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묵 인천 콘서트챔버 대표

트로트 열풍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세대를 초월한 음악 장르의 유행은 3대가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구실을 마련해 주었다. 한국의 대중음악 장르인 트로트는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트로트는 서양의 음악을 기초로 설정하여 폭스트로트 리듬을 주로 사용하고, 한국 전통음악의 정서와 일본 대중음악 장르인 엔카(演歌)가 혼합된 장르다. 즉 여러 장르의 음악과 정서가 버무려져 탄생한 한국의 대중음악이다.

그런데 트로트를 엔카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엔카와 트로트는 신기할 정도로 닮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두 장르의 상호관계에 대한 논쟁거리는 무수하다. 그렇다면 엔카는 어떻게 일본의 대중음악으로 자리잡으며 트로트와 연을 맺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를 들여다보기 위해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2년 인천 제물포에는 일본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건너온 7살 소년이 있었다. 인천 중구 답동에 위치한 신흥초등학교의 전신인 일본인아사히소학교에서 수학하고, 중등 시절에는 서울 생활을 하며 꼬박 10년을 한국에서 살았던 엔카의 대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의 이야기다.

마사오는 주로 서양 악기인 기타를 활용하여 서양 음악 선율에 일본 정서를 혼합시킨 '고가 스타일'의 음악작품을 창작 발표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엔카의 표본이 되어 많은 인기를 누려 일본의 대중음악 장르로 자리잡았다. 나아가 우리나라 트로트 장르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마사오가 유년 시절 인천에서 거주했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문화에서 작품 활동에 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이다. 그의 예술관을 저술한 <고가마사오예술대관>에서 “유년 시절 조선인의 흥얼거리는 민요를 들었고, 이후 작곡 활동 때 도움이 되었다”라는 대목이 그 예시다. 또한 한국의 아리랑 선율을 마사오 풍으로 편곡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을 지속해서 이어갔다.

이처럼 엔카의 대부인 마사오 작품 활동을 돌아봤을 때 어디까지를 한국문화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일본으로 뻗어간 우리의 정서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여 다시 한국에 수입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 과정에서 양국의 정서는 융합되어 새로운 문화작품을 만들어 냈다. 때문에 한국적인 것과 한국적이지 않은 것을 해부하는 작업, 즉 엔카에서 '어떤 것이 한국적인가' 등의 질문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취향은 변하기 마련이다. 초창기 트로트는 '한'의 정서를 주로 노래했지만, 근래에는 '흥'으로 정서가 바뀌는 추세처럼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 문화에 학습된 결과다. 기존 문화의 일반화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와 결과물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시대를 이끄는 예술적 선구자가 된다. 그들의 문화양식을 공유하며 도식화할 수 없이 복잡한 연결고리로 이어진 것. 그렇게 탄생해 공유되고 훈련된 결과를 '유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엔카와 트로트 모두 선구자들의 작품 활동에서 시작된 시대의 유행 장르이다. 중요한 것은 '엔카와 트로트 중 무엇이 먼저인가', '한국과 일본의 정서 중 무엇이 먼저인가'의 확산주의적인 시각과 이분법적인 답을 찾기보다는 현상이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고민하는 것이 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현 시대에서 옛 유행가의 재유행이 주는 의미는 현재 사회가 학습되고 훈련된 과정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문화 쟁점을 논할 수 있다. 엔카와 트로트는 닮은 구석이 많다. 하지만 그보다 지금 옛 장르를 조명하는 이유에 관심 갖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