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인천시가 일랑 이종상 화백과 MOU을 맺은 후, (가칭)인천시립일랑미술관을 인천시 관내에 짓기로 하고 더불어 아호를 딴 재단까지 설립해 운영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지역 사회의 화두는 단연 '일랑 이종상'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발표 전만 해도 미술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 일랑은 화가로서 무명(無名)이나 다름없었다. 5만 원 권에 사임당을 그린 이가 바로 어느 날 인천서 화제에 오른 그 인물임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럴밖에 없는 것이 일랑은 예산군 출신으로 대전고를 나온 충남의 명사였기 때문이다. 금년 4월 예산군을 방문해 "다른 지자체에서 제시하는 조건보다 불리해도 고향에서 불러주면 오겠다"고 말할 수 있던 그였다.
그러나 1996년 군민 1만여 명이 서명하고 건립 비용 1천억여 원을 확보했던 예산군의 '벽화미술관'과 2008년 시민 5만여 명이 서명하고 추진위까지 결성해 추진했던 대전의 '일랑미술관'은 지지부진했던 터였다.
벽화미술관은 예산군의 부지 문제로, 일랑미술관은 "미술계에서는 생존하고 있는 작가의 미술관 건립 요구여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고 현지 지역지가 보도한 바 있었다.
문제는 '고향'을 등지고 낯선 타관에 전 작품을 기증하겠다고 나섰는데도 환영은커녕 싸늘한 반대의 목소리뿐이라는 점이다. 인천서도 '생존'이 주제였다. 시(市)도, 문화예술계도 진퇴양난의 모습이다.
이쯤 되면 화백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답할 차례가 아닌가 싶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