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초대석] '대만 한인 100년사' 발간 임병옥 중화민국한인회장
[금요초대석] '대만 한인 100년사' 발간 임병옥 중화민국한인회장
  • 여승철
  • 승인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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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흔적 … 한인의 이름으로 묶고 싶었다
▲ 임병옥 중화민국한인회장은 "대만 한인들의 100년동안 삶의 흔적과 자료, 기록 등을 묶어 <대만 한인 100년사>를 출간하게 됐다"며 "100년사 발간을 계기로 대만의 한인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복이후 귀국 못한 1세대 교민들

대만한교협회 설립해 40년간 운영
1989년 다시 생겼다 2011년 와해

취임직후 100년사 준비해 3년걸려
정체성 심어 미래세대에 전해줘야



"대만에 한인들이 건너와 정착한지 100년이 됐지만 교민들에 대한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모아진게 없었습니다. 물론 요즘 세대들이 즐겨 찾는 온라인의 자료들은 산발적이고 흩어져 있을 뿐이어서 선대들의 삶의 흔적과 함께 각종 자료나 기록 등의 역사를 하나의 책으로 묶어 미래세대에게 전해주고 한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또 대만 한인들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대만 한인 100년사>를 출간하게 됐습니다."

대만의 한인사회 100년의 여정을 담은 <대만 한인 100년사> 출간을 주도하고 있는 중화민국한인회 임병옥 회장은 "지난 2016년 5월, 2대 한인회장에 취임하면서 발간을 생각하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려 출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보람과 함께 편찬위원회 구성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17명의 필진을 선임하고 원고를 수정하며 겪은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임 회장은 지난해 3대회장으로 연임했다. "100년사를 발간하는데 고작 3대회장이라니요"라는 의문에 임 회장은 웃으며 대만한인사회가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기록을 보면 일제시대 대만에 살았던 사람들은 영역, 지역별로 단체들이 난립해 있었어요. 1945년 광복이 됐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있던 사람들이 교민 1세대입니다. 그분들이 1947년에 대만한교협회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당시 일본사람으로 오해와 피해를 받게 되자 스스로 보호하고 자생력을 갖추려고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1987년까지 40년동안 순탄하게 운영이 됐는데 문제가 생겨 대만한교협회가 와해됐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도에 중화민국한교협회라는 두 번째 교민단체가 생겨서 교민들을 위해 일을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2011년에 다시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2013년에 2년의 공백을 딛고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는데 바로 중화민국한인회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종태 대만한인경제인연합회 회장의 강력한 추진으로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임 회장은 대만 한인사회는 100여년간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자리잡아 지금은 다양한 세대들이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며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관련 사료에는 1729년에 전남 해변가에 살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하던중 풍랑을 만나 대만에 상륙했다가 돌아간 기록이 있습니다. 대만에 정착을 하게된 건 1900년대 초부터 인삼장사들이 왔고 일제강점기의 징용과 1945년 광복후에는 주로 어부들이었는데 대부분 육체노동자들이어서 매우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이후 1960년대가 지나면서 유학생들과 태권도 보급을 위한 사범들이 많이 왔는데 이들은 한국에서 일정 수준이상 교육을 받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후 국제결혼으로 다문화가정을 이룬 교민들과 함께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최근에는 한류 바람을 타고 요식업이나 한류상품에 관한 비즈니스를 하는 상사(商社)의 주재원도 많이 있습니다."

임 회장의 설명대로 대만한인사회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 한국전쟁, 유신시대와 민주화 과정, 남북대치 시기와 최근의 회해 분위기 등 조국의 역사와 비슷하게 순탄치 않은 세월을 겪어왔다. 특히 한국-중국 관계와 중국-대만 관계가 맞물려 있는 현장에서 1992년 한국-대만 단교(斷交)이후 한동안은 대만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고 회고했다.

"단교 전까지는 박정희 대통령과 장개석 총통이 서로 맹방(盟邦)이라 부르며 무척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단교시점에는 노태우 정부가 국익을 위해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대만에는 '우리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해서 옛 친구를 버리지 않는다'고 장담 해놓고 뒤집어 버리니까 당시 교민들은 알게모르게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대만사람들이 초등학교에 달걀을 던지고 태극기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교민들은 외출을 자제해야 했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당시 어르신들은 '왜 그렇게 어리석게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양국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픈 과거를 딛고 호전됐다. 상호 방문인구가 급격하게 늘어 한해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왕래가 잦다보니 서로 이해하게 되고 우호적이 됐다. 최근에는 한류바람이 불면서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경제적으로는 교역량도 크게 늘어 양국이 5~6대 교역국이 됐다.

"현재 대만에는 5500여명의 한인들이 정착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적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일하는 무역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서비스업, 유학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임 회장은 출간 때문에 인천을 찾을 때마다 화교협회를 방문해서 앞으로 교류에 대해 논의했다.

"인천에는 차이나타운, 화교학교, 한중문화원 등이 있고 화교 1세대의 대부분이 중국 산동성 출신이지만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대만에 정착한 분들이 많습니다. 1992년에 서울의 한성화교협회와 중화민국화교협회가 자매결연을 맺어 상호 비자문제를 해결했던 기록이 있는데, 중화민국한인회와 인천화교협회도 교류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는만큼 방법을 찾아볼 계획입니다."

전남 광주의 무등산 밑 동네가 고향이라는 임 회장은 1991년 반도체 회사의 홍콩 주재원으로 나갔다가 '나만의 아이템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해서 1994년 대만에 정착한 뒤 26년째 살고 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전자 관련 부품을 가져와 대만에서 파는 무역업을 하고 있습니다. 60살이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제가 58년 개띠니까 이미 나이 60이 넘어버렸지만 일을 할 수 있는 동안 대만에 있는게 낫겠다 싶어 몇 년 더 머무를 예정입니다."

임 회장의 임기는 내년 4월말이지만 올 연말에 새로운 회장을 선출해서 한인회장을 물러날 계획이다. 숙원사업이던 <대만 한인 100년사>를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가졌던 부담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신임 회장에게 새로운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6월말이나 7월초에 책이 발간이 되면 언론에도 알리고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진 뒤 대만에서 한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출판기념회를 다시 열 계획입니다. 100년사 발간을 계기로 대만 한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알게 되고 카오슝 등 지역 한인회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대만 교민사회 구심점이 되고 있는 '중화민국한인회'는 지난 2013년 발족했다. 1948년 '대만한교협회'가 출범했지만 이후 '대만성한교협회'와 '중화민국한교협회'로 바뀌었고 2011년 '중화민국한교협회'의 운영이 파행 상태가 되면서 현재의 '중화민국한인회'가 탄생했다.

대만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인적 구성을 보면 크게 3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세대는 일제시대 강제징용, 일본의 패전으로 남양에서 귀국하다 대만에 내린 징용병, 1949년 국민당 정부를 따라 이주해 온 사람들의 후손들로 대만한교협회에 깊은 향수를 지니고 있다.

제2세대는 한국과 대만의 우호관계로 인적교류가 이루어진 시기에 회사 주재원이나 유학으로 왔다가 현지에서 혼인 혹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세대로 1세대와 함께 중화민국한교협회를 이루었다.

제3세대는 1992년 한국과 대만 단교(斷交)이후 세대로 1980년대 말부터 유학 또는 업무로 와서 독립을 했거나 2000년대 초 시작된 한류열풍을 따라 온 사람들과, 대만인을 배우자로 선택하여 정착한 사람들이다.

중화민국한인회는 3세대 중심으로 태동됐다. 기존 한교협회가 1·2세대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새로 온 한인들과 하나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중화민국한인회는 3세대는 물론 대다수를 이루는 주재 상사원과 유학생을 영입해 포용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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