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상정(常情)이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성 두보가 전란에 쫓겨 성도(成都)에서 만년을 보낼 때 읊었다는 절구 '귀안(歸雁)'에 지금도 공감하는 것은 그것이 본연의 정서이기 때문이리라.
'춘래만리객(春來萬里客)/난정기년귀(亂政幾年歸)/장단강성안(腸斷江城雁)/고고정북비(高高正北飛'(봄에 와 있는 만 리 밖의 나그네는/난이 그쳐 어느 해에 돌아갈까?/애를 끊는구나, 강성의 기러기/똑바로 높이 북쪽으로 날아가느니)
피난지 사천성 성도에서 고향인 하남성 공현까지는 쉬 가 닿을 수 없는 거리. 두보는 전란 중 머나먼 타관에 떨어져 홀로 살아가고 있는 고독감을 고향 쪽 하늘로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에 투영시키고 있다.
그 옛날, 거금 1천2백여 년 전, 시인은 고향과 피난지의 물리적 거리를 어림해서 '만 리'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기껏 말이었을 때이니 실제로 느낀 심리적 거리는 더 아득했을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중국의 웬만한 성보다 작은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향수(鄕愁)의 물리적 거리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제는 KTX 등으로 두세 시간이 채 못 되는 동일 생활권 지역을 '고향'이라 운운하기도 멋쩍게 됐다.
그런데도 인천에는 '고향의 깃발'을 든 모임이 성황 중이다. 대한민국 천지에 출신지를 안 가리고 지금까지 오순도순 살아온 드문 땅이 인천인데 최근 '향수'와는 다른 '이주(移住) 지역색'을 정경관(政經官)이 앞서 내보이는 듯해 안타깝다. 부디 '해불양수(海不讓水)'의 참된 뜻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