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요코하마 본보기 삼아…'제물포 르네상스' 물꼬 튼다

▲잘 꾸민 요코하마…인천, 닮은 듯 다른 '미래도시'로

170년 개항도시, 낮과 밤 '두 얼굴' … 연 7700만명 발길
공업지대에 새얼굴 입히기 '미나토미라이21' 성공적
공동체 합심, 랜드마크타워 짓고 주민 휴식공간 만들어
'보전'에 초점 둔 복원…역사·상징·장소성은 뒤죽박죽

인천 제물포 도시재생, 요코하마와 다른 시대정신 요구
'제2개항은 우리 손으로 일궈냈다'는 의지, 인식돼야
시민·기업·관 머리 맞대고 동시다발적 개발 이뤄져야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県) 요코하마시(横浜市)는 늘 인천의 비교 대상이다. 인천의 미래를 요코하마처럼 여긴다. 동북아 3대 항구인 한국 인천, 중국 톈진, 일본 요코하마는 개항이란 공통점이 있다. 3곳 다 인후지지(咽喉之地)이다. 수도라는 중심부가 갖는 상징성 이면에는 주변부라는 한계가 뒤따른다. 요코하마는 상징성과 주변부를 모두 극복한 곳으로 여긴다. 인천의 제2 개항을 일컫는 '제물포르네상스' 시작에 앞서 인천이 따르고픈 요코하마의 가치성을 되짚었다. 개항의 역사성과 상징성, 장소성이 뒤죽박죽된 요코하마는 철저히 만들어진 도시이다. 이를 바닥에 깔고 “지금으로써는 안된다.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라는 인천의 고민을 더했다.

▲ 요코하마에는 개항 도시 항구란 상징을 대변하듯 히카와마루가 복원됐다.
▲ 요코하마에는 개항 도시 항구란 상징을 대변하듯 히카와마루가 복원됐다.
▲ 미나토미라이21은 옛 항구시설을 활용했다. 조선소 선거는 시민 안식처로 이용 중.
▲ 미나토미라이21은 옛 항구시설을 활용했다. 조선소 선거는 시민 안식처로 이용 중.
▲ 아카렌가창고는 1층 상점가와 2층 예술공방이 있다.
▲ 아카렌가창고는 1층 상점가와 2층 예술공방이 있다.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기성세대에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라는 일본 엔카는 친숙할 거다. 1968년 만들어진 이 곡은 회색도시 요코하마가 프랑스 칸처럼 되고자 했던 바람이 가사에 녹아 있다. 반세기 전 요코하마는 분명 블루라이트가 아니었지만, 2023년 요코하마는 블루라이트라 노래해도 손색없다.

7월의 요코하마는 태평양이 안겨준 습한 기운에 절어 있었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전철·버스로 30∼40분 남짓이면 요코하마의 중심이 된 미나토미라이21에 도착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겉모습 요코하마는 미나토미라이21과 인근 딱 이만큼이다.

요쿄하마는 '가로로 긴 물의 도시'답게 쭉 늘어선 항구를 향해 이뤄졌다. 그리고 도시는 오오카기와강을 중심으로 위쪽의 이시자키가와강과 아래의 나키무리가와강이 도심을 가로지른다.

낮의 거리 요코하마와 밤의 도시 요코하마는 확 다르다.

일과시간 도심을 꽉채운 다채로운 모양의 건물에는 1700여 기업이 입주하며 요코하마를 넘어 인근 수도 도쿄와 일본을 지탱하는 경제활동으로 피튀긴다. 오전 8시 남짓부터 미나토미라이21역과 인근 사쿠라기초역은 회사원, 학생 등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노을이 질 때부터 도심은 각종 불빛으로 옷을 바꿔 입는다. 이들 역에는 퇴근하는 직장인과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여기에 요코하마 스타디움은 꼴찌탈출을 염원하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응원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경기장 조명이 도심을 더욱 빛낸다. 상업지구 뒤편 주택가에 하나둘 불빛이 더해지며 미나토미라이21을 감싼 듯 주변 항구에는 물건을 싣고 내리는 화물선의 불빛이 바다를 수놓는다. 항구에서는 밤샘 작업이 한창이고, 도시 상징답게 대관람차가 푸른 보석처럼 박혀 있다.

▲ 모토마치에 있는 서양풍 건물.
▲ 모토마치에 있는 서양풍 건물.
▲ 외국인 거주자를 위한 ‘외국인 묘지’.
▲ 외국인 거주자를 위한 ‘외국인 묘지’.
▲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차이나타운 .
▲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차이나타운 .

▲만들어진 도시, 요코하마

제물포처럼 요코하마도 개항 전까지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 그러나 개항장 제물포와 요코하마는 전혀 다르다. 요코하마를 동서로, 남북으로 걸으며 '인공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과연 1859년 개항한 요코하마는 과거가 현재로 계승된 곳이라 불릴 수 있을까.

이곳은 재난과 전쟁으로 도시가 세 번 탈바꿈한다. 1866년 대화재로 도시가 타버렸고, 1923년 진도 6의 간토대지진을 겪으며 남아 있는 건물이 없었다. 1945년 5월29일 연합군의 대공습으로 도시가 쑥대밭이 됐다. 세 번의 부침은 요코하마 도시재생의 경험을 축적하게 한 계기가 됐고, '시련을 이겨낸 요코하마'란 시민 의지가 더해지며 도시 개조에 자발적 참여가 이뤄졌다.

개항도시 요코하마의 근대 유물 중 상당수는 제대로 현존하는 게 없다는 평을 듣는다. 요코하마는 개항이란 역사성만 계속된다면 장소성과 상징성 쯤은 뒤로 미루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어떠한 복원 과정을 거쳤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모토마치에 있는 이국풍의 외교관의 집, 베릭홀, 엘리스만 저택 등은 복원 과정에서 위치가 바뀌고 건축물은 재해석됐다. 이탈리아와 무관한 이탈리아산 정원을 설치해 개항 당시 근대 건축물과 함께했다는 착각에 빠지게끔 하는 것은 관광상품으로 도시 개조를 위해 얼마든지 용인된다. 110년 전통의 아카렌가소코는 붉은 벽돌 외벽 등 부재 몇 개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현대건축물이다.

요코하마 복원은 '보존'이 아닌 '보전'이다. 지정문화재로 박제화하지 않고, 등록문화재를 활용한 소유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여러 '인정역사적건조물'은 '역사적 건조물을 생생한 형태로 사용하면서 보존하는 것'이란 정신이 깃든다. 개항 요코하마에 근·현대가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문화재에 대한 재해석을 용인한 결과라 해도 무리가 없다. '정면 현관 공간 이외의 내장은 제외한다'라는 완화한 복원 조건 또한 개항 문화재가 보존이 아닌 보전으로 현대인에게 세련된 모습을 선사할 수 있게끔 했다.

'새로운 얼굴 만들기' 요코하마 복원은 공동체 산물이다. 버블 경제가 한창인 1960년대 후반, 요코하마는 고민했다. 공업도시 요코하마에 '새얼굴 입히자'는 시도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시민 등이 협의체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MM21) 구성을 통해 이뤄 20년이 지난 1980년대부터 시작된다. 요코하마 마천루를 대표하는 요코하마 랜드마크타워는 미쓰비시 조선소를 이용했다. 70층 규모의 건물은 조선소 선거를 활용했고, 공장 부지를 개발해 공원과 놀이시설 등 위락단지가 조성됐다. 기업체가 개발에 나서면, 주민들에게 최대한 공원용지를 제공한다. 지자체의 행·재정적 편의가 더해지며 MM21에서 최적의 방안을 도출한다. 그렇게 '보전'이란 합의 속에 요코하마는 만들어졌다. MM21은 진행형이다.

연 7700만명이 넘는 요코하마 국내·외 방문객은 170년 된 개항 도시 요코하마란 역사적 향수에 취하면서 현대적 도심의 편리함 속에 지갑을 열게 한다.

▲ 요코하마 야경은 ‘블루라이트’이다. 항만에 가득한 개항 복원 건물을 호위하는 것처럼 뒷편에는 현대식 건물로 빼곡하다. 또 그 옆에 요코하마 스타디움은 야구팬들로 매일 만원을 이룬다.
▲ 요코하마 야경은 ‘블루라이트’이다. 항만에 가득한 개항 복원 건물을 호위하는 것처럼 뒷편에는 현대식 건물로 빼곡하다. 또 그 옆에 요코하마 스타디움은 야구팬들로 매일 만원을 이룬다.
▲ 개항 당시 유물이 전시돼 있는 자료관.
▲ 개항 당시 유물이 전시돼 있는 자료관.
▲ 인천 개항 상품과 닮은 요코하마 문양.
▲ 인천 개항 상품과 닮은 요코하마 문양.

▲인천 개항, 역사 극복과 보전 논란 해법은

제물포 르네상스는 민선8기 도시재생 지향점이자, 목표이다. 개항장 제물포라는 140년의 역사성과 내항이 갖는 공간적 특성을 활용해 낙후한 도시를 현대식으로 풀어내겠다는 행정형 구호이다.

개항장 제물포는 분명 요코하마와 다른 한계가 있다. 우리에게 개항은 '식민지'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한 관문으로 인식된다. 개항의 주체는 일본 등 '외세'였기에, 보전이 아닌 극복으로 여겨진다. 특히 구한말을 지나 식민시대까지 개항장 제물포는 도심의 1번지였지만, 행정기관이 빠져나가고 상권이 옮겨가며 쇠락했다.

반면 요코하마 개조는 불야성 공업지대와 항만 일대의 각종 행정·공공기관이 앵커시설처럼 백분 활용됐다. 또 개항을 전면에 앞세우며 역사성까지 도시 개조의 한 축으로 포장했다. 여기에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뱅크아트21(BankArt21)을 성공시켰고, 도시디자인도 그에 맞춰 지침(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

미나토미라이21에는 새로 건설한 요코하마 시청을 비롯해 요코하마 미술관, 가나가와현립 역사박물관이 있다. 또 세관박물관, 우선역사박물관, 개항박물관 등은 기존 건물을 백분 활용했고, 옛 선박 니폰마루와 히카와마루가 복원돼 떠 있다.

인천은 언제부터 요코하마와 비교됐을까. 김선희 건국대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도심재생에 있어서 '근대문화유산' 활용에 관한 고찰'에 따르면 1908년 제작된 '인천개항25년사'에 인천을 한국의 요코하마로 규정하면서부터이다. 인천-요코하마 도식은 자칫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바라볼 위험마저 있다.

인천 중구청 앞 왜색 거리는 개항기를 나타냈는지 식민시대를 차용했는지 늘 비판을 받고, 미약한 근거로 복원(?)된 대불호텔은 '짝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제물포르네상스'는 요코하마와는 다른 아니 틀린 시대 정신이 요구된다. 140년 전 제물포항 개항이 외세에 뜯기듯 이뤄졌다면, 2023년 제2의 개항은 우리 손으로 일궈냈다는 의지의 산물로 인식돼야 한다. 여기에 제물포 르네상스는 시민과 기업, 관이란 3자가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제2의 개항으로 새인천을 만들겠다는 합의 속에 개항 150년이 되는 2033년에는 개발 방향이 확정돼 밑그림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미나토미라이21에만 집중돼 도심이 낙후되며 발생한 역차별 논란을 숙제로 안고 있는 요코하마 선례처럼 인천 제물포르네상스의 도심 개발은 지역 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요코하마(일본)=글·사진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