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자유롭게" … '몸짓의 대화' 어느덧 40년
▲ 최규호 마임이스트의 2011년 '거리의광대' 공연 모습. /사진제공=작은극장 돌체

 

1978년 서울서 전통광대로 데뷔 … 클라운 마임 창안·요술풍선 전파·인천 마임축제 기획 등 발자취


소리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몸짓'이 대신 표현해준다. 무대 위의 고요함은 우리를 압도한다. 소리가 없기에 더욱이나 집중되는 손끝, 발끝. 몸짓의 향연인 마임이 우리에게 소리가 전달하지 못하는 마음의 울림을 선사한다.


최규호 마임이스트는 1978년 신촌의 거론 스튜디오에서 '시시딱딱이놀이'라는 전통 광대로 데뷔한 뒤 40년동안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인천 미추홀구에 위치한 '작은극장 돌체'에서 특별한 수식어가 아닌 그저 '클라운 마임이스트'로 남고 싶다는 최규호(59)씨를 만났다. 그는 피에로나 어릿광대가 몸짓이나 표정으로 표현하는 무언극인 클라운 마임을 창안하고, 요술풍선을 국내로 전파한 세계적인 마임이스트다.

최규호씨는 인천 송월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인천밖에 모르던 그가 20살이 되던 해 그의 꿈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어릴 적 막연하게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대학을 나와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집으로 와 잠을 자고... 이런 반복적인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당시 무작정 영화판으로 뛰어들었지요."

그는 한독실업고등학교(현 정석항공고) 시절 학교 예술제에서 생애 처음으로 무언극을 무대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아 3년 내내 총감독을 도맡아 했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과감히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예술인의 길을 걷게 된다.

"처음 서울로 상경을 했을 때 1977년에 '비목', '설국'. '내가 마지막 본 흥남', '마리 마리 우리 두리' 등을 연출한 고영남 감독의 조연출 겸 보조출연 생활을 했어요. 이후 추천으로 1977년도 겨울 '극단 거론'에 들어가게 됐어요. 당시 무대와 분장실을 누비며 다녔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78년 마임 1세대인 유진규 감독의 공연을 통해 '마임'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마임을 봤을 때 이거다 싶었어요. 망설임 없이 바로 마임으로 노선을 바꿨죠. 이후 그저 오늘 하루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 보니 어느덧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어요."

'요술풍선'은 그에게 마법 같은 삶을 선물해줬다. 키다리 아저씨 분장을 하고, 기다란 풍선을 뚝딱! 강아지나 꽃으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이들이 만들어주던 '요술풍선'을 받아 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요술풍선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1988년 롯데월드에서 처음으로 그는 요술풍선을 선보인다. 이후 요술풍선은 점차 국내에서 확대돼 업으로 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임을 시작할 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지금은 대학 교과과정에서 배우기도 하지만 초반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마임과 관련한 외국서적들을 찾아다녔어요. 외국어도 잘 몰랐기 때문에 책에 있는 그림과 외국 필름들을 보며 따라 했어요. 항상 공부를 했고, 일련의 과정에서 클라운 마임이 탄생한 거죠."

이후 그는 전성기를 누볐다. 1993년 '속청'이라는 광고를 찍으며, 춘천마임축제 첫 회에 참석해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이어 1995년 '인천 국제 클라운 마임 축제'를 기획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또 2001년에 접어들면서 강단에 올라 '마임'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항상 캄캄한 무대 위에 '혼자' 올라야 했기 때문에 종종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러다 2002년 봄 '고도를 기다리는 광대들'이라는 작품을 통해 5명의 배우가 무대에 올랐어요. 그때 마임의 비전을 봤어요. 그 공연은 아직도 후학들 사이에서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아있어요. 오랜 세월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마임이스트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이에 맞는 마임기법을 연구하면서 기운이 다할 때까지 마임을 할 예정이에요."

튀기보다는 평범하기를 바라는 그는, 자유롭게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채로 있고 싶다고 한다. 특별해지는 순간 자유롭지 못하고, 작품 또한 진부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극단 마임' 감독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동료들이 바라 본 그는 …] "선구자.슈퍼맨 … 존경스럽다"

2002년 당시 '고도를 기다리는 광대들'에 출연했던 두 배우인 김찬수, 송정배씨는 최규호 마임이스트가 '마임의 선구자'이자 '슈퍼맨'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천 지역에서 활동 중인 김찬수 마임이스트는 1996년부터 '학익동278', '두 남자 이야기' 등 무수히 많은 작품들을 최규호 마임이스트와 함께 했다.

"저에게 최규호 선생님은 '슈퍼맨'같은 존재예요. 선생님은 연기는 물론이고, 악기연주, 마임, 전기, 음향, 무대, 연출 등 다방면에 재주와 실력을 가졌다. 선생님과 같은 마임이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족하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분이다. 이번 공연뿐만 아니라 50주년, 60주년 공연도 기대된다."

수도권 지역에서 활동 중인 송정배 마임이스트는 2001년부터 '클라운 마임의세계', '일상의 것들' 등의 마임공연과 '두 사람', '루브' 등의 연극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최규호 마임이스트와 호흡을 맞췄다.
"최규호 마임이스트는 '선구자'다. 해학과 풍자로 일상에서 생각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해준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애가 느껴져서 연기를 할 때 배우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런 점이 존경스럽고, 배우고 싶은 선배이자 마임을 함께 하는 동료이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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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클라운마임 선구자 최규호 9월6~9일 '광대 40년 이야기' 한국 클라운 마임의 선구자 최규호(59) 마임이스트가 작은극장 돌체에서 다음달 6일부터 9일까지 '광대 최규호 40주년 마임 이야기'를 공연한다. 이번 공연은 그와 함께 변화해온 마임 세계의 변천사를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연대별로 작품이 마련된다.▶관련기사 14면먼저 스타일 마임인 1984년 작품 '첫 야행'을 공연한다. 어리숙한 도둑 이야기로 철저하게 신체표현으로 이뤄진 작품이다.이어 공연하는 1991년 작품 '먹고 삽시다'는 클라운 마임 축제의 모티브가 됐다. 무대 위에서 숨조차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