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오펜하이머 등 15인
원자 무기에 관한 물음·고민 담겨
세계는 하나로 묶였다. 엄청난 속도의 이동수단 발달이 이유다.
하지만 진정 세계가 하나인 것은, 상상을 초월한 무기 때문이다. 세상이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멸망은 지금 이 순간이다.
<하나의 세계, 아니면 멸망(One World or None)>은 원자(당시는 핵보다 원자로 통용됐다)폭탄이 태어난 후 이념적 변화, 전쟁에 대한 인식, 강력한 통제 장치 등에 관해 물리학자, 군인, 언론인 등이 모여 진지한 물음과 고민, 성찰한 내용이 묶여 탄생했다.
1945년 7월16일 파괴의 신 시바를 깨운 첫 핵실험 트리니티 가젯 후 그해 8월6일 리틀보이는 일본 히로시마, 8월9일 팻맨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투하됐다. 몇달 후 과학자들과 오펜하이머를 필두로 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역들은 미국 과학자 협회(The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를 긴급히 결성했다. 이론이 현실이 된 핵분열과 방사능 후폭풍을 겪으며 생존 위협이 '공포'가 아닌 '현실'이 됐다.
“과연 우리는 이 힘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나의 세계, 아니면 멸망>은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어빙 랭뮤어, 해럴드 유리, 아서 콤프턴 등 노벨상 수상자와 이후 노벨상을 받은 유진 위그너, 한스 베테, 퓰리처상을 받은 월터 리프먼, 현역 미 공군 참모총장 H. H. 아널드, 오펜하이머 등 15명이 던진 강력한 메시지로 꽉 채워졌다.
닐스 보어는 “인간 사회가 이 난국을 스스로 바로잡지 않는 한, 우리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이 위태로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의 선의가 필요하다”며 서문에 밝혔다.
아인슈타인은 경고와 함께 대안을 내놨다.
아인슈타인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1939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우라늄 프로젝트 가능성을 서술한 편지를 보냈고 미정부는 해당 업무에 착수했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 '호모 사피엔스'로 칭하는 만큼 그 이름에 걸맞게 살고자 한다면 위험한 상황을 제거해야 마땅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아인슈타인은 유엔의 '명목뿐이지 않은 안보' 기관이 되길 바라며 원자폭탄의 출구를 강조했다. 초국가적 기구의 지지를 받아 독점적으로 통제되는 군사력을 등에 업고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 크고 작은 '모든' 국가들보다는 최고의 군사 강대국들끼리 사전 협약에 도달하는 편이 한결 수월하다. 모든 국가에서 선발된 대변자 조직은 워낙 서투른 매개체인지라, 사전 결과를 신속하게 도출하는 데에도 애를 먹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새롭게 등장한 이 원자 에너지란 힘은 워낙 혁신적이기 때문에 낡은 사고의 틀에서 생각해선 안 된다”라고 미 의회에 메시지를 전했고, 오펜하이머는 '새로운 파괴력으로서의 원자 무기'에 “민간인을 상대로 원자 폭탄을 사용하기에 이르렀기에, 미래에 큰 전쟁에서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믿기는 힘든 실정이다”고 성찰했다.
원자폭탄 아버지 오펜하이머는 “국가 안보를 위한답시고 원자 폭탄을 보충재나 두 번째 보험으로 삼는다면, 국가의 진정한 안전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고 언급했다.
<하나의 세계, 아니면 멸망>은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원자폭탄의 파멸은 익히알지만, 그에 따른 전쟁 억지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공멸의 대명사인 원자폭탄의 탄생은 당연한 것일까라고.
핵폭탄이 발사되는 순간 방어는 무의미하다. 그에 대응할 핵폭탄이 발사될 것이고, 그렇게 공격과 방어가 이어지면 인류는 물론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무'로 사라질 게 뻔하다.
원자 폭탄을 '신성한 신탁'으로 여긴다면 우리의 원폭 불안감은 해소될까.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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