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전오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권전오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원

시골 처가에는 만돌이라는 늙은 개가 있다. 진돗개 유전자를 조금 가졌다고 우기고 있는 예쁜 개다. 개를 키우는 전통적인 목적에 따라 야외에서 집을 지킨다. 추우나 더우나 조그만 개집에서 자신의 털에 의지한 채 무던히 살아가는 만돌이다. 집에서 나오는 각종 음식 찌꺼기를 처리해주고 집을 지켜주니 전통적인 개와 사람의 관계에 충실한 삶이다.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환갑이 넘었다고 하는데 산책을 하며 보니 힘이 여전하다.

예전에 산책을 한번 시도했다가 온 동네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시골동네라 집집이 개들이 한두 마리는 있었다. 특히 과수원집에는 서너 마리의 크고 하얀 개가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면 흘깃 처다만 보는데, 개를 끌고 가면 서로 반가워서인지, 힘을 과시하고 싶은 건지 모르지만 으르렁거리며 금방이라도 우리를 뚫고 나오거나 목줄을 끊고 달려들 것만 같았다. 이후로 개와 함께 하는 산책은 포기했다.

요즘은 도시에서 개를 끌고 다니거나 안고 다니거나 전용보행기에 태워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이제 도시에서 반려견은 트렌드를 지나 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똥을 싸면 바로 치우는 에티켓도 많이 정착되었고 반려견과 시민이 공존하기 위한 노력도 여기저기서 보인다.

우연히 반려견 관련 칼럼을 읽게 되었다. 칼럼에서는 “개는 하루에 여러 번 산책을 시켜야 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간만에 만돌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우선 마을 안쪽 길을 따라 둥글게 돌아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과수원집 앞을 지날 때 특히 조심했다. 그런데 만돌이와 함께 지나가는 데도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산책에서는 더 넓게 돌아보았다. 소를 키우는 우사를 지나 공장지대를 지나 넓은 논과 밭을 지나 2시간가량 산책을 했다. 그런데도 직접 개를 마주친 적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장모님께 동네 상황을 여쭤보았다. 과수원집 할머니는 연세가 많아지면서 거동이 힘들어졌고 이후 요양원으로 옮기셨단다. 거동이 힘든 데 개에게 먹이를 주거나 돌볼 수 없어 모두 처분하셨다고 했다. 고령화사회, 고령 마을이 되면서 어르신들도 일부 요양원 등으로 떠나고 개들도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다음 날은 마을 안쪽으로 산책했다. 작은 언덕 위에 있던 집 한 채가 없어졌다. 우리 딸이 유치원 다닐 때 간혹 껌을 주셔서 껌할머니라고 불리신 분 댁이다. 아흔이 넘으신 어느 날 돌아가시고 나더니 집이 헐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을 안쪽으로 여러 채 건물이 있어 미로처럼 보였던 곳이 시원하게 열렸다.

고령화사회가 지나면 고령사회가 되고 그다음은 소멸사회가 되는 것일까? 장가를 들어 처가를 드나들기 시작한 25년 전쯤, 마을 이장 일을 보셨던 장인댁에는 참 많은 분이 찾아오셨다. 마을이 활기에 넘쳤다. 명절에는 플래카드를 걸어 고향을 찾는 일가친척을 환영했고, 꽹과리와 장구로 흥을 돋웠다. 삼삼오오 모여 윷놀이도 하고, 가을엔 멀리 있는 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면 단위 체육대회도 참여했다. 세월이 흐르고 할아버지 몇이서 장단을 맞춰보던 것을 끝으로 풍물소리는 더 들리지 않는다. 10여년 전에 지은 마을회관도 이젠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내용은 다르지만 레이철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이 떠오른다. 시골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이 사라지고, 급기야 할아버지들이 청년회를 이끌더니, 고령사회를 지나 소멸사회로 가고 있다. 텅 비어 가는 농촌과 숨쉬기 힘든 출근길 서울행 지하철 장면이 겹쳐 지나간다. 기억의 중첩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의 뜻을 도무지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어리석은 것인지, 둔감한 것인지 모르겠다. 지하철 아래로 대심도 철도를 뚫고 서울을 중심으로 남부순환도로, 외곽순환도로, 제2외곽순환도로를 뚫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권전오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