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선 고지 깃발 … "정치적 고향 계양구에 보답할 것"
▲ 인천 계양구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당선인이 미소 짓고 있다. 송 당선인은 "죽산 조봉암의 남북 평화통일과 서민 복지 정신을 이어받아 인천에서도 대선 후보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대망론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당 대표 돼서 정권교체 틀 만들겠다" '야권공조·경제초점' 큰 정치 밑그림
지역 정치권 野 구심점 역할 발언도 …계양테크노밸리 '대선 공약화' 노력

이제 명실상부 인천 야권 수장이라 자부해도 괜찮지 않을까. 인천 계양구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당선인이 4선 고지를 탈환하며 돌아왔다. 송영길의 귀환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크다. '4선 의원이 1명 늘었다'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인천정치의 복원'과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을 말하는 정치인이다. 언젠가 대권에 가까이 가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이제 당 대표에 도전한다. 송 당선인의 '큰 정치'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연수구도 가고, 남구도 갔어요. 서구와 계양갑, 부평구도 다섯 번쯤 갔네요. 우리 당에서 7명이 당선됐습니다. 전 잘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분열로 야권이 많이 힘들 것이라는 초반 판세 예측에서도 계양을은 예외였다. 몇몇 계양을 주민들은 '이길 텐데 뭘 그렇게 돌아다니나'라고 송 당선인에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승리에서 그쳐선 안 될 정치인이었다. 인천 곳곳에 힘을 보태야했다. 그렇게 거둔 성적표는 13석 중 7석이었다.

"큰 성과였어요. 사실 더 얻을 수 있었죠. 연수을에서 단일화 불복 사태가 일어났고, 서갑에서는 국민의당 후보가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어려웠어요. 남갑도 마찬가지죠. 석권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는 국민의당과 단일화가 불발하면서 이런 상황이 초래됐다 지적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송 당선인이 현역 국민의당 최원식 의원이 버티고 있는 계양을에 출마했기 때문에 단일화가 깨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그는 '당'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이 탈당하지 않았다면 계양을에서 출마하지 않았을 겁니다. 내가 지키지 않았으면 우리 당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국민의당 바람이 거세지면서 계양갑도 위험했을 수 있어요. 지역에서 서구와 연수구로 가라는 권유가 많았지만, 전 신동근 당선인과 박찬대 당선인이 이길 수 있다고 했죠. 결국 제 말이 맞았어요."

당 대표를 향하다

그가 속한 '통합행동'은 개혁적인 중진급 인사가 모인 그룹이다. 통합행동은 통일된 입장과 견해를 내진 않고 있지만, 당내 균형추의 역할로서 속한 사람 하나하나의 발언이 중량감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송 당선인은 통합행동과 함께하며 여러 차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를 해체하고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밝혀 왔다. 이는 빨리 전당대회를 개최해 당 대표와 지도부를 뽑자는 말과 같다. 공공연하게 당 대표 출마를 말했던 송 당선인은 이제 당 중앙을 향하고 있다.

"당 대표가 돼서 정권교체의 틀을 만든다는 게 제 구상입니다. 야권 공조를 통해 정권교체의 틀을 만들라는 게 지지자의 명령이기도 하고요.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트를 자임하며 장사를 해선 안 됩니다. 정치게임에 나서면 당 지지율이 떨어질 게 분명하지요. 제가 당 대표가 되면 만들겠습니다."

그가 당 대표로서 만들 정치는 '경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현 정부가 경제 운영 능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최근 조선업계의 구조조정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유가 하락은 곧 산유국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지죠. 수출 급감하고 해운 물동량이 떨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사인이 다 오지 않았습니까. KDB산업은행이 STX그룹에 공적자금을 얼마나 투입했습니까. 그런데도 이번에도 실수를 반복하고 있어요."

그는 크게 조선업계 구조조정에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산업의 패러다임을 저부가가치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며, 유라시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북방경제를 뚫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한러관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러시아 특사로 윤상현을 보냈다. 그런데 중국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갔다. 러시아가 너무 서운해 한다"며 "푸틴을 두 번이나 만나고 러시아와의 끈을 가진 내가 한러관계를 풀 수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시장 재임시절 시행했던 '누구나집 프로젝트(기업형 임대주택)'로 주거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힘 모으는 건 좋은 일"

지역 정치권에서도 송 당선인의 보폭은 넓다. 총선 결과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장을 보태서 '송영길 사단의 승리'라고 평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무 자르듯 딱 자르진 않았다. 다만 함께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했다.

"송영길 사단을 넘어서…. 우리 당선인 7명이 서로 신뢰를 가지고 통합될 수 있는 조건이 있는 건 인천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죠. 각자 도생하는 구조가 일반화돼서 인천 현안이 발생해도 힘을 모으기가 어려웠거든요. 모두 직간접적으로 시정을 함께 했던 분이에요."

이러한 발언은 '보스정치'가 아니어도 지역 발전을 위해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죽산 뒤 잇는 정치인 나와야"

송 당선인은 죽산 조봉암 선생의 메시지를 남북평화통일과 서민 복지로 요약한다. 그는 이러한 메시지를 잘 계승하고 발전시켜서 인천을 대선후보가 나올 수 있는 지역으로 키워야 한다고 했다. 지역 주민에게는 계양테크노밸리 공약의 완성을 약속했다. 특히 당 대표에 오르면 대선공약에 포함시켜 정부 차원에서 이를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조봉암 선생은 진보대중정당을 만든 분이시죠. 그의 메시지를 잘 발전시키고 뒤를 잇는 정치인이 나와야 합니다. 4선 의원으로 만들어주신 계양구 주민께는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치적 고향인 계양구를 위해 열심히 보답 하겠습니다."

※ 송영길 당선인은 시장 재선 실패 딛고 재기 성공


인천 계양구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당선인은 1963년 전남 고흥에서 4남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 대동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인천과는 1986년부터 노동운동으로 인연을 맺었다. 배관용접공과 택시기사로 7년간 노동현장에서 일하다가 서른이 되던 해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이후 무료 법률상담과 무료변호를 통해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 1999년 계양 재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는다. 국회에는 2000년 첫 입성해 내리 3선에 성공한다. 2008년에는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차세대 리더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10년 4월에는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이후 4년간 재정난 탈출과 투자 유치에 힘쓰며 시정을 이끌었으나 2014년 석패한다. 중국 유학길에서 올라 돌아온 송 당선인은 단숨에 계양을에서의 승기를 굳히고 4선 고지에 오른다.


/대담 윤관옥 정치부장·박진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