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미술관 전시관을 둘러보는 주민.


'베스트셀러 '괭이부리말 아이들'배경 마을에 작은 미술관 터잡아
내달까지 '집과 집 사이' 개관展'기억의 동네' 주민작품 전시도


세련된 인테리어와 큰 규모의 건물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던 터전을 토대로 한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인천 동구 만석동에 위치한 우리미술관은 베스트셀러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잘 알려진 작은 어촌마을의 삶이 묻어나는 곳이다.

지난해 11월 개관한 '우리미술관' 전시관은 원래 빼곡히 붙어있는 쪽방 3개의 빈 집을 활용한 건물이다.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함께 만나볼 수 있는 교육관도 함께 운영되고 있는 친숙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이웃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우리미술관은 전시공간을 넘어 모두에게 열려있는 마을의 따뜻한 사랑방이기도 하다. 미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힘든 인천에서 작지만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문화공간이 생기면서 우리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금 우리미술관에 가면 '집과 집 사이-철, 물, 흙' 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인천 동구의 긴 역사 속 만석동의 이야기를 담은 개관전으로 오는 2월28일까지 계속된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하는 미술관 지향

 

▲ 우리 미술관 개관식 길놀이.


우리미술관은 동구청이 만들었으나 전반적인 운영은 인천문화재단이 맡고 있다. 인천문화재단은 우리미술관을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개관 전 부터 소통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괭이부리말에 거주 중인 주민들을 대상으로 도자기를 직접 빚고 굽는 도자프로그램과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나눠 먹을 수 있는 베이킹프로그램을 각각 8주, 4주 동안 운영했다.

도자프로그램은 지역 도예작가가 참여해 주민들과 함께 '내가 살아 온 동네'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미술관의 도자 간판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알지 못했던 이웃들이 알아갈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마련됐고 미술관이 생긴다는 소식이 마을에 알려졌다.

'기억의 동네'라는 주제로 체험 프로그램에서 주민들의 손으로 만든 작품들을 전시 중에 있다. 동네 아이들 29명과 도지성 작가가 흙물을 풀어 '내가 사는 동네', '나의 가족' 등 이라는 주제로 그린 그림이 걸렸다. 주민 참여 전시는 개관전과 함께 오는 2월28일까지 열린다.

개관식 또한 마을 주민이 주체가 되는 하나의 마을잔치였다. 재단과 동구청의 협약식 후 개관전 작품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마을 주민이 하나가 되어 떡과 음식을 나눠먹었고 전통 연희단 '잔치마당'의 신명나는 길놀이도 펼쳐졌다.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102동에 살고있는 신영자(78) 어르신은 개관전에 진행된 체험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하셨다.

신 어르신은 "어제가 미술관 휴관일 인 것을 잊은채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도 없어서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며 "우리같이 할 일없는 노인들에게 미술관은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자 배움의 기회를 주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만석동에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고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이 많다. 우리미술관은 체험프로그램과 전시를 통해 어르신들의 삶의 활력을 더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미술관은 지난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전시공간이 없어 미술작품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 주민들의 문화격차 해소를 위해 시행한 '작은 미술관 조성 운영사업' 공모를 통해 설립된 공간이다. 이 사업에 인천을 포함해 경기도 안산, 충청남도 두계, 경상남도, 전라남도 소록도 등이 선정돼 각 지역의 특성이 결합 된 미술관들이 개관했다.

인천문화재단은 사업 공모를 위해 인천에 문화공간이 가장 필요한 지역을 찾아 나섰다. 중구는 아트플랫폼이 위치하면서 주변에 갤러리들이 많이 생겼고 남동구도 이미 문예회관이 위치해 있었다.
유일하게 동구에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인천문화재단이 동구청에 '작은 미술관 조성 운영사업'에 대한 협의를 요청하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공모 준비를 위한 기획을 거쳐 우리미술관이 문을 열게 됐다.

▲긴 역사 속의 만석동을 새롭게 해석한 개관전

 

 

▲ 우리 미술관 외부


우리미술관 개관전의 주제는 '집과 집 사이-철,물,흙'으로 작가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만석동의 역사와 현재 모습이 담겨있다.

만석동은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갯벌이 대부분이었던 이 곳에 고양이섬으로 불린 작은섬이 있었다는 유래에서 괭이부리말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천의 가장 오래된 쪽방촌이기도 한 이 곳은 조선시대부터 세곡을 쌓아두던 쌀 창고와 포구, 수문통까지 연결된 수로가 있던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1905년 일본인이 갯벌을 매립해 새로운 땅을 만들었고 정미소와 간장공장이 들어섰다. 이후 당시 조선기계제작소, 현 두산인프라코어가 설립됐다. 일본 군수공장이 가동되자 근로자들의 숙소를 신축하면서 1940년대에 들어서 지금의 괭이부리마을이 생겨난 것이다.

해방 이후 모습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만석동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나란히 붙어 있는 판잣집이 좁은 골목길로 이어진 이 곳은 옛 풍경 속에 새로움이 입혀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개관전에 참여한 강혁, 구본아, 김순임, 도지성, 이상하 등 5명의 작가는 만석동을 직접 걷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마을의 분위기와 역사 속으로 스며들었다.

각자의 예술적 시선으로 마을을 읽어낸 이 들은 만석동을 상징하는 철강단지(철), 부둣가(물), 그리고 이 곳에서 땀흘린 노동자(흙)을 작품의 주제로 정했다.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펼쳐진 작품들은 만석동 괭이부리마을이 간직해 온 역사가 그대로 느껴진다.

'닻 사장'이라는 주제의 사진작품을 선보인 작가 강혁은 마을에서 20여 년간 배의 닻을 만들고 수리해 온 장인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본인이 직접 마주한 화수부두 닻장인의 생애를 담담한 듯 깊이있는 표정이 담긴 한 컷의 사진으로 표현했다.

작가 구본아는 한지꼴라쥬에 먹과 채색을 이용해 철강단지의 발전과 변화를 겪어온 만석동의 일생을 그렸다.

미술관 중심에 자리잡은 작가 김순임의 작품은 굴 껍데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한때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일대 집의 기초를 다지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 굴은 지금도 주민들의 생계와 땔 수 없는 존재다. 굴 껍데기를 수집해 동네와 주민들의 삶을 예술적으로 표현해낸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흙을 이용해 작품을 만든 작가 도지성은 '흙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동네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 물에 풀어낸 흙을 캔버스 위에 더하고 지워가며 만석동의 모습을 표현했다.

다양한 재료를 조각해 양의 모습을 한 설치작품으로 만들어낸 작가 이상하는 만석동의 흙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작업을 위한 소통을 했다. 그는 팍팍한 삶이지만 집 앞 텃밭에 꽃과 채소를 심고 정성스럽게 가꾸는 주민들의 마음을 통해 삶과 희망을 보고 조각 작업으로 표현했다.


[인터뷰 / 최선미 인천문화재단 기획사업팀]
"주민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공간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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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미 인천문화재단 기획사업팀


"넓은 공간에 대한 욕심보다 작은 규모라도 마을 주민들이 꾸준히 찾아올 수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우리미술관의 목표입니다."

우리미술관의 사업 공모단계부터 개관까지 모든 것을 함께한 최선미씨는 인천문화재단 기획사업팀에서 지역공동체문화 만들기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개관 후에도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공간의 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미술관 내 교육프로그램이 잠시 휴식 중에 있는데 새해가 시작했으니 다시 마을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계획 중에 있습니다. 우리미술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져 미술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뿌듯하고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우리미술관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동구에서 미술관을 지원해주는 조례를 재정했다. 세부적인 부분은 아직 협의가 필요하지만 여러모로 예산적인 부분이 필요한 우리미술관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그는 우리미술관 운영에 대해 주민들 뿐 아니라 동구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미술관의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개관전이 끝나고 앞으로 열릴 전시도 인천과 만석동이라는 지역의 색이 드러나는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교육프로그램은 마을 주민의 대부분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할 예정입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어르신들을 위한 초상화를 그려드리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이 언제나 찾을 수 있는 편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리고 활기 넘치는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