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100년 비법? 팔할은 경기쌀 덕이야"

고종 말에 증조부가 어주 빚던 상궁한테
배운 주조기술로 양조장을 열었어
좋은 재료만 쓰니 맛도 좋아 입소문 났지

박정희 전 대통령도 단골이었다니까!
98년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요청해
방북 때 실어 보내기도 했어

이제 경영 손 뗐지만 손자한테 늘 강조해
돈 애끼지 말고 요령 피지 말고
양심적으로 맨들라고

쌀은 생명을 잇는 끼니였고 우리 문화는 쌀을 중심으로 피어났다. 서구화된 식단에 밀려 점차 우리 밥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쌀'. 동시에 사라져 간 '쌀의 추억'.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농쌀직썰 2부'에서는 경기미의 옛이야기를 쫓아 쌀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경기인들의 쌀 문화, 쌀에 대한 '썰(設)'을 풀어본다.

▲ 배다리도가 4대 주인장인 박관원 옹.
▲ 배다리도가 4대 주인장인 박관원 옹.

# “내가 열 네살에 배다리도가 사장이 됐어. 아버지가 마흔 살에 돌아가셨거든.
한 날은 어떤 무당이 찾아와서 그러더라고 3대를 넘기지 못하니 양조장을 팔으라고 이게 벌써 6대까지 왔네.”

5000년 전, 아니 어쩌면 인류가 등장하기 시작한 때부터 우리 민족은 농사를 지어왔겠다. 동시에 쌀을 활용한 다양한 먹거리가 생겨났고 그중에서도 우리 쌀로 빚어 탄생시킨 곡주들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민족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빠지지 않고 술이 등장했다.

술을 빚기 시작하면서 집집마다 특유의 가양주(家釀酒)가 만들어졌고 일제 침략 당시 주세령으로 술 빚기가 금지되던 때도 집안 대대로 이어져 온 주조 기술들을 고집스럽게 전수해왔다.

고양시 가좌동에는 100년 넘도록 가문의 주조 기술을 지켜 온 양조장이 있다. 우리 술, 100년 역사의 산증인, 배다리도가의 터줏대감 박관원(90) 옹이다. 그의 증조부이자 배다리도가의 창업자인 박승언 대표가 1915년 고양시 주교동 일대에서 처음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6대째 술을 빚어오고 있다.

“고종 말 친위대에 있던 증조부가 1915년에 어주(임금이 드시던 술)를 빚던 궁중 상궁으로부터 주조 기술을 배워서 고양시 주교동에 처음 양조장을 열었어. 예전에는 비가 오면 지금 고양시청있던 자리까지 물이 차서 마을을 이동할 때 배를 타야 했었지. 그 동네를 배다리라고 불렀는데 그래서 우리 양조장이 배다리도가라고 이름 붙였어. 그때 일본놈들이 술을 빚는 양조장들에 와서 술을 사 먹었어. 밀주 단속을 그렇게 지독하게 하면서도 말야. 1932년에는 경의선이 들어오니깐 술을 유통하기가 좋잖아. 그때 능곡으로 이전해서 양조장을 다시 차렸어.”

1대 박승언, 2대 박유병, 3대 박용국, 4대 박관원, 5대 박상빈, 6대 박재형, 박건형에 이르기까지 100년을 이어온 배다리도가의 술은 격동의 시대를 견뎌야 했다. 세월의 풍파를 맞을수록 배다리도가의 술맛은 더욱 단단해져 갔다.

“내가 열 네살에 배다리도가 사장이 됐어. 아버지가 마흔 살에 돌아가셨거든. 일본인들한테 술을 팔아서 큰돈을 벌었어. 어음으로 5000원을 가졌으니까 그땐 꽤 부자였다고. 해방되고 나서는 가지고 있던 어음이 전부 휴짓조각이 돼 버렸지. 6.25전쟁이 터지고 1.4 후퇴 때 통영으로 피란을 갔었어. 전쟁 끝나고 능곡 양조장으로 다시 돌아왔더니 전부 잿더미가 돼 있더라고. 얼마나 비참하고 통곡스럽던지… 다시 일어서 보려 주변에 쌀 동냥을 하러 다녔어. 다들 없이 살 때라 쌀을 꾸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녔지. 한 날은 어떤 무당이 찾아와서 그러더라고 3대를 넘기지 못하니 양조장을 팔으라고 이게 벌써 6대까지 왔네.”

 

▲ 고양시 배다리도가 내 양조장에서 가와지쌀을 재료로 술을 만들고 있다. 배다리도가 4대 주인장인 박관원 옹.
▲ 고양시 배다리도가 내 양조장에서 가와지쌀을 재료로 술을 만들고 있다. 배다리도가 4대 주인장인 박관원 옹.

# “동네에 사는 건달 놈 하나가 김두한인 걸 모르고 우리 지역에 낯선 깡패가 왔다며 박치기를 해서 댐빈거지 뭐야.
나중에 김두한인 걸 알고는 우리 배다리도가 술하고 쌀 한 가마니 들고 찾아가서는 머리를 조아렸다고 하더라고.”

배다리도가의 술은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마시던 술로도 잘 알려져 있다. 56년 전 당시 삼송동에 있던 '실비옥'이라는 주막에 들려 배다리도가의 술을 처음 맛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술맛에 반해 1979년까지 납품을 지시했다고 한다.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 1000마리를 끌고 방북이 한 창이던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저에서 나눠 마셨다는 술 역시 배다리도가가 빚은 술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요청했어.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먹는 술이 있다던데 그게 뭐냐면서 말야. 그래서 방북 때 우리 술을 실어 보냈어. 우리 술을 맛본 이들은 소문대로라면서 칭찬일색이었지.”

배다리도가의 술을 맛본 유명인은 또 한사람 있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 화정으로 징용을 와서 배다리도가의 술을 접한 일화가 있었다고…

“일본이 용산에 기지창을 화정으로 옮기려 했었어. 화정으로 징용을 많이 왔었는데 그 사람들 중에 김두한도 있었어. 근데 동네에 사는 건달 놈 하나가 김두한인걸 모르고 우리 지역에 낯선 깡패가 왔다며 박치기를 해서 댐볐지 뭐야. 나중에 김두한인걸 알고는 우리 배다리도가 술하고 쌀 한가마니 들고 찾아가서는 머리를 조아렸다고 하더라고.”

 

 

▲ 배다리도가 곡주에 주재료가 되는 가와지쌀과 대표 상품이 놓여있다.
▲ 배다리도가 곡주에 주재료가 되는 가와지쌀과 대표 상품이 놓여있다.

# “우리 술은 경기 쌀로만 만들어. 예전부터 경기쌀이 최고로 쳐 줬다고. 재료가 좋아야 술도 맛있는 거야.
여기 능곡평야에서 나는 쌀이 아주 맛있다고. 한강물 먹고 자란 쌀이 아주 제일이야.”

배다리도가의 술맛은 소문이 자자했다. 술맛을 맛본 이들은 하나같이 칭찬일색이었다.

한 번은 프랑스 보졸레 지역의 유명 와인인 '보졸레 누보'와 맛 대결을 벌인 일이 있는데 그때도 배다리도가의 술은 좋은 평가를 얻었다.

많은 애주가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은 비법은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 재료라고 말하는 박관원 옹.

“우리 술은 경기 쌀로만 만들어. 예전부터 경기쌀이 최고로 쳐 줬다고. 재료가 좋아야 술도 맛있는 거야. 여기 능곡 평야에서 나는 쌀이 아주 맛있다고. 한강 물 먹고 자란 쌀이 아주 제일이야.”

최근 배다리도가는 고양 '가와지쌀'로 우리 전통주, '가와지 탁주'를 출시했다. 우리 지역에서 나는 쌀로 술을 만들려 했던 데는 아들과 손자들의 아이디어가 한 몫했다.

박관원 옹은 경영 선상에서 물러난 뒤 가업을 잇는 자녀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철칙이 있다고 한다.

“양심적으로 만들라는 거야. 요령 부리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돈 애끼지 말고 맨들라고.”

 


 

[경기인의 밥상] 미꾸라지 털레기

▲ 배다리도가가 가와지쌀로 만든 우리술 '가와지'와 미꾸라지 털레기.
▲ 배다리도가가 가와지쌀로 만든 우리술 '가와지'와 미꾸라지 털레기.

한강을 젖줄삼아 터전을 일궈 온 고양시 사람들은 털레기 또는 천렵국을 즐겨먹었다. 온갖 재료를 한데 모아 털어 넣는다고 해 털레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천렵국은 냇물에서 잡은 물고기를 넣고 끓인 국이다. 논농사가 발달한 고양에서는 미꾸라지가 흔한 어종이었는데 미꾸라지나 한강에서 잡은 민물 고기들을 갈아 넣은 뒤 수제비나 국수를 넣고 끓여 먹었다. 배다리도가의 대표 술, '가와지 탁주'는 5000년 볍씨 화석 역사를 가진 고양 '가와지1호'쌀(신품종)만을 고집해 만든 술이다. 인공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아 신선하고 매끄러운 탁주 맛을 보여준다.

“농로에 들어온 민물고기들을 잡아서 먹곤 했지.귀한 쌀 대신 수제비나 국수를 넣어서 배를 채웠었어. 막걸리랑 먹으면 이만한 술 안주가 따로 없어.”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관련기사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 제 18화 '농사의 재간꾼' 대감마을 상쇠 심상곤 옹 쌀은 생명을 잇는 끼니였고 우리 문화는 쌀을 중심으로 피어났다. 서구화된 식단에 밀려 점차 우리 밥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쌀'. 동시에 사라져 간 '쌀의 추억'.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농쌀직썰 2부'에서는 경기미의 옛이야기를 쫓아 쌀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경기인들의 쌀 문화, 쌀에 대한 '썰(設)'을 풀어본다. # “도시 계획 때문에 나가야 하니깐 처음에는 속상하고 섭섭하고 그랬지.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하고 헤어져야 한다니깐.지금은 아파트로 왔는데 옆집 사람이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 제 17화 '쌀에 미치다.' 나종석씨 쌀은 생명을 잇는 끼니였고 우리 문화는 쌀을 중심으로 피어났다. 서구화된 식단에 밀려 점차 우리 밥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쌀'. 동시에 사라져 간 '쌀의 추억'.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 2부>에서는 경기미의 옛이야기를 쫓아 쌀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경기인들의 쌀 문화, 쌀에 대한 '썰(設)'을 풀어본다.#“땅이 있으니 내가 있고 내가 있으니 농사를 짓는 거지요. 신토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닙니다.우리 땅, 우리 물, 우리 고장에서 나는 곡식, 농부가 흘린 땀 만큼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 제 16화 '반백년 농사일기' 조팽기 옹 쌀은 생명을 잇는 끼니였고 우리 문화는 쌀을 중심으로 피어났다. 서구화 된 식단에 밀려 점차 우리 밥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쌀'. 동시에 사라져간 '쌀의 추억'.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 2부>에서는 경기미의 옛 이야기를 쫓아 쌀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경기인들의 쌀 문화, 쌀에 대한 썰(說)을 풀어본다.# “지금도 쓰고 있지. 눈이 안 보여도 써 오던 습관이 있어서 펜을 놓칠 못해. 애초에 40년 쓰기로 마음먹었으니 채워야겠더라고. 내년이 딱 일기 써 온지 40년 째야.”기억은 짧고 기록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 제 22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주 소로리 볍씨 쌀은 오랜 세월 우리의 삶과 역사를 지켜온 고마운 존재다. 또한 인류를 배불리 먹여야 할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더욱이 세계 인구의 절반은 이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쌀에 관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바로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생명의 씨앗2001년, 전 세계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는 일이 이 땅,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충북 청주시(당시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일대로 발견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밝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