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뜨끈 심신 달래고, 오손도손 얘기 나누니…모락모락 정 피어나네
▲ 인천 동구 화도진로 68번길에 위치한 삼화목욕탕.


50~60년대 개장 동구 '삼화목욕탕' … 2대째 운영 중구 '제일사우나'
동네 터줏대감이자 사랑방 … 최신식 시설에 밀려 사라져 가 '아쉬움'


명절이면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목욕탕에 가는 것이 연중행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는 동네 길목에서 목욕 바구니를 들고 지나다니는 이웃을 마주치는 일도 흔한 풍경이었다.
 
어느 순간 대규모의 편리한 시설을 갖춘 스파와 온천, 사우나 등이 생겨나면서 벽돌에 목욕탕 그림이 그려진 굴뚝은 자취를 감췄다.
 
몸을 깨끗이 씻기 위한 장소 일 뿐 아니라 소박하고 친숙한 생활 속 문화로 자리 잡았던 동네 목욕탕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천에 얼마 남지 않은 옛 목욕탕들을 찾아 그곳의 이야기를 담았다.

골목길 터줏대감

 

▲ 인천 중구 홍예문 근처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2대째 운영 중인 제일사우나.


인천시 동구 화도진로 68번길에 위치한 삼화탕은 오랜 시간 동네를 지켜왔다. 새로운 건물과 함께 도로는 깔끔하게 변모했지만 삼화탕이 있는 골목은 유일하게 시간이 멈춰있다.

28일 오후 1시 삼화탕 앞을 두리번거리던 중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목욕합니다'라는 나무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에는 '남탕', 오른쪽에는 '여탕'이라 쓰인 문을 열자 '드르륵' 쪽문 소리와 카운터에서 주인 최부심(86)씨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이 목욕탕을 인수한 게 1970년도 쯤이니 벌써 50년이 다 되어가네. 전 주인이 개장을 50년도에서 60년도 사이에 했대. 오래되기야 오래됐지. 예전에는 주변에 장사하는 상인들이 일 끝나고 꼭 여기서 씻고 가곤 해서 손님이 꽤 있었는데 어느순간 이 주변이 썰렁해졌어."

삼화탕은 문을 연 이후 주인이 여러번 바뀌었지만 동네 사람들에 의하면 주변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 중 하나로 꼽힌다.

대부분 단칸방 살이를 하던 시절에는 샤워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집 안에서 목욕을 하기 어려워 때가 되면 목욕탕을 찾는 것이 당연했다.

개발이 시작되자 아파트가 들어서고 깔끔한 시설과 찜찔방을 갖춘 목욕탕들이 생겨났다. 삼화탕 처럼 작은 동네 목욕탕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 평균 손님이 10~20명정도 돼. 남탕은 좀 있는 편인데 여탕은 그나마 단골손님들만 꾸준히 오지. 새신사는 여탕에 한 명있고 남탕에는 탕을 관리하는 기관장이 있는데 손님들이 오면 가끔씩 때도 밀어주고 해. 요즘은 버리는 물까지 세를 받으니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도 나가는 돈이 많아."

오후 2시가 다 돼가는 시간, 입장료 5000원을 내고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자 따뜻한 장판 바닥 덕분에 차가웠던 발이 녹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물함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의 열쇠가 아닌 위에서 아래로 꼽으면 문이 잠기는 키가 고무줄에 달려있었다.

탕 안에는 새신사 한 명이 손님의 등을 밀어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크기의 온탕과 냉탕이 있었고 '한증막'이라 쓰인 유리문 너머로 땀을 빼고 있는 손님 하나가 보였다. 온탕은 몸이 반 정도 잠길 정도의 높이였고 냉탕은 꽤 깊었다. 수도꼭지와 샤워기는 여러번 수리를 거쳤지만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제 나이가 지금 65살인데 20대 때부터 삼화탕에 다녔어요. 그 때는 목욕탕이 사람으로 북적거려 줄을 서서 때를 밀어야 할 정도였죠. 그래도 여기오면 늘 동네 사람들을 만나 반가웠는데 지금은 나이 든 분들이 주로 찾죠. 여기 바닥이 요즘 목욕탕하고 다르게 타일이 아닌 돌바닥이라 미끄러질 염려가 없어서 노인들이 목욕하기에 좋아요."

사람들로 북적이던 동네 사랑방

삼화탕은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었다. 이곳에서 이웃들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자연스레 처음 보는 사람과 얼굴을 트며 가까워졌다. 탈의실에는 왁자지껄 수다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하루에 물을 두 번이상 갈아야 할 정도로 탕은 꽉 찼다. 이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주민 몇몇만이 삼화탕을 찾는다.

목욕을 먼저 마치고 나온 할머니가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워 뒤따라 나온 아주머니에게 물 한 잔을 달라고 부탁했다.

이마에 손을 짚고 있는 모습이 머리가 많이 아픈 듯 보였다.

할머니는 뜨거운 물에 오래 있었더니 기운이 빠지고 어지럽다며 이제는 목욕도 힘들다고 한탄을 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씁쓸함을 토로했다.

먼 곳에서 온다는 단골손님 하나가 오랜만에 목욕탕을 찾았다. 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친숙하게 안부를 묻는 모습이 긴 시간을 알고 지낸 사이처럼 보였다.

"저는 이 동네 사람도 아닌데 꼭 여기까지 목욕을 하러 와요. 우연히 지나가다 들렀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주인아주머니가 워낙 사람이 좋으셔서 늘 반갑게 대해주세요. 가끔 서비스로 음료수도 하나씩 주면서 어떻게 지내냐고 꼭 물어보시고요. 정이 많은 분이에요. 아마 저처럼 아주머니 때문에 여기 오는 손님들 많을걸요."

삼화탕은 24시간 손님을 받는 요즘 목욕탕들과 다르게 새벽 6시에 문을 열고 오후 3~4시가 되면 문 닫을 준비를 시작한다.

주인 최부심씨는 예전보다 문을 닫는 시간이 빨라졌지만 그래도 다음날 목욕을 하러 올 손님들을 위해 청소를 잊지 않고 탕 안에 물도 꼭 간다고 말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목욕탕을 계속 이어갈지는 모르겠다"며 예전에는 주변에 목욕탕이 꽤 많았는데 이제는 삼화탕을 포함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들이 몇 없다고 전했다.

▲역사와 추억이 남아있는 공간

인천에서 오래된 목욕탕으로 알려진 제일탕은 중구 홍예문 근처에 위치했으며 아버지와 아들이 2대째 운영 중이다.

1967년 40원으로 시작한 제일탕의 입장료는 물가가 오르면서 어느새 5000원이 됐다.

일제시대 건물이었던 제일탕은 리모델링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간판과 외관은 새로워졌지만 탕 입구를 가득 매운 목욕 바구니에서 오랜 시간 목욕탕을 드나든 손님들의 흔적이 느껴졌다.

주인은 "50년 전에는 나무와 석탄을 때서 목욕탕 물을 대폈다"며 "심야 전기도 해보다가 지금의 도시가스로 운영 중이지만 전기세와 물세가 만만치 않아서 인건비를 따로 쓸 수 없어 부인과 돌아가며 카운터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탕은 인천에서 가장 큰 목욕탕 중 하나였지만 새로운 목욕시설을 따라가기 힘들어지자 자연스레 손님이 줄었다.

이른 시간부터 제일탕을 찾은 손님은 목욕탕 앞 상점들만 변했을 뿐 전봇대가 있던 위치와 거리의 모습은 30년전과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제일탕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됐죠. 예전에는 이 앞에 미군들 상대로 영업하는 양공주들이 많이 살았어요. 지금으로 치면 화류계 여성이라고 하죠. 목욕탕에 오면 그 사람들을 자주 마주쳤던 기억이 나요."

목욕탕 주변 옛 풍경을 이야기하던 손님은 새로운 곳으로 사람들이 다 떠났다며 아쉬움을 토로햇다.

"명절이나 주말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목욕탕으로 모여들었죠. 서로 등 밀어주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는 얼굴도 찾아보기 힘들어요. 옛 생각에 가끔씩 목욕하러 들를 뿐이에요."

세련되고 화려한 시설의 사우나와 찜질방이 등장하면서 따뜻한 탕 속에서 오고 가는 정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일상과 가장 친숙했던 목욕탕은 오랜 세월을 지나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새긴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글·사진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