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광고 카피가 부상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사회를 아름답게 인류를 아름답게'라는 카피로 세간의 인기를 끌었던 화장품 광고가 생각난다. 뛰어난 미모의 광고모델도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한 줄의 카피 문구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회자됐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단지 미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은유감을 준다. 화장품을 매개로 인류와 사회를 아름답게 만든다는 긍정의 에너지가 담겨있다. 화장품 판매도 중요하지만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올바른 가치관을 사회에 실현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 그 화장품 회사는 국내 굴지의 화장품회사가 됐다.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은 비단 개인의 차원만은 아니다. 사회가 어떤 가치관을 실현하느냐 하는 문제도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로부터 사필귀정을 운운하며 바르고 착하게 살아가는 일을 중요시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착하게 살면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경쟁사회가 도를 넘어 상대방을 밟지 않으면 자신이 밟힌다는 그릇된 가치도 만연해졌다. 살벌한 사회가 된 것이다.

사회지도층이나 기득권의 행태가 중요한 까닭은 그들로 인해 사회적 파장이 크고 사회적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회적_경제적 능력이 사회에 모범이 되고 사회적 배려심이 많았다면 오늘날 사회적 갈등구조도 커지지 않았을 것이며 사회적 약자는 그들의 노력과 성공비결을 인정하고 귀감으로 삼아 노력했다면 열등감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가 막대한 힘을 발휘하다 보니 그 힘을 잘못 쓰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불신감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혼탁하고 혼란스러워 진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골치 아프니 그냥 '나만 잘 살면 되지' 하는 체념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가정도 위협한다.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경제적으로 살기 팍팍해지니 심화되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는 것이다. 성인이니까 알아서 한다는 둥, 혼자 독립해서 따로 살겠다는 둥, 부모님은 참견하지 말라며 대화하지 않는 둥 점입가경이다.

이 때문에 우울해하는 주변인이 많아졌다. 비슷한 발언들이 과연 개인의 발설일 뿐인가 의아스럽기도 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생활하는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예 아이를 꼬드겨 양자를 삼는 경우도 있고 일명 '사'자 들어가는 배우자를 맺기 위해 도시락 공세로 집요하게 공략하는 부모들도 있다고 하니 가히 개탄스럽다. 착하고 순순했던 한국인의 정서가 왜 이렇게까지 삭막해졌는지 사회적 반성과 개선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그런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자신이 존중받고 싶은 만큼 상대도 존중해야 한다.

문득 '다시 뛰는 한국인'이라는 카피가 생각난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회, 참되게 가르치고 바르게 이끌어주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인의 정체성과 올바른 가치관으로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다시 뛰자. 아름다운 사회와 올바른 가치를 위해.

 

/최영희 시인. 송도소식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