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때문에 벌어진 핏빛 참극
▲ 영화 '파고' 중 칼이 돈가방을 묻고 있는 장면.

“이렇게 하는 건 어때? 반만 주는 거야.”

제리의 장인은 딸 납치범에게 100만 달러를 주는 게 아까워 그 반인 50만 달러만 주자고 제안한다. 이에 제리는 펄쩍 뛰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회계사 스탠도 이건 흥정이 아니라면서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장인은 자신이 직접 놈들에게 돈을 전달하겠다고 나선다.

영화 '파고'(1996)는 프랜시스 맥도먼드, 윌리암 H. 머시, 스티브 부세미, 피터 스토메어 주연에 조엘 코엔(Joel Coen) 감독이 연출한 범죄 스릴러 영화이다. 영화는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핏빛 참극을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담아내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만삭의 시골 경찰서장 역을 훌륭히 소화해낸 프랜시스 맥도먼드에게 여우주연상을, 에단 코엔에게 각본상을 안겼다.

 

▶물질만능주의 세태 비판

자동차 대리점 세일즈 관리자인 제리(윌리암 H. 머시)는 빚에 쪼들리자 자신의 아내를 납치해 돈 많은 장인에게서 몸값을 받아내려는 계획을 세운다. 폭설이 내리는 어느 겨울밤, 제리가 셈에게서 소개받은 칼(스티브 부세미)과 게어(피터 스토메어)에게 납치 계획을 의뢰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제리는 신형 황갈색 씨에라 자동차를 이들에게 건네면서 계획이 성사되면 몸값 8만 달러를 반반씩 나누기로 합의한다. 영화는 돈 때문에 잇달아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그리며 물질만능주의 세태를 비판한다. 제리의 아내 진을 납치하는 데 성공한 칼과 게어는 은신처로 이동 중 번호판 미부착으로 검문을 받게 된다. 검문 도중 경찰관이 진의 신음을 듣게 되고, 이에 당황한 게어는 경찰관을 총으로 쏴서 죽인다. 그리고 이때 마침 지나가던 목격자 두 명도 쫓아가 마저 죽인다. 한편 만삭의 시골 경찰서장 마지(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이 살인사건을 맡게 되고 눈 위에 찍힌 발자국과 살해당한 경찰관이 남긴 메모를 토대로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제리의 사무실에까지 오게 된 마지는 도난당한 차량이 있는지 묻지만 제리는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제리는 장인에게 납치범들이 10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말하고 장인은 돈 가방을 들고 직접 납치범을 만나러 간다. 칼은 딸을 보기 전까지는 돈을 줄 수 없다는 제리의 장인의 말에 분노하며 총을 쏜다. 그 와중에 칼도 턱에 부상을 입는다. 제리의 장인을 죽인 후 돈 가방을 챙긴 칼은 그 안에 100만 달러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칼은 8만 달러만 챙기고 돈가방을 고속도로 옆에 묻는다. 은신처에 온 칼은 게어와 몫을 반반씩 나눈 후 씨에라 차를 누가 가질 것인가를 두고 게어와 다툰다. 칼이 부상을 이유로 차를 갖겠다고 하자, 게어가 칼을 죽인다. 한편 이들의 은신처에 도착한 마지는 게어가 칼의 시신을 처리하고 있는 걸 목격한다. 그리곤 도망치는 게어를 쏘아 체포한다. 마지는 돈 때문에 벌어진 일련의 참극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17개국 중 한국만 유일하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물질적 풍요(돈)를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자본주의 원조 격인 유럽의 경우 스웨덴, 프랑스, 그리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가족을 꼽았다. 이 자료를 토대로 보면, 한국은 물질만능주의가 매우 팽배한 선진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기간에 걸친 산업화와 근대화의 과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자본주의의 사상적 원조인 애덤 스미스는 말한다. “물질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시희(SIHI) 영화에세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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