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철군에 NYT·WSJ "미국과 대등한 강대국 이미지 확립" 평가
민간인 2천명 사망 그늘도…케리 미 국무, 내주 푸틴 만나 해법논의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자국 병력을 전격 철수시킨 데에는 시리아 내전 개입으로 노렸던 목적을 대부분 달성했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등은 15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시리아 철군에 관한 분석기사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이들 매체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시리아 공습을 통해 별다른 비용이나 피해 없이 광범위한 성과를 거둬들이고 재빨리 발을 뺐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우선 시리아 공습 제1의 목표이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권 수호에 성공했다.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붕괴 직전처럼 보이던 알아사드 정권은 같은 해 9월 시작된 러시아의 공습 지원을 계기로 기사회생했다. 시리아 안팎에서 알아사드 정권 붕괴를 노린 서방의 시도는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

모스크바국제관계연구원(MSIIR)의 이반 사프란추크 교수는 "알아사드 정권은 시리아 영토 대부분을 통제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살아남았다. 정권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다만 NYT는 러시아의 이번 결정이 시리아 사태에 오래 얽매이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됐으며 최근 내전 종식 협상에서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인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시리아 공습을 통한 푸틴 대통령의 성과는 우방인 알아사드 정권 지키기나 길들이기의 차원을 뛰어넘는다는 게 이들 매체의 공통된 지적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개입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의 고립 상태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대등하게 주요 국제 문제를 논의하는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한 게 대표적인 성과다.

러시아의 국제관계 전문가인 블라디미르 프롤로프는 최근 기고에서 "그동안 잊혔던 러시아-미국 간 협조관계의 부활이야말로 시리아 공습작전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성과"라며 "이를 통해 세계에서 오직 2개 강대국만이 전쟁을 멈출 수 있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NYT는 이와 관련, 러시아가 냉전 시기 중동 지역의 중요 행위자였던 옛 소련과 같은 '국제분쟁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되찾았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또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아랍의 봄' 당시 오랜 우방인 호스니무바라크 이집트 정권 붕괴를 방치한 것과 비교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 개입으로 '러시아가 더 믿음직한 동맹'임을 입증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또한 이번 시리아 공습으로 차세대 신형 무기 등을 선보이며 군사 강국의 면모를 국제사회에 다시금 각인시켰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육군 등 지상군 위력은 강하지만 공습 작전 능력은 그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장 최근 사례인 2008년 조지아와의 분쟁 때도 러시아 공군기는 수일 동안 여러 대가 격추당하는 등 허점을 드러냈다.

이번 시리아 공습도 러시아 국경에서 먼 지역에서 재보급을 하는 등 결코 쉽지 않은 작전이었으나 러시아군은 수개월 동안 이를 무사히 수행했다.

WSJ은 미국 이외에 이런 수준의 공습 능력 갖춘 국가가 거의 없으며 몇 년 전만해도 불가능했을 공습작전을 러시아군이 해낸 데에 많은 군사전문가가 놀라워했다고전했다.

이 신문은 또 이번 시리아 공습이 최근 수년간 이어진 푸틴 대통령의 군사력 강화 정책의 성과를 명백히 드러냈으며 주요 무기 수출국으로서 신형 무기를 선보이는기회가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제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에서와 같은 함정을 피하고 시리아에 장기주둔함으로써 유가 회복을 위해 협력이 불가피한 사우디아라비아와 대립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갑작스러운 병수 철수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철군으로 시리아 사태 해결의 희망이 싹트는 가운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다음 주 중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시리아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6개월가량 이어진 러시아의 공습은 무려 2천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낳는 등 큰 피해를 낳기도 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시리아 내 공습 상황을 감시하는 비정부기구(NGO) 에어워즈(Airwars)는 러시아 공습에 따른 민간 사망자 규모를 이같이 추산하면서 "러시아가 시리아 개입으로 거둔 전략적 이득은 모두 무고한 시민들이 흘린 피의 대가"라고 성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