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요즘처럼 팬데믹으로 바깥나들이를 제한하고 집안에서의 생활을 주로 하는 중에 막상 라이브 콘서트를 간다는 것이 사실 조금 주저되긴 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모여 앉다 보면 감염이 될 가능성이 높고 또 어떤 인간들이 모일지에 대한 의심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처럼의 기회가 왔는데 그냥 무를 수도 없어서,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지로 급격하게 떠오른 나파밸리의 Napa Valley 와이너리에서 열린 트럼펫 연주자 크리스 보티 Chris Botti의 콘서트를 다녀왔다. 때마침 전날 새벽에 비가 조금 내린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9월 중순 날씨답게 깨끗하고 파란 것이, 청명함이라는 단어와 꼭 일치하는 게 아닌가. 아침 온도는 화씨로 68도이지만 낮 기온은 73도이니까 섭씨로 환산하면 22도. 가을 날씨로는 최적인 게다.

찰스 크루그 와이너리 Charles Krug winery는 1861년 나파밸리에서 처음 와이너리를 시작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다. 사실 지난해 가을 무렵 나파에 산불이 크게 나서 대부분의 포도원이 망가지고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데, 막상 이번에 가서 보니 이미 복구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지는 말할 것도 없고 언덕 등성이, 산모퉁이 자락마다 온통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는 모습은 마을 전체가 끝없이 펼쳐진 포도나무들의 행렬 같아 보였다. 이번 콘서트는 팬데믹을 고려해 와이너리 안의 잔디밭에서 야외 음악회로 열렸다. 좌석 등급별로 의자를 구분해서 나열했지만 참석인원  260명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가장 싼 티켓 90불 일반 좌석조차 훌륭했다. 

공연은 오후 4시. 뉘엿뉘엿 해가 하늘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을 무렵. 음악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행사 안내하는 사람들이 입장객 체온을 잰 후에 손목에 오케이 도장을 찍고 좌석 티켓을 확인한 다음 정해진 구역으로 인도하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참석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백인 노인들이다.  사실 난 재즈음악을 잘 모른다. 그러나 곡曲의 이해 여부를 떠나 그냥 사방이 온통 초록빛에 둘러싸인 야외 공간에서 연주자들을 대하고 직접 음악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듯싶었다.

재즈피아노, 키보드, 베이스 기타, 리드기타, 드럼, 색소폰과 트럼펫이 어우러진 음악은 앉아있는 내 어깨와 손을 리듬에 맞춰 춤추게 했다. 몇몇 사람들은 아예 좌석 곁의 잔디밭으로 나와 춤을 추기도 하는데, 그 몸짓들이 그냥 편안하고 즐거운 느낌이다. 바이올린 주자가 트럼펫과 함께 연주하고, 흑인 가수가 특유의 혼이 담긴 목소리로 노래하고, 드럼을 자유자재로 신들린 듯 두들기고, 목소리 발성 하나만 가지고도 몇 음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무대 전체를 휘감는 젊은 여자 가수의 매력이 더해지면서 거의 두 시간가량의 음악회를 통째로 누리게 했다. 브라보!

우리는 이미 세 시간 전에 도착해 와인 시음장에 들려 직접 화덕에서 구운 피자와 함께 와인을 마신 고로 공연에만 집중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사장에서 판매하는 와인과 음식들을 먹으면서 공연을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이었다. 실내와 실외의 공연에 따르는 차이일지도 모르고 혹은 문화적인 차이일지도 모른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고 예의와 격식에 맞춰야 하는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음악회 자체보다 음악이 주는 분위기와 느낌에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그들의 모습이 새로웠다. 그야말로 재즈음악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오는 즐거움, 환한 만족감, 그리고 편안함이다. 내가 그들 삶의 구석구석을 어찌 알까. 다만 음악을 귀로 눈으로 함께 누리며 표현하는 솔직한 행복의 제스처가 천박하지 않게 내 가슴에 닿아왔다.   그래,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온 것을 편안하게 누리는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본다.

/Stacey Kim 시민기자 staceykim6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