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있는 수많은 도시 가운데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는 곳은 따지고 보면 몇 안된다. 베를린은 일제하 손기정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도시로, 네덜란드 헤이그는 이준열사가 분신한 곳으로, 바르셀로나는 92년 올림픽에서 황영조선수가 우승한 곳으로 우리들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독일의 바덴-바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막상 88 서울올림픽이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해도 바로 88서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곳이 바덴-바덴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듯하다.
 바덴-바덴은 독일에서도 큰 도시는 아니다. 인구 8만여명 정도의 고풍스런 고급 휴양도시로 흔히 흑림(黑林)이라 부르는 슈발트발드의 중심도시이자 온천으로 유명한 소도시다. 바덴은 독일말로 목욕 또는 온천을 뜻하는데 과거 바덴주(州)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독일 다른 지역에 있는 바덴이라는 지면과 혼돈을 피하기 위해 바덴주의 바덴이라는 의미로 바덴-바덴이라는 도시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바덴-바덴은 인구는 적지만 19세기부터 지적인 도시로도 각광을 받기 시작한 곳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일기나 일부 작품을 보면 바덴-바덴에 들렀다가 카지노에서 여비를 몽땅 잃고 이곳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투르게네프에게 돈을 빌리는 장면이 나온다. 여하튼 19세기의 바덴-바덴은 유럽 고급사교장이자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모여드는 도시였고, 당시 올림픽 부활을 위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프랑스의 귀족 꾸베르탕이 첫 번째 올림픽 총회를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IOC가 그들의 본부가 위치하고 있는 스위스의 로잔과 함께 바덴-바덴을 올림픽의 도시로 지정하게 된 것도 이같은 꾸베르탕과의 인연 때문이다.
 1981년 IOC가 유수한 도시들을 제치고 바덴-바덴에서 국제올림픽총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꾸베르탕이 첫번째 회의를 연 지 1백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었고 바로 이같은 역사적인 올림픽총회에서 대한민국의 서울은 일본의 나고야를 큰 표차로 누르고 올림픽 개최권을 따내게 되었다.
 1978년도에 서울에서 열린 서울세계사격대회의 유치와 개최 준비과정 및 파리특파원 당시 IOC취재를 계기로 유수한 IOC위원들을 개인적으로 많이 알게 된 때문으로 바덴-바덴에서 유치팀의 핵심으로 활동하게 된 필자는 올림픽을 따낸 기적같은 국운이 그 후 우리나라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믿고 있다. 신군부 등장과 경제난 등 암담했던 시절에 바덴-바덴에서의 승전보는 많은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안겨 주었고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국가적 자부심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지 만 10년이 되는 1991년 필자 등이 주도하여 바덴-바덴에서 열렸던 국제학술대회에서 당시 동구권을 위시하여 미국과 유럽 학자들 및 언론인들은 서울올림픽이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를 앞당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논문들을 다수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올림픽은 세계사적인 의미 이외에도 2002년 월드컵과 함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브랜드를 선진국으로 인식시키고 한국의 수출산업과 IT산업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한국의 민주화를 진척시키고 북한과의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덴-바덴에서의 쾌거가 있은 후부터 필자는 유럽여행을 할 기회 때마다 큰 무리가 없는 한 바덴-바덴을 찾았다. 일정이 급박할 때에는 당일치기로 들르기도 했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에는 넉넉한 일정을 짜서 현지의 공직자, 언론인 또는 기업인들과도 만나서 교분을 쌓아온 지 23년째가 된다. 바덴-바덴의 친지들도 필자가 왜 정기적으로 기회가 있는 대로 이곳을 들르는 지 알고 있으며 필자는 필자대로 바덴-바덴에 오면 1981년 서울이 나고야를 누르고 올림픽 개최권을 따내던 감격스러운 순간이 되살아나서 대한민국의 저력에 스스로 놀라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200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부레너스와 유로페셔 호텔, 유럽최초이자 가장 우아한 카지노와 큐르하우스, 온천물이 좋아 이곳까지 찾아왔던 로마황제 카라카라의 이름을 딴 현대식 온천장, 그리고 8천만 독일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스스로 한번쯤 산책을 해보고 싶어하는 리히텐탈러 산책로 등은 20여년 전과 변함이 없다.
 우리의 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된 바덴-바덴에 성공적인 서울올림픽을 상징하는 자그마한 상징물을 만들면 어떨까. 오래전부터의 구상이 시당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기분이 좋았다. 금년도 바덴-바덴 방문은 그래서 또다른 의미가 있는 방문이 된 셈이다.(독일 바덴-바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