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피할곳은 쪽방 지붕과 담벼락 그늘 뿐

 

7일 오후 2시. 인천 계양산 비탈에 자리한 김모(76) 할머니 쪽방에선 선풍기 모터가 굉음을 내며 팬을 돌리고 있었다. 나사 몇 개가 헐거운지 선풍기 머리가 요동쳤다. 김 할머니 남편께서 30년 전쯤 들인 거라고 했다. 근처 도랑이 원인인 듯한 악취가 열린 현관문을 타고 김 할머니 집을 가득 메웠다. 낯선 발걸음에 날카롭게 짖어 대는 동네 개들 소리도 따라 들어왔다.

김 할머니는 TV 화면에 시선을 둔 채 "벌써 푹푹 찌니 이번 여름도 속 좀 썩이겠다"고 입을 뗐다.

단열재 시공이 제대로 됐을 리 없는 쪽방 지붕이 직사광선 열기를 고스란히 전달해 내부는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이날 인천 낮 최고 기온은 29도. 여름 초입이라 폭염까진 아니었다. 도랑 악취, 개 짖는 소음까지 더해져 일반 가정이라면 창문 닫고 에어컨 돌렸지만 김 할머니 입장에선 꿈같은 얘기다. 그의 쪽방 냉방 시스템은 선풍기를 처음 들였던 30년 전에서 '1'도 발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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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한국전력거래소가 2013년까지 2년 단위로 가정 내 가전기기 보급률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마지막 해(2013년) 인천지역 에어컨 보급률은 0.74%다. 100가구 가운데 74가구에 에어컨이 있다는 의미다. 한국전력거래소가 2015년부터 관련 발표를 중단하면서 현재 인천 보급률을 정확히 알기는 힘들어도 1%에 가까울 것으로 짐작된다. 2009년 0.60%였던 에어컨 보급률이 4년 새 0.14%p나 급증했기 때문이다. 반면, 선풍기는 최고치였던 2006년 2.07%를 기점으로 2013년 1.45%까지 떨어졌다.

김 할머니는 "허리, 다리가 불편해 어디 잘 다니지 못한다. 외출할 일도 많지 않으니 여름에 찬바람 쐴 일이 없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공공데이터 포털에 등록된 계양구 무더위쉼터 37곳 중 이촌경로당이 김 할머니 집과 그나마 가깝다. 비탈길 따라 800~900m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다. 그는 이촌경로당에 가본 적 없다고 했다.

가난한 노인뿐만 아니라 일하는 노인에게도 여름 더위는 지금부터 걱정이다. 사회구조가 노인 실내 노동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으니 에어컨 찬바람은커녕 땡볕 피하기 힘든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6일 오후 1시쯤 인천 한 초등학교 담벼락 그늘 따라 노인 몇몇이 서 있었다. 초등학생 등하교를 돕는 공공근로자들이다. 공공근로자인 이모(72) 할아버지는 "아파트 경비나 운 좋아 공공기관 일자리 잡았다고 해도 다 밖에서 일한다"며 "올여름 물 많이 마시면서 조심하려고 한다"고 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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