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체제담론의 해체와 한반도시민의 등장] 토론회

지난달 26일과 27일, 이틀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통일 및 탈북민 연구를 해온 연구자들이 뜻을 모아 분단체제 담론을 해체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를 비롯, 젠더정치연구소, (사)한국여성연구소, 남북시민통합연구회 등 국내 8개 대학 연구조직이 공동 주최한 ‘분단체제 담론의 해체와 한반도 시민의 등장(’먼저 온 통일’에서 ‘시민’으로’) 다.

이 정책연합 학술대회의 콘셉트는 ‘분단체제담론의 해체와 한반도시민의 등장’이었다. 각 분야 52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이 학술대회에서는 분단체제에서의 탈북민 정착 책의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이행을 위한 새로운 담론이 제기됐다.

10개 세션에서는 ▲한반도 시민론과 민주시민교육 ▲젠더와 법 ▲지역사회에서 타자와의 공생 ▲이산 ▲분단이데올로기와 분화된 정체성 ▲탈북민혐오와 분단적대성 ▲타자화된 정체성 ▲정착실태조사 ▲북한이탈여성의 미투 ▲탈분단 평화교육 관련 19편의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이중 학술대회에서 시선을 모은 세 편의 논문을 소개한다.

 


 

[논문1]

한반도 시민론 : ‘민족’과 ‘시민’의 필연적 조우

선우현(청주교대)

아무리 중차대한 과제라 해도, ‘민족통합’은 상호 인정에 기초한 ‘민주적 합의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만 하며 통일 국가의 형태 역시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한 정치체제이어야만 한다. 또한 강한 문화적 동질성을 앞세운 민족주의가 지닌 타자에 대한 차별성과 배타성은,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다문화주의적 시대조류에 의해 해소되어야만 한다.

이처럼 변화된 시대상황을 고려할 때, 이에 부응하는 사회구성원의 자격을 충족할 ‘주체’로는, 차이의 존중을 개인적 덕목으로 체화해 가면서 민주주의 원칙의 수호를 구성원의 책무로 인식하는 비판적 ‘민주 시민’을 우선 떠올리게 된다. 아울러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우려의 시선도, 분단현실을 극복하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남북 통합을 이루어 나갈 ‘실천 주체’로 ‘탈 민족주의적․다원주의적 시대흐름’에 합치하는 비판적 판단능력을 갖춘 민주적 시민을 선택하게끔 유인하고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를 넘어 ‘해체’를 주창하는 ‘반민족적 시민’ 담론은, 민주적 정치 공동체의 구성적 원리로서의 ‘보편적 정의원칙과 민주주의 원리’가 온전히 구현되기 위해서는 ‘민족적 동질성 및 정체성’에 바탕을 둔 연대성에 기초한 사회적 통합력의 구축이 그 ‘필수 전제’로 요구된다는 점을 제대로 간취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탈민족주의’가 전(全)지구적 차원의 시대적 대세일지 모르나, ‘통일 민족국가’의 수립이 미완의 과제로 주어진 한반도에서만큼은 ‘민족주의’가 여전히 주된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실상이 이렇다면, 분단 상황 하의 시민은 민주주의 원칙과 헌법적 가치에 대한 무한 헌신을 바탕으로 형성된 시민적 정체성‘만’을 지닌 ‘세계 시민주의적․보편적 세계관’을 지닌 ‘탈 민족적 시민’일 수는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시민은, 민족적 동질성과 정체성을 토대로 구축된 민족공동체의 ‘분열’이라는 한반도의 분단이 지닌 역사적․사회문화적 특수성을 감안하는 섬세한 ‘민족(주의)적 감수성’을 지닌 시민이어야‘만’ 한다. 이를 ‘한반도 시민’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선우현(청주교대)

 


 

[논문2]

한국사회는 탈북민을 혐오하는가?

남경우(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분단적대성은 ‘북한’이나 ‘좌파’(혹은 종북·친북·빨갱이)로 분류되는 자들을 향한 부정감정을 말하며, 여러 가지 감정으로 구성되는 복합감정이자 한국 사회 다수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특정 이슈에 대해 공통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집단감정이다.

이때의 감정은 ‘기쁨’, ‘호감’, ‘안심’, ‘슬픔’, ‘공포’, ‘분노’, ‘혐오’, ‘불안’, ‘싫증’, ‘연민’ 등 10개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분단적대성 지표(IKAI)’(개발 연구책임자: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김종곤)는 빅데이터 분석기법을 활용하여 탈북민에 대한 분단적대성이 어떠한 형태로 드러나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다.

2020년 1월부터 6월까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뉴스 섹션에서 북한과 관련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대상으로 IKAI 분석을 실시한 결과 ‘혐오’ 감정이 탈북민 관련 분단 적대성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다양한 감정의 구성 비율이 유동적으로 변화함을 알 수 있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탈북민은 기본적으로 일상 속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탈북민 관련 분단적대성은 탈북민 출신 정치인의 국회의원 당선, 대북전단 관련 이슈 등이 나타났을 때 변화 양상이 두드러졌다. 이때 탈북민에 대한 감정은 공포와 불안 감정의 ‘간첩’, 분노와 싫증 감정의 ‘거짓’ 등으로 표현되거나 공포와 불안의 감정인 ‘전쟁’과 연관을 갖게 된다. 탈북민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사회적 이슈에 따라 급격히 강화되고 분단과 관련한 다양한 형태의 부정적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

이처럼 분단체제 속에서 만들어진 탈북민이라는 존재의 구체적 의미가 변화한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탈북민을 사회 구성의 중요 요소로 고려하지 않음을 말하며 동시에 남과 북의 사이에 위치하는 제3자이자 ‘배제’의 대상으로서 특정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음을 말한다. 한국 사회의 탈북민에 대한 혐오 표현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IKAI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탈북민을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적대적 배제’의 시선이 그 근간에 놓여 있으며, 사회적으로 더욱 문제적 요소라는 점을 더욱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

/남경우(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논문3]

구동독 지역의 여성인구 유출에서 남성 청년 정치문화의 극우화까지

홍찬숙 (사)한국여성연구소

구동독은 여타 사회주의 사회 뿐만 아니라 구서독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은 여성 지위를 보였다. 반면에 구서독의 여성 지위는 서구에서 매우 낮았다. 따라서 서독으로의 흡수통일은 여성 지위와 관련해서는 역진적이었다.

통일 직후 국가 보육서비스 시설 폐쇄와 여성 실업 증가, 낙태죄 도입 문제가 부상했다. 과거 구동독에서 낙태는 자유로운 여성 권리로 인식되었고 여성의 일·육아 양립은 당연시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구동독 여성들은 구서독 여성들과는 다른 소위 ‘동독 여성문화’를 가졌는데, 통일 후 이것의 유지 혹은 변화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통일 직후에는 ‘구동독 여성이 통일의 최대 피해자’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여성 지위 하락으로 통일 직후 구동독 지역의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첨예한 위기가 나타났다. 그러나 통일 30년이 된 현 상황에서 구동독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정치적 극우화인데, 여기서 특히 젊은 남성이 그 핵심이다.

이런 반전은 통일 직후 특히 젊은 여성들이 대거 구서독으로 이주한 사실과 관련된다. 통일 직후에는 구동독 여성들의 ‘재 전통화’(전업 주부화)가 예상되기도 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성들은 통일 후에도 여전히 ‘동독 여성문화’를 견지하며, 취업기회 또는 취업을 위한 교육기회를 찾아 구서독 지역으로 대거 이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동독 지역, 특히 여성의 취업이 어려운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남초 현상 및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마을 공동체가 붕괴했다. ‘농촌 총각 결혼’ 문제가 등장했고, 남성 청년들이 우익 성향 단체로 결속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또 통일 후 구동독 지역의 ‘이등시민 정체성’이 정치적으로 오히려 강화되어, 2010년대에 들어 극우당 지지로 나타났다.

결국 통일 직후 위기에 직면하여 ‘탈 동독’을 감행한 청년 여성이 아니라 오히려 청년 남성이 이등 시민 정체성 및 극우화의 당사자로 등장하는 역설이 일어난 것이다.

/홍찬숙 (사)한국여성연구소

 


 

이 대회의 의의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먼저 온 통일=통일역군’ 담론이아말로 대표적인 분단체제의 담론이라는 점을 공론화한 점이다. 그간 탈북민의 대북 전단살포, 현실 부적응과 과잉정치화문제에 대해 우리사회는 혐오라는 감정으로 대응해왔다. 이 대회에서 국가정책의 문제점을 성찰하고 기존담론의 한계를 지적함으로서 탈북민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둘째, 오늘날 ‘누가 한반도를 평화 시대로 이끌어갈 것인가?’ 라는 이행주체 담론을 제기한 점이다. 소수자인 탈북민은 물론 남과 북의 주민, 이주민 등 한반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이제 ‘한반도 시민’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우리의 미래로 삼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향후 학계와 평화운동 실천현장에서 더 많은 이행주체 담론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화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위원

 


이번 행사 내용과 발표된 논문들은 유튜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논문 과 자료집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 https://www.youtube.com/channel/UC06So1Hd3BLobYFpCiNcc7A

 

/정찬흥 인천일보 논설위원 겸 평화연구원 준비위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