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를 들이마시자 폐 가장자리가 가볍게 어는 듯했다. 무릎을 들어 눈 위에 발을 얹고 무게를 얹었다. 발이 눈 속으로 깊이 묻혔다. 물기가 별로 없이 팍팍한 눈이라 걷기에 나쁘지 않았다. 발을 올리고 그 다음 발을 내려놓았다. 다음 발, 그 다음 발. 그는 머리를 감싼 모자 속으로 메아리치는 숨소리를 들었다. 하, 후, 하, 후. /황정은 소설 <뼈도둑>중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눈이 내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눈밖에 없는 곳에서 절대고독의 눈 속을 헤치고 그 풍경 속으로 쑤욱 들어가려고 한다. 그가 가방에 챙긴 것이라고는 약간의 곡식과 소금, 그리고 랜턴이 전부다. 그는 '눈 위에 발을 얹고 무게를 얹'으며 걷는다. 텅 빈 공간 속으로 메아리치는 자신의 숨소리를 듣는다. 하! 후! 하! 후!, 가 아니라 하, 후, 하, 후의 숨소리를 듣는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고립무원의 절대고독 앞에 서봐야 온전히 자신을 볼 수 있다. 아니, 자신 밖에 볼 게 없다. 남의 평판이나 의식, 보여 지는 모습이 아니라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자신의 참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겨우 곡식 조금과 소금을 들고 오로지 눈 밖에 보이지 않는 길을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이가 당도하고자 하는 곳, 찾는 곳이 중요하지는 않다. '선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이 고립무원 상태의 절대고독을 우리는 맛볼 수 없다. 손에는 언제든 열어볼 수 있는 인터넷, 게임, 노래가 있다. 오감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오로지 눈 덮인 길에 서봐야 그 눈과 얼음의 무게를 이기고 노랗게 꽃을 피우는 여리디 여린 복수초의 경이를 만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오로지 자신 스스로의 무게를, 호흡을 감당하고 들을 수 있어야 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어떠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인지조차 모르고 떠밀려 간다. 죽는 날까지 자신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으며 어떠한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고 가는 사람도 많다. 모두 고립무원, 절대고독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