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화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압구정동 '투명치과'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치아교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교정장치를 사용해 치아 교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환자를 모았다. 그러나 해당 치과는 허가받지 않은 재료로 투명교정장치를 만들어 사용하고, 진료비를 선납 받았음에도 진료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환자들이 부작용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환자들은 선납진료비의 반환을 요구하며 한국소비자원(소비자원)에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소비자원에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한 환자는 3700여명이고, 이들이 주장하는 피해 금액만 124억 원에 달했다. 소비자원은 치과 측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선납진료비를 모두 돌려주라 했다. 하지만 병원 측의 거부로 조정은 성립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현실 하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었다. '투명교정' 환자에게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고 일시 진료해 피해를 본 투명치과 고객들 중 카드로 할부거래한 환자(소비자)들에게 잔여금 지불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판단이었다. 공정위는 투명치과 피해자가 항변권을 행사하면 남은 할부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2018년 9월 3일 밝혔다. 공정위는 '피해자 면담을 통해 현황을 파악한 결과, 투명치과에서 발급한 계약서에는 진료 시기 및 방법, 총 소요비용 등 계약 세부내용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아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이와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서 투명치과의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하고, 신용카드사도 소비자 항변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이 있다.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할부거래법) 제16조에 따르면, 소비자는 할부계약이 불성립·무효인 경우, 할부계약이 취소·해제 또는 해지된 경우, 재화 등의 전부 또는 일부가 제6조 제1항 제2호에 따른 재화 등의 공급 시기까지 소비자에게 공급되지 아니한 경우, 할부거래업자가 하자담보책임을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등에 해당할 경우 할부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이는 할부거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소비자 항변권의 내용이다. 다만 할부거래법이 적용되는 범위에 제한이 있다. 우선, 할부거래법은 동산과 용역에 관한 계약에만 적용된다. 토지나 주택과 같은 부동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의약품, 금융관련 상품, 매수인의 주문에 의해 개별적으로 제조·제공되는 목적물에 대해서도 적용되지 않는다(동법 시행령 제4조). 할부거래법이 10만원 미만(신용카드의 경우 20만원 미만) 거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신용카드로 고가의 금액을 할부로 결제하는 경우 잔여할부금을 보호할 수 있는 소비자의 항변권(할부항변)의 행사가 유용할 수 있다. 즉, 20만원 이상의 금액을 3개월 이상 할부로 거래한 후,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거나 계약이 해지될 경우 소비자는 할부금 납입을 거절할 수 있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결제 철회·항변 건수가 가장 많았던 업종은 스포츠센터(20.3%), 피부미용·화장품(10.0%), 학원(6.7%), 병원(6.5%)의 순으로 나타났다.

'피부미용 화장품'은 피부 마사지 업체가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금액이 차감되는 고액 회원권을 판 다음에 잠적하는 사례가 잦았다. 또 학원에 수강신청을 할 때 수 개월치 학원비를 한꺼번에 내면 학원비를 할인해 주는데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폐업하거나 학원 관계자들이 연락을 끊는 경우도 종종 있다. 폐업률이 높은 업종에 대해 고액 결제를 하는 경우에는 신용카드에 의한 할부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편,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사기 할부거래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영세 자영업자에게 광고판이나 폐쇄회로(CC)TV를 사실상 공짜로 주겠다며 유인해 시세보다 고가로 할부거래를 하게 한 뒤 잠적하는 사기 판매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피해자는 대부분 금융지식이 부족한 영세 자영업자로 영업상황이 어려운 점을 교묘히 공략하는 수법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행위를 통해 물품을 구입하는 사업자는 일반 소비자와 달리 할부거래법상 청약철회권이나 항변권 행사에 제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