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샛별, 인천 연극사 잇다

인천일보는 인천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인천의 연극사와 그 명맥을 지켜온 극단들을 차례로 조명했다. 9개 극단은 각각의 찬란한 유서와 인천 연극계 남기고 있는 족적을 소개했다. 이번 공동기획 '인천연극열전'의 마지막 순서로 인천연극 1세대로 불리는 전무송 배우와 떠오르는 차세대 연극인 유무선 배우를 만났다. 이들에게 연극인으로 사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앞으로 인천연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글·사진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인천연극 1세대 '전무송' 배우>

“무대서 관객과 호흡하는 단맛이 나를 살게 하죠” … 집현 단원들과의 인천 무대 구상

중구 내동 출생·1962년 서울연극아카데미 1기로 연기 시작·극단 집현 창단 멤버

 

그는 인천 중구 내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애관극장에서 반공연극이나 창극을 보고 자랐다. 인천중학교와 인천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숭의동 장안극장 이런 데 많이 다녔죠. 1950∼60년대 아직 극단이라는 게 없던 시절에 악극 장르의 공연이 대부분이었어요. 참 재밌었죠. 파랑새라는 극 모르죠? 키우는 파랑새가 도망가서 한참을 찾으러 다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파랑새가 글쎄 집에 그대로 있더라는 얘기에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그는 당시 서울신문 인천지사에서 신문값을 받는 수금 사원으로 일하며 연기 관련 대학 등록금을 벌었다.

1962년 서울예대의 전신인 서울연극아카데미 1기로 합격하며 본격적으로 그의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

“극단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알베르 카뮈의 번역극이나 햄릿을 무대에서 볼 수 있었어요. 그때 그런 공연들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몰라요. 배우들이 눈앞에서 연기하는 모습과 무대 배경들, 연극으로 표현한 연출이 모두 생생했죠.”

차비도 친척에게 구해 다닐 정도로 어려웠지만 매일 인천에서 서울로 등하교하며 필사적이었다.

“학교에서 하는 연극에 처음 조연으로 나갔다가 연극이 끝나고 난 커튼 뒤에서 선생님께 뺨을 맞은 적도 있답니다. '연기 그딴 식으로 할거냐고' 호되셨죠. 그렇게 연기를 배우면서 춘향전의 이 도령을 맡기도 했어요.”

전무송 배우는 대학을 마치고 인천으로 와 극단 집현의 창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창단기념 공연 리어왕을 했다.

“정진, 조일도 등과 뜻을 함께 했었어요. 싸리재 골목을 중심으로 인천의 현대연극이 활황을 이뤘던 때죠.”

그는 최기선 인천시장 시절, 인천에서 한인국제연극제를 추진해보려는 시도도 했다. 인천시의 사업으로 보조를 받아 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처럼 예술과 문화가 흐르는 거리 축제를 하고 싶었다.

“당시 시의회에서 예산이 통과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쉽게 계획을 접었지만 인천이 예술과 연극이 풍성한 도시가 되길 바라는 의욕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힌 그는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연극'을 하겠다고 말한다.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는 연극의 단맛은 나를 살게 하죠. 연극을 통해 저는 인생공부 다 한 거예요.”

인천을 발판으로 평생의 연기 길을 다져온 그는 최근 뜻깊은 구상을 하고 있다. 창단에 기여한 극단 집현의 지금 단원들과 함께 인천 무대에 서는 것이다.

“인천과 전무송, 극단 집현과 전무송을 한 번도 떼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나 세월이 흘러 연극 후배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선다는 생각이 나를 또 불태우는군요.”

 

<차세대 연극인 '유무선' 배우>

“일상의 굴레서 충분한 자극 받는 것이 연극의 힘 … 변화무쌍 캐릭터 소화하고파”

27살, 극단 레퍼토리 미르 10주년 공연서 첫 역할·30살, 극단 막내역 열연 중

올해 서른인 유무선 배우는 인천대학교 안전공학과 재학 시절 폴란드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6개월을 지낸 적 있다. 이때 뮤지컬 라이온킹을 우연히 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라이온킹이 재밌는 줄거리인데 그 연기와 감정선, 현장에서 전달된 감동 때문이었던 거 같습니다. 나도 연기를 해야겠구나 라고 처음 생각했어요.”

대학에서도 밴드부에 가입해 활동하며 노래하고 악기 다루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무대에서 박수를 받고 응원받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졸업까지 남은 학기를 소화하면서 연기를 배우던 그는 우연히 이재상 극단 레퍼토리 미르 대표와 인연이 닿았다. 그렇게 극단 미르에 정식 입장하며 2018년 미르 10주년 공연부터 참여하기 시작했다.

“27살 때 첫 역할을 맡았어요. 보이체크라는 군인인데 가족을 부양하면서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렸죠. 치열한 내면 연기가 요구되는 역할이었어요.”

일반적인 회사나 조직과는 사뭇 다른 극단 단원의 특수성을 그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대학 전공을 살려 안정된 안전관리자로서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극단 막내'… 저에게 붙은 또 다른 이름이고 저는 이게 좋더라고요. 극단에서 연기만 할 수는 없어요. 연습실도 정리하고 기관에 제출할 서류도 챙기고 잡일을 하죠. 조명과 무대 등 공연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전반을 함께 이룬다고 보시면 돼요.”

그에게 극단은 배우로서의 성장, 그 여정을 공동으로 이루는 동반자적 성격이다.

“처음엔 그저 주목받고 싶어서 뽐내고 싶어서 연기에 뛰어든 것 같아요. 하지만 인천을 무대로 점점 작품을 하다 보니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연극이라는 것이 나만의 직업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지요.”

연극을 만든 사람, 연극을 보는 사람, 연극을 하는 사람이 다 함께 하나의 삶을 공유하고 몰두할 수 있다는 매력에 그는 빠져있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그를 표현할 무대와 그의 연기로 풍요로워질 관객들을 생각하며 벅차오르는 기분이 유무선 배우의 연기 원동력이라고도 말했다.

노래와 춤, 연기가 어우러진 뮤지컬에서 두드러진 장점을 발산하는 그는 앞으로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의 시원한 배우가 되고 싶어했다.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소화해 보고 싶어요. 특히 인종차별과 소외당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지요.”

그는 이 길을 걷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도 한마디를 했다.

“다음날이 기대되는 오늘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굴레에서 언제나 충분한 자극을 받는, 이것이 연극의 힘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