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훈(難訓, 가르칠 수 없다)'이란 말이 생각났다. 몸은 호랑이와 비슷한데 호랑이보다 크다. 멧돼지 어금니에 꼬리는 5m나 되는 악수(惡獸)이다. 바로 사흉(四凶, 큰 개의 모습을 한 혼돈, 눈이 겨드랑이에 있는 도철, 날개가 달린 호랑이 궁기와 도올) 중 하나인 도올(檮杌)이란 짐승이다. 이 도올은 전욱(顓頊)이라는 고대 전설 속 황제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허울만 좋은 하눌타리일 뿐이다. 오로지 악행만 일삼고 싸움질을 하면 물러나는 법이 없다. 또 거만하고 완고하여 남들의 의견도 전혀 듣지 않아 난훈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수십 년 동안 그 난리를 치고 만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호 사건'이라 내세운 걸 보며 든 생각이다. 제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 주고 백성들이 열심히 가르쳐도 도저히 제 버릇을 못 버리는 '난훈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요, 개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 못 된다는 말이 정녕일시 분명하다.
우하영 선생이 목숨을 걸고 올린 <천일록> 또한 저런 난훈들에게 경 읽기로 그쳤다. 이제 선생에 대한 마지막 회로 제6책을 읽는다.
제6책은 '잡록' 상·'잡록' 하·'병진사월응지소'·'갑자이월응지소'·'어초문답'·'취석실주인옹자서'로 구성되었다. '잡록' 상에서 선생은 “백성들의 윤리를 바로잡고 세상을 교화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만들었다고 밝혔다. '잡록'하는 “보고 들을 것을 기록”하였다고 하는데 대부분 기이한 사적이다. '병진사월응지소'(丙辰四月應旨疏)는 1796년에 응지상소한 것이다. 당시 폐단의 실상, 그 폐단이 생기게 된 근본 이유, 구체적인 대응책을 자세히 서술하였다.
'갑자이월응지소'(甲子二月應旨疏)는 1804년에 응지상소한 것으로, “국왕 덕목에 관한 조목 10개 항”과 당시 “사회 폐단에 대한 조목 10개 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통령과 각료, 혹은 각 기업이나 단체를 이끄는 리더, 혹은 이들에 준하는 행동을 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국왕 덕목에 관한 조목 10개 항”만 정리하면 이렇다.
1. 마음: 마음이 공정하도록 힘써라. 2. 기미: 바깥 기미(조정)와 안 기미(마음)가 만날 때 밝은 이치가 나타난다. 3. 지인용(智仁勇): 지혜로워야 사람을 알아보고 인자해야 백성들을 보호하며 용맹해야만 제압할 수 있다. 4. 인재를 찾아라: 인재를 구하는 것은 성의에 달려 있고 사람을 임명함은 공정함에 달려 있다. 5.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라: 이극(李克) '오시법'(五視法)을 사용하라. 오시법은 사람을 보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①그가 평소에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보라. ②부자라면 누구에게 자신의 부를 베푸는지 보라. ③높은 지위에 있다면 누구를 천거하는지 보라. ④어려운 처지에 있다면 그가 하지 않는 일을 보라. ⑤가난하다면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보라. 6. 풍속의 변화를 꾀하라. 7. 상벌을 밝혀 아랫사람을 주의시켜라: 신상필벌을 정확히 하라. 8. 덕과 법을 다스리는 방도로 삼아라: 덕과 법은 백성들을 부리는 도구다. 그렇지만 덕교를 우선시하고 형법을 뒤로하라. 9. 조목을 세워 가르치는 방도로 삼아라: 자기 직업에 충실하도록 독려하라는 말이다. 10. 마음을 지켜 만사 근본으로 삼아라: 마음을 잡도리하라는 말이다. 선생은 “마음을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를 단단히 하고 치밀하게 내리게 하면 비바람에 쓰러지거나 뽑히지 않고, 배에 비유하자면 닻을 내릴 때 단단하고 깊게 하면 파도에 흔들리지 않으니 마음을 잡고 지키는 것도 이와 같다”고 하였다.
'어초문답'(漁樵問答)은 어부와 나무꾼이 나누는 대화로 그 속에 선생의 사상이 담겨 있다. 글줄을 따라가며 선생의 말을 경청해보자.
▲시대에 따라 환경도 변한다. 따라서 정치 방법도 다르다. ▲백성을 양육하는 게 먼저이고 가르치는 게 다음이다. ▲근면하고 검소하라. ▲수령의 고과에 백성들의 근면을 반영하자. ▲자기 분수를 넘는 것은 모두 사치다. ▲부자는 음식이 넘치고 가난한 자들도 옷은 사치스럽다. 사치를 부리니 물가가 뛴다. ▲폐단 없는 정치는 없고 구제할 수 없는 폐단도 없다. 폐단이 생기는 것은 애초에 정책이 느슨해졌던 탓이고 폐단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정책을 바로잡는 것뿐이다. 오늘날은 폐단과 근심을 구제하고자 하는 뜻이 없었을 뿐이니 만일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는다면 구제 못 할 것도 없다. 하늘에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부여받아 변치 않는 게 있다면 마음이다. ▲엄금할 때 형법으로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세상을 규범 있게 만들겠는가? 오늘날 급선무는 오로지 근본에 힘쓰고 사치를 금하는 데 있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여 꺼리는 정사를 펼친 다음에야 왕의 교화가 시행된다. ▲쓸데없이 하은주(이상향) 시대 이야기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차라리 폐단을 고쳐나가서 '소강 세상'을 이루는 편이 낫다.
이로써 <천일록>의 대강을 살폈다. 선생은 두 번 상소를 올렸고, 임금들은 두 번 비답(批答, 상소에 대한 임금의 대답)을 내렸다. 선생의 글은 당대의 진단서였고 사회적 병폐에 대한 구체적인 처방전이었다. 정조는 검토하고 명령도 내렸지만, '난훈 관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답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순조는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조선을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왕도 백성도 아닌 '난훈 관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상소와 왕의 비답은 조선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였다.
이제 선생의 상소와 왕의 비답은 슬픈 외침으로 남아 이 시절을 사는 우리에게 도착했다. 일개 서생 우하영, 그러나 “내 일념은 동포를 모두 구제하는 데 있었을 뿐”이라 손등에 푸른 정맥이 솟도록 쓴 <천일록> 맨 뒤, '취석실주인옹자서'를 다시 읽어 본다.
“내 일념은 동포를 모두 구제하는 데 있었을 뿐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볼 때마다 가난한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책을 고민하였고 길에서 사람을 만날 때도 백성들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래서 전국 물건 값이 언제 올랐다가 언제 떨어지는지, 궁벽한 시골에 이르기까지 그곳 요역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 수 있다.”
저 시절 저러한 이가 이 시절이라고 없겠는가. 주위를 둘러 이러한 이를 찾아 국정을 경영토록 한다면 어찌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지지 않겠는가?
다음 회부터는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북학의>를 읽어 본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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