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철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이 책은 이정철의 개혁-경세론 삼부작 중 제2권에 해당하는 책이며, 나머지 두 권은 본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권력 이동으로 보는 한국사>와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이다.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을 읽은 한 독자가, 평소 선행을 강조하며 민생을 염려했던 조선 시대 선비들이 정작 백성을 위한 대동법 시행에 반대했던 이유가 궁금하다며,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저자는 독자의 물음에 화답하기 위해 선조 연간 시기의 당쟁을 살펴본다. 요컨대 나쁜 정치는 당쟁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문제 제기였다.

수렴청정하던 명종비가 죽자, 선조는 자신의 정치에 나서게 되었다. 사림들은 명종 시대 '대윤', '소윤'에 의해 자행되었던 외척 정치에 치를 떨었다. 이이를 비롯한 서인들은 명종 때부터 명망이 높던 세력이었고, 동인들은 명종의 외척 정치에서 자유로웠던 비교적 젊은 선비들이었다. 이 동인들에 명종 치세 구 세력이 합세해서 서인들과 경합을 벌인다. 이이는 훈척에 대한 도덕적 비판자의 역할보다는 국정과 민생을 우선시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개혁을 요구했으나, 그의 국정 개혁안은 선조와 동인 유력자들의 외면으로 좌초하고 만다. 류성룡은 “개혁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이 일을 이이와 함께할 수는 없다”고 했으며, 김우옹은 “이이를 그르다고 한 것은 온 나라의 공론”이라고 이이의 기대를 저버린다. 동인은 국정개혁보다 당파 간 시비(是非)와 정사(正邪)를 가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변했다.

저자는 동인이든 서인이든 사림들 모두 “정치세력 간의 시비가 아닌 민생 개혁에 대한 추구가 자신들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지 못했다고 개탄한다. 시비와 정사를 묻던 사림은 동서로 분열했고, 자신의 정치를 찾으려 골몰하던 선조는 정여립의 난과 같은 여러 사건의 처리에서 동서 사림을 쥐고 흔드는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관원들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언론 기관으로 설계된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는 사림의 청류들에 장악되어 당쟁의 수단으로만 작동하게 되었다. 결국 선조시대 정치적 행위자들은 정치적 책임을 지는 데 모두 실패했다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이는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것을 책임지려 했으며, 대간들은 사회적 결과가 아닌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을 뿐이었고, 선조는 국정을 책임져야 할 정치적 의무와 왕이라는 지위를 그저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수단으로만 남용했다.

저자는 선조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당파적 갈등과 그 결과가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힘을 최대화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은 것이다. 그는 왕이라는 제도가 자신에게 제공한 것을 최대한 이용했고 또 누렸다. 하지만 그것을 토대로 가능한 공적 이상의 정책적 구현에 무관심했다. 선조는 정치 상황 및 그 결과에 대한 궁극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의식이 거의 없었다. 선조를 통해 정치적 힘과 정치적 책임은 분리되었고, 자연스럽게도 그것은 국정의 무정부적 상태를 초래했다.”

/이효준 월급쟁이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