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에 물들지…연꽃처럼'展

관음보살, 응신하는 변성 보여줘
日 구상도, 여성 육체 시체 묘사
진한국대부인 '영가천도' 기원
용인호암미술관, 6월 16일까지
▲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이전 겁의 불행으로 여자의 몸을 받았으나, 사랑하는 이들의 명복과 안녕을 비는 발원문엔 여성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다음 생엔 이 몸을 버리고 성불하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도 여성의 이름으로 쓰였다. 성불도 불가하게 여겨진 '여성'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맹렬히 귀의하며 불교미술 속에서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는 동아시아 삼국에서 발전해 온 불교미술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기원후 1세기경 부처의 가르침이 동아시아 세계로 전해진 이래, 불교를 지탱한 옹호자이자 불교미술의 후원자와 제작자로서 기여해온 여성의 존재를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다.

▲ 은제 마리지천 좌상(국립중앙박물관).
▲ 은제 마리지천 좌상(국립중앙박물관).
▲ 은제 마리지천 좌상(국립중앙박물관).
▲ 은제 마리지천 좌상(국립중앙박물관).

먼저, 1부 전시에서는 양가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소개한다.

석가모니를 낳은 마야부인으로 대표되는 '모성(母性)'으로서의 여성과 집착과 정념의 근원으로 간주되는 '부정(不淨)'으로서의 여성이다.

각 성격의 여성들은 불교문화 속에서 당대에 여성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고 어떤 시선 속에 비춰졌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국보로 지정예고 된 송광사 '팔상도'의 전체 8점 중 전시된 4점의 작품에서는 거듭되는 윤회에서도 뛰어난 덕행과 공덕으로 매번 석가모니의 어머니로 태어난 마야부인을 비중 있게 다루지만, 대부분의 일본 '구상도'에선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가 부정함에 썩어가는 시체로 묘사된다.

그러나,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하는 관음보살은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응신(應身)하는 변성(變性)을 보여준다.

중생이 가장 잘 인식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관음보살에게서 성별을 뛰어넘는 본질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금동 관음보살 입상.

대표적으로, 1929년 대구에서 전시된 지 95년 만에 최초로 민간에 공개되는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이른바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온화한 표정과 잘록한 허리 등 부드러운 신체 표현으로 후대 예술가들에게 관음보살을 여성형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경전적 근거를 제공한다.

또, 사람들에게 만복을 주는 여성으로서의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여신, 마리지천을 묘사한 '은제 마리지천 좌상'과 여성도 성불할 수 있다는 법화경의 십나찰녀를 묘사한 '보현보살십나찰녀도' 등은 추앙받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전경.

2부에서는 전통사회 속 불교 신앙과 수행, 불교미술 후원과 제작의 주체로서 여성의 공헌을 바라본다.

특히 진한국대부인 김씨가 충혜왕의 영가천도(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보내는 것)를 기원하고 충목왕과 모후를 축원하기 위해 조성한 화엄경 1부와 법화경 1부 중 하나인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은 고려 후기 최고위층 여성 재가 신도가 분명한 동기로 발원한 사경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문정왕후(1501~1565)가 임금의건강과 적통 왕손의 탄생을 기원하며 발원한 '영산회도'와 '석가여래삼존도', 나인 노예성이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경안군 부부와 동료 나인들의 장수를 빌며 봉안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물' 등 역시 사랑하는 이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주체로서의 여성과 이를 통해 불교미술에 기여한 여성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물(송광사 성보박물관).
▲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물(송광사 성보박물관).

억압과 편견에 맞서고 때로는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 모두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던 불교미술 속 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6월 16일까지 진행된다.

이건희 회장 기증품 9건을 포함한 국보 1건, 보물 10건, 시지정문화재 1건 등 40건을 선보이며, '아미타여래삼존도', '수월관음보살도' 등 9건을 국내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한다.

/글·사진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