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되풀이된다는 쓴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때로는 점진적으로, 때로는 비약적으로 많은 변화와 전진이 있습니다."
31일 오전 11시3분쯤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 묘역에 그의 육성이 울려퍼졌다. 60년 전 같은 시각 서대문형무소에서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죽산의 못다 이룬 꿈이었다.
죽산 탄생 120년, 서거 60년을 맞아 추모식이 열린 이날 죽산 묘역에는 그를 따르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평화통일을 주창하고, 골고루 잘사는 사회를 건설하려던 죽산의 시대정신이 6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절실한 까닭이다. ▶관련기사 3면
곽정근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복지국가와 평화적 통일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지만, 죽산 선생의 철학은 지난 60년 동안 참으로 많은 홀대와 무관심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이제라도 선생의 올곧은 사상과 철학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통일과 경제체제 기반을 다지는 데 헌신한 죽산을 기리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추도사를 통해 "오늘의 작은 남북 간의 신뢰는 어렵게 싹튼 것이다. 당장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공동운명체임을 죽산 선생이, 몽양 선생이 오래 전부터 가르쳐주셨다"고 했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은 "죽산 선생이 초대 농림부장관으로서 집요한 반대를 뚫고 단행한 농지개혁으로 자작농지가 96%가 되면서 농민들은 경자유전의 시대를 구가했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에 문재인 대통령은 3년째 화환을 보내 죽산의 뜻을 기렸다. 문희상 국회의장뿐 아니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대표 이름의 화환도 놓였다.
하지만 지난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에도 죽산의 명예회복을 완결 지을 독립유공자 서훈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정부 수립과 제헌국회 기반을 다진 공로도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죽산 외손녀인 이성란(59)씨는 "역사와 함께 진실도 묻혔다. 정부를 이해할 수 없고, 이제 정치인들의 말도 반신반의하게 된다"고 말했다.
2년 연속 추모식에 참석한 박남춘 인천시장은 "선생의 독립유공훈장 추서가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도록 관련 기관·단체와 노력하겠다"며 "선생의 명예를 회복하고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릴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쓸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순민·김은희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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