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1886년 미국독립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에 선물한 우정의 표시였다. 당시 프랑스에서 명성을 날리던 조각가 바르톨디가 제작한 46m의 여신상은 여러 개로 분리되어 대서양을 건너가 다시 조립되었다. 미국의 건국이념 '자유'를 상징하는 여신상은 그 후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을 맞아들였다. ▶독립전쟁당시 프랑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메리카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워싱턴 자신도 여러 번 영국과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는 영국의 패권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아메리카 독립전쟁에서 워싱턴군을 지원하는 것이 첩경이라고 판단하고 군수물자는 물론 육군과 해군을 파견하여 영국군을 견제하고 격퇴시키기도 했다. ▶지금도 미국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라파예트 후작과 로샹보 백작은 1만여명의 병력으로 해군 함정 24척을 지휘하여 해안을 봉쇄한 그라스 제독과 함께 요크타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아메리카 독립전쟁에 막대한 경비를 지출한 프랑스는 재정위기에 봉착했고 결과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메리카 혁명과 프랑스혁명이 '자유'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세계사적 대변혁이었던 셈이다. ▶독립 후 1세기 만에 지구상 최대강국이 된 미국은 그 후 프랑스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했다. 1차 대전 참전으로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했으며 2차 대전 때는 노르망디상륙작전으로 프랑스를 해방시켰다. 전후에 실시된 마샬플랜도 궁극적으로는 프랑스를 조속히 경제적으로 복구시키기 위한 미국의 경제원조 계획이었다. 지금도 노르망디상륙작전이 감행된 오마하비치에는 1만명이 넘는 광대한 연합군 묘소가 있고 부지는 프랑스 정부가 미국에 기증하여 유럽에 있는 유일한 미국영토이기도 하다. ▶200년이 넘는 미국과 프랑스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이상 징후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혈맹(血盟) 정도가 아니라 건국을 도와주고 패전을 승전으로 함께 만든 오랜 동맹국이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은 앞으로 미국과 안보를 함께할 수 없으며 독자적인 안보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미국이라는 동맹국과의 관계를 냉정하게 재정립할 때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유럽까지도 기존 판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