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역사연구가 부부 일본식 주택 '나가야' 활용
한·중·일 교류 전시장 개관 … 日건축 특징·매력 고스란히
▲ 관동갤러리 전경


인천시 중구 신포로 31번 길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지은 목조주택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세월이 지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외관은 많이 변했지만 일부 건물 안에는 당시의 역사와 흔적이 서려 있다.

90년이라는 시간의 향기가 남아있던 평범한 주택이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증명하는 장소로 재탄생했다. 지난해 1월 문을 연 인천관동갤러리는 오래된 일본식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한·중·일을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네가 간직한 옛이야기를 전하는 소통의 공간으로서 관동갤러리를 찾는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중이다.

일본식 목조주택 '나가야(長屋)'와의 만남

 


지난 2013년 5월 사진작가 류은규씨와 역사연구가 도다 이쿠코씨 부부는 인천에 정착했다.

줄곧 아파트 생활을 해오던 이들에게 언젠가는 역사의 흔적이 있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아들의 독립을 계기로 두 부부만 남게 되자 여러 지역을 찾아다니며 이사 갈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근대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인 인천이 마음에 들어왔다. 부부는 중구청 주변에 위치한 일제시대 관사로 지어진 연립형 주택 '나가야'를 만났다.

'나가야'는 집 여섯 채가 같이 붙어있으며 한 지붕 아래 이웃집과 벽을 공유하는 서민주택을 가리킨다. 겉에서 볼 때는 시멘트 벽면을 가진 평범한 집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좁은 복도와 나란히 붙어있는 방들은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 구조다.

도다 이쿠코씨는 어릴 때 일본에서 '나가야'에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인천에도 이런 집이 남아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평소에도 인천에 지인들이 많아 자주 왔었지만 삶의 터전이 될 생각을 하니 부부는 설레었다. 그들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부부의 살림집 옆에 벽 하나를 둔 이웃집은 중국인 서커스단 단원 20명이 사는 숙소로 시끌벅적했다. 일본식 주택 구조상 워낙 가까이 붙어있다보니 소리가 다 들릴 수 밖에 없었고 어느날 단원들이 이사 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침 류은규씨는 본인이 찍은 사진과 함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있던 중이었다. 2014년, 옆집을 사들이기로 결심했고 그것이 지금의 인천관동갤러리가 됐다.

집의 역사를 찾아가는 '재생 프로젝트'

 

▲ 일본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과 천장을 이용한 작품 전시.


인천관동갤러리는 약 1년간의 대대적인 공사를 거쳤다. 기존의 일본식 주택을 허물지 않고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건축가이자 일본식 주택에 조예가 깊은 도미이 마사노리 한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가 관동갤러리 공사의 총 감독을 맡았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감각에 맞는 쓰기 좋은 집을 만들기 위한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붕 밑 천장판을 철거하자 굵은 대들보(작은 보에서 전달되는 하중을 받기 위해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른 보)가 보였고 일본식 주택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랜 세월 자취를 감췄던 천장판 위 공간은 먼지로 가득했다. 그 누구도 천장판 위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

집은 높은 천장과 아래층이 하나로 이어지는 새로운 구조를 취하게 됐다.

공사현장에서 상량문을 발견하지 못해 집의 건축연도를 확인하지 못하던 중 교토대학교에 있는 1930년대 인천지역 지도에서 지금의 관동갤러리와 함께 여섯채의 주택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공사를 마무리 지을 때쯤 내부 계단을 만드는 작업도중 집의 보(기둥 위에서 지붕의 무게를 전달해주는 건축 부재)를 보호하기 위해 감싼 종이가 일본어 신문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신문에는 '경성일보 대정(大正)13년 1월 19일'이라는 글씨가 쓰여있었고 건물의 역사는 90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집 내부의 옛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 벽 위에 가스관이 지나갔던 모습을 그대로 둔다던가 기름때가 묻은 타일을 부시지 않고 방치한 것에서 관동갤러리의 의미와 공간의 존재 이유가 드러난다. 낯설게 다가오는 일본식 주택의 건축적인 특징과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관동갤러리 '재생 프로젝트'에는 중구의 '근대경관 보조금 사업'과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의 큰 도움이 있었다.

이렇게 평범했던 일본식 주택은 개항장 거리에 남아있는 역사의 기억과 흔적을 간직한 공간으로 탄생했다.

류은규씨와 도다 이쿠코씨 부부는 도로명 주소 시행으로 지도에서 사라질 지명 '관동(官洞)'을 남기기 위해 이곳을 '인천관동갤러리'로 이름 붙였다.

기억과 재생의 전시공간

 


인천관동갤러리에서는 오는 20일까지 '한·중·일 길상(吉祥)의 두루미 전을 연다. 두루미 전 역시 관동갤러리가 갖고 있는 공간적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두루미는 예로부터 한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길조(吉鳥)로 알려져있다. 주변에서 쉽게 두루미를 발견할 수 있지만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관장 도다 이쿠코씨는 오백 원짜리 동전과 우표, 대문 무늬 등에서 우리 곁을 조용히 지키고 있는 두루미가 그동안 어떻게 표현돼 왔는지 알리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

두루미 전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주변 이웃들이 장롱속에 보관해온 두루미가 새겨진 병풍이나 소품들로 전시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관동갤러리의 역할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도다 이쿠코씨는 2층 전시장으로 직접 관람객들을 안내하고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작품에 대해 천천히 설명한다.

작품이 관동갤러리에 전시된 계기 부터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까지 그동안 알지 못 했던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답고 예술적인 작품을 감상하는 것 뿐 아니라 이면에 숨겨진 역사를 발견하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갤러리 문 앞 1층에 모여있는 일본의 옛 물건들과 사진가 류은규씨의 사진들은 관동갤러리만의 분위기가 풍기는 공간이다. 기모노 천을 활용해 만든 옷과 가방, 무척 오래돼 보이는 벽걸이 시계 등의 소품들과 중국 내 조선족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이 전시돼 있다.

2층을 지나 꽤 높은 3층 다락방으로 올라가면 책이 촘촘히 꽂혀있는 것이 보인다.

누구든 편하게 앉아 도서관처럼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로 역사, 건축, 사진 관련 서적을 만나볼 수 있다.

일본식 주택 특유의 천장과 목조로 만들어진 구조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곳으로 관동갤러리 내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두루미전이 끝나면 사라져 가는 문화재를 사진으로 남긴 중국 작가의 사진전과 한국의 천을 이용해 일본 식으로 소화한 일본 작가의 보자기 전을 열 계획이다.

관동갤러리는 한·중·일 문화교류의 장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인터뷰 / 도다 이쿠코 관장
"역사 현장서"살고 싶었던 꿈 실현된 공간"

 

▲ 도다 이쿠코 관장


"이 집에 와서 제 자리를 제대로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역사의 현장에 살고 싶었던 꿈이 실현된 공간이기도 하고요."

관동갤러리 일대는 1883년 인천개항과 함께 들어온 일본인들이 집을 짓고 머물던 거주지였다. 지금은 대부분 집들이 많이 헐리고 개조돼 사라졌다.

일본식 주택은 '적산가옥(敵産家屋, 1945년 8월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이라 불린다. 부정적인 의미가 있어 예부터 적산가옥에 산다는 것은 좋은 집으로 이사 갈 형편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살고있다는 인식이 있기도 했다.

"이 곳이 적산가옥이지만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다고 믿었어요. 집의 천장판을 다 땐 이유도 그것 중 하나에요. 동네 분들이 처음 관동갤러리에 와서 본인들이 살고 계신 집도 이런 형태라는 것에 신기해하셨어요. 적산가옥이 아닌 활용도가 높은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도다 이쿠코씨는 관동갤러리를 찾는 이들에게 일본식 주택이 이 주변에 많은 이유와 역사에 대해 알리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문화체험으로 갤러리를 찾았는데 왜 일본인들이 이곳에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더라고요. 처음 보는 낯선 구조의 집을 마주하는 것이 살아있는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관동갤러리가 역사와 현재의 삶이 만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