알리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있는 소로리볍씨에 대해선 변변한 연구기관조차 없어 소로리볍씨 박물관의 건립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청주시는 소로리볍씨 박물관 유치를 위한 TF팀을 조직하는 등 박물관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신축보다는 기존의 폐교 건물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폐교를 앞둔 소로 분교를 소로리볍씨 박물관으로 조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소로분교 인근으로 유적지와 상징기념탑이 있어 소로분교는 박물관이 들어서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우 원장은 소로리볍씨 박물관이 들어설 경우 박물관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드러냈다.
“박물관이 들어선다는 의미는 단순히 전시, 보존의 역할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나아가 세계적인 유산이 이곳 청주에 있는 만큼 연구기반시설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미겠죠. 박물관 내 연구기반시설을 갖추게 되면 지속적인 연구와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는 세계 볍씨 분야를 선도적으로 이끄는데 역할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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