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아이콘, 조봉암을 말하다 … 조국 서울대 교수
   
▲ 최근 인천을 찾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인천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인천은 평화통일과 복지국가론을 주창하며 국가 비전을 제시한 죽산 조봉암의 본향이자 정신적 계승지"라며 미래사회 인천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윤상순기자 youn@itimes.co.kr


열흘 전 열린 죽산조봉암선생명예회복범민족추진위원회 주최 '죽산 조봉암 선생 사상 및 업적 재조명' 심포지엄에서 사회를 맡았던 조국(46)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죽산의 사상을 '오래된 미래'라고 규정했다.
1950년대 6·25전쟁 중에도, 전후(戰後)에도 죽산은 목숨을 걸고 평화통일을 외쳤고 당시로는 이상적이라는 비판에도 복지국가론을 주창했다.
이에 대한 조국 교수는 "50~60년 전 죽산은 이미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했다"며 "우리 세대가 이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연구해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의 대담을 엮어 지난해 말 발간한 <진보집권플랜>은 50~60년 전 죽산의 생각을 시대에 맞게 잘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진보진영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조국 교수를 서울 심포지엄과 강연차 방문한 인천에서 두 차례 만났다.


조 교수가 죽산 조봉암 선생 사상 및 업적 재조명 심포지엄 사회를 맡은 것은 필연적이다.
부산이 고향인 조 교수의 일가는 경남 창원에 창녕 조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죽산이 2·3대 대통령에 출마해 경남 일대 선거운동 할 때는 조 교수의 조부를 만나 상의도 하고 도움도 받았단다.
조 교수는 "집안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죽산이 지향했던 바에 매료된 것도 컸다"며 "대법원 재심까지 죽산의 맏딸 조호정 여사와 자주 만나 법률적 조언도 하고 의논도 자주했다. 이번 심포지엄도 그래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SNS 페이스북에 존경하는 인물로 죽산과 몽양 여운형을 올렸다.
"죽산과 여운형은 광복 전후 비슷한 입장을 보였고 불행한 죽음을 당했지만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던 분들"이라며 "특히 죽산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50년대 목숨을 걸고 평화통일을 외쳤던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1950년대는 '북진통일'이 국시로 여겨지던 극한 대립 상황에서 '평화통일=빨갱이'의 등식이 성립되는 전쟁시기였다.
죽산 사후 평화통일은 금기어가 됐고 불온시 되다 이제야 당연한 상식이 됐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죽산이 살았다면 우리 현대사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조 교수는 "냉전세력의 한계, 이승만 정권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수 대 진보 양당체제나 보수 대 자유 대 진보 3당체제를 갖춰 정치적 민주화가 정착했을 것"이라며 "죽산은 노동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만큼 적어도 전태일 분신 같은 압축적 성장에 따른 부작용도 상당 부분 해소하고 지금과 같은 사회적 소모가 큰 분쟁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강화초등학교 졸업이 유일한 공식학력였던 죽산은 제헌의회 헌법기초위원으로 활동하며 탁월한 식견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를 닦았고 2·3대 대통령선거와 진보당 강령에도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상당히 선진적인 내용을 설파했다.
특히 노동과 복지문제에 대한 죽산의 앞서간 식견은 연구자마저 놀라게 한다.
조 교수는 "북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노사정 합의체에 따른 '사회임금' 키워드는 한국사회에서 시급히 도입하고 해결해야 할 모순"이라며 "이미 죽산은 60년 전 이제 '유럽드림'이라 부를 수 있는 피해대중을 위한 각종 제도들, 노동자의 경영참여, 이익균점, 실업급여 등을 밝혔고 선거공약과 당 강령에 명시했다"고 밝혔다.

   
▲ 조국 교수(가운데)가 지난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죽산 조봉암 선생 사상 및 업적 재조명 심포지엄'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윤상순기자 youn@itimes.co.kr

조 교수는 "국민의 90%가 농민이었던 1950년대 농지개혁을 성공시켜 공산화를 막았던 죽산 같은 이가 노동부장관을 맡았다면 현재와 같은 생산성 없는 적대적 관계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형식적인 노사정 합의체가 아니라 북유럽 같은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냈을 법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진보집권플랜>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했다.
조 교수는 "핵심 중 하나가 '사회임금'을 높이는 것이다. 직장에서 일하고 받는 '시장임금'에만 의존하니 삶이 팍팍해진다"며 "유럽에서는 국민의 70~80%가 큰 부담 없이 평생 임대주택에 살고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은 희귀한 일이고, 대학등록금도 매우 낮아서 교육비 부담도 적다. 무상의료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중병이 들었다고 해서 집안이 의료비로 거덜 나는 일도 없다. 시장임금 외에 사회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 모든 것을 개인이 시장임금으로 해결해야 하니 죽을 노릇이다. '빨갱이 콤플렉스' 때문에 두려워서, 또는 '아직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때문에이러한 것을 국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정리했다.
박근혜 의원이 '복지'를 들고 나온 것도 득표 전략에 유효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기본생활이 보장되고 그 책임을 국가와 사회가 져야 한다는 상식적 개념이 성립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죽산에 대한 평가도 '사회민주주의'에 국한하지 말고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스탈린주의적 공산주의를 과감히 배격했으면서도 친미반공주의와는 다른 길, 제3의 길을 갔던 죽산은 사회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 사회민주주의가 섞여 있던 '현실적인 길'을 갔던 것이다.
조 교수는 인천의 역할도 주목한다.
그는 "처가 어르신들이 대부분 인천에서 터전을 잡고 인천에서 학교를 나온 분들이라 자주 인천을 찾는다"라면서도 "인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죽산이 밝혔던 평화통일 사상은 남북간 교류, 협력을 말씀하셨던 것으로 판단된다. 인천이 그 역할을 했었으며 앞으로도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남북간 화해와 교류가 활발했던 지난 10년간 인천은 강원도와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가장 혜택을 본 도시라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송영길 인천시장은 386 정치인 중 가장 오른쪽에 서 있었지만 인천시장에 출마하면서 친환경정책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송 시장이 배관용접공으로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시절의 초심을 잃지 말고 우직한 황소처럼 시정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는 "정치인이 되라는 권유를 꾸준히 받고 있지만 적어도 현재 내 역할은 진보진영의 접착제가 되는 것"이라며 "북콘서트처럼 감성적 공유점을 만들어 가는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김칭우기자 chingw@itimes.co.kr


● 조국 교수는 …

- 1965년 부산 출생
- 1982년 서울대 법대 최연소 입학
- 1992년 최연소 울산대 교수
- 미 버클리대 로스쿨 박사
- 2001년~현재 서울대 교수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부)소장, 국가인권위원
- 저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성찰하는 진보>, <보노보 찬가>, <진보집권플랜>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