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시민 케인' 중 주지사 선거에 나선 케인이 연설하는 장면.

부와 명예를 다 가진 언론 재벌의 쓸쓸한 최후

 

 

“로즈버드? 여자이름 아닐까? 그 당시엔 많은 여자가 있었지.”

찰스 포스터 케인의 매니저인 번스틴은 케인의 임종 전 마지막 말인 '로즈버드'가 무슨 의미인지 묻는 톰슨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대답한다. 이에 톰슨은 우연히 만난 여자라면 기억 못했을 것이고, 그것도 그의 마지막 침상에서 여자이름을 말했을 리 없다고 단정한다.

영화 '시민 케인'(1941)은 제작, 감독, 각본, 주연을 도맡은 오선 웰스(Orson Welles)의 감독 데뷔작이다. 감독은 딥포커스 촬영, 다중적인 내레이션, 혁신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스토리텔링, 표현주의 세트와 리얼리즘 조명의 조화로운 운용 등 획기적인 표현기법으로 모더니즘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영화는 아카데미상 각본상을 받는 데 그쳤지만 'AFI 선정 100대 영화'에서 이견이 없는 1위로 꼽혔다.

 

영고성쇠를 거듭한 언론 재벌의 일대기

플로리다의 대저택 제나두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오선 웰스)이 '로즈버드(ROSEBUD, 장미꽃 봉오리)'라는 의문의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쓸쓸히 숨을 거두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잡지 편집장의 지시에 따라, 기자 톰슨은 케인의 이 마지막 한마디에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해 그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한다. 대처, 번스틴, 르랜드, 수잔, 레이몬드 다섯 명의 화자가 말하는 케인의 일대기가 퍼즐 맞추듯이 재구성된다. 영화는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그것들을 남김없이 다 잃으며 영고성쇠를 거듭한 언론 재벌 케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케인의 어린 시절, 우연히 상속받게 된 금광으로 벼락부자가 된 케인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은행가 대처에게 아들을 맡긴다. 25세가 되자, 케인은 모든 재산의 소유권을 갖게 되고 뉴욕 인콰이어러 신문사를 인수한다. 첫 신문 발행 날, 시민의 편에 서서 정직한 기사만을 담겠다고 천명한 케인의 선언문이 신문 1면에 실린다. 패기 넘치던 청년기를 보내고 중년이 된 케인은 아내 에밀리와의 사이가 점점 벌어지고 가수 지망생인 수잔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스캔들이 터지면서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한다. 에밀리와 이혼하고 수잔과 결혼한 케인은 정치의 꿈이 좌절되자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며 수잔을 스타로 성공시키는 데 몰두한다. 하지만 형편없는 노래 실력에 관객들의 조롱만 받은 수잔은 케인의 집착에 못 견뎌 자살을 시도한다. 이제 대저택 제나두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 수잔은 케인의 이기적이고 고압적인 태도에 불만이 폭발하고 결국 그를 떠나게 된다. 수잔이 떠나고 난 뒤 더욱 난폭해진 케인은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그리곤 홀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취재를 마친 톰슨은 '로즈버드'의 숨겨진 의미를 끝내 알아내지 못한다. 톰슨은 그저 케인이 얻을 수 없었거나 잃어버린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할 뿐이다. 퍼즐의 잃어버린 한 조각 같은 것이라고….

톰슨 일행이 제나두를 떠난 후 케인의 유품들이 불 속에 던져진다. 그중에는 케인이 어릴 적 즐겨 타던 썰매도 있는데 거기엔 '로즈버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썰매 이름이 바로 '로즈버드'였던 것이다. 케인은 죽기 전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커져만 가는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모두를 잃고서 쓸쓸히 말년을 보내야 했던 케인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회한에 젖었던 것이리라. 그러니까 '로즈버드'는 케인이 잃어버린 순수함의 상징인 것이다.

/시희(SIHI) 영화에세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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