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한창일 시점에서 역사적인 대륙횡단철도 건설사업에 서명했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인력에만 의존해야 했던 당시의 토목기술로 3000km에 달하는 철도를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정부는 철도 양쪽 32km의 땅을 철도건설회사에 무상으로 불하하고 건설비를 융자하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다. ▶우여곡절 끝에 유니언 퍼시픽은 아이오와주의 카운슬불러프스에서 서쪽으로, 센트럴 퍼시픽은 캘리포니아주의 세크라멘토에서 동쪽으로 철도를 건설해가기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난공사와 인력난을 극복하고 1869년 5월10일 동과 서에서 건설해온 철도가 유타주의 프리몬터리에서 만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속에 연결점에 순금으로 제작된 지주못을 박는 기념행사가 열렸고 철도회사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그 후 미국 전역에서는 철도건설 붐이 시작되었고 1865년에 5만6000km에 달하던 철도가 1900년에는 32만km에 육박하면서 철도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 개통된 일본의 고속열차 신칸센(新幹線)은 도쿄와 오사카를 2시간대에 주파하는 세계신기록을 수립해 일본을 철도 선진국으로 등극시켰다. 그후 일본의 주요 도시들은 신칸센을 유치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는데 당시 건설장관을 지낸 정계의 거물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가 그의 선거구인 니가타(新潟)에 신칸센 연결을 성공시킨 일화는 아직도 일본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1981년도에 파리와 리옹간의 초고속열차 TGV를 선보인 프랑스에서도 시속 300km의 TGV를 유치하기 위한 도시간의 경쟁이 치열했다. 마르세유, 보르도, 스트라스부르그, 니스 같은 도시간의 보이지 않는 대결에 정치인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과거 국회의원 선거 때 다리를 놓는다거나 도로포장을 하겠다는 공약 대신 근년에는 철도를 신설하겠다던가 지하철 노선을 연장하겠다는 공약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경제개발과정에서 철도보다는 도로건설에 치중했던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특히 광역 철도망이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선거공약으로 쏟아내는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도시 및 광역철도 건설계획을 철저한 검증 없이 보도하는 언론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철도건설이야말로 정치인 개인보다는 집권당과 정부가 책임을 지고 결정하고 발표하는 관행이 정착되었으면 한다.

 

언론인 신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