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삼(건축비평가)
새 수도 이전에 따른 찬반 공방의 수위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 모두 한 치의 틈새를 보이지 않는 백중지세다. 어느 편에 서 있든 지금 침묵하는 국민 다수는 논쟁의 카오스에서 볼모의 처지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이제서야 그 주제가 국가 사회적으로 공론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바라기는 그 혼돈의 끝이 보이는 날에 난무했던 백화난만의 논거들이 실제로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담보하는 역사적 판단의 반사경이었으면 한다는 점이다.
최근 새 수도로 이전하는 73개 국가기관의 명단이 발표되었다. 헌법기관을 제외시킴으로써 천도라는 불필요한 정치적 잡음을 소거하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그것이 적절했든 아니든 뒤늦은 공론화의 과정에서 수도권의 집중과 과밀을 해소하기 위한 명목을 앞세운 행정수도의 이전이 가시화 되고 있는 것은 성급한 밀어붙이기식 정책의 일단이라는 점에서 우려되는 바 크다.
평소 현재의 청와대가 입지한 장소성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온 필자로서는 새 수도 이전의 가부간 결과와 무관하게 청와대 이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사전 연구가 진행되어 현 정부의 시기 안에 어떤 형태로든 가시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통수권자의 얼굴이 바뀌고 그로써 정부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한들 청와대의 현 위치는 국민의 숨소리를 듣는 땅의 형국과 거리가 먼 곳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새 수도 이전과 관련하여 청와대의 이전에 대한 발의와 아이디어는 좀처럼 고개를 드밀지 않고 있던 차에 대통령 비서실을 포함한 일부 청와대 소속기관의 이전 계획이 발표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전격적인 청와대 이전과 차이를 두고 있다는 면에서, 그것이 천도의 개념으로 의미 확장된 작금의 정황을 짚어보건대, 상징성이 너무 강하고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개연성이 높아 전위에 등장시키지 않는 배경이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은 이미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져 있으며 그에 따른 빈부의 격차가 심화된 지 오래다. 서울로 몰려 있는 자본의 천박한 구조에 나날이 치를 떠는 게 현실이지만 동시에 서울이 우리 사회의 정위를 재는 메트로폴리탄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과부하를 걱정하기보다 그것의 생산성을 극대화 시켜 국제적 경쟁력을 심화시키는 것이 우선 과제라는 면에서 필자는 수도 이전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도 이전의 찬성자 측에서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 서울 제일주의의 경고는 그것이 곧 도시 경쟁력을 견인하는 브랜드가치를 묵과한 것이라는 점에서 재고의 여지가 많다. 정부 각 부처와 기관의 지방이전계획은 검토하여 실행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현재의 수도권이 안고 있는 인구집중과 과밀의 문제를 해결할 만큼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대전정부청사의 사례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 있듯이 ‘새로운 행정도시 클러스터’를 육성하는 것은 지방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작금의 문제는 수도 서울의 과밀을 해소한다는 발상이 새 행정수도 이전의 핵심이라는 데에 있다. 행정력의 이전이 서울에 집중된 민간의 생산시스템을 수도권 밑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 그것은 오히려 공간 환경을 정비하는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같은 입장에서라면 새 수도 이전의 비용이 국토의 조밀한 종 횡단 교통망의 시급한 보완과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대중교통체계의 발전을 진작시키는 데에 선 투입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통일한국 시대에 한반도 전체의 국토이용계획을 전망한다면 현재의 수도권은 중부권역으로서 북부와 남부권역을 이어주는 적정 규모의 발전모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현재의 수도권 남부에 대한 고려보다는 북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에 다름 아니다. 반면에 충청권을 포함한 영호남권은 남부권역으로서 통합된 발전방안이 모색되어져야 한다. 작금에 정부가 주도하는 충청권으로의 수도 이전의 계획은 통일시대 중부권의 과밀을 부추김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위축된 영호남권의 발전을 저해하는 근시안적 결단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