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고 늦은 건 아니죠 … 놓쳤던 주변을 볼 수 있으니
▲ 육상부 선후배인 수지(왼쪽)와 만복(가운데)이 훈련 중 삼각관계의 중심에 놓여있는 중국집 배달부 효길과 마주치는 장면은 강화 외포리 해안도로에서 촬영됐다. 촬영은 해넘이 시간대와 겹쳐 외포리 해안도로는 더욱 빛을 발한다.

 

▲ 강화소녀 만복은 선천적 멀미 중후군으로 인해 버스를 타지 못하고 2시간씩 걸리는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닌다.


"걷는 게 만복이라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근리 지석묘를 비롯하여 역사적인 유물들이 곳곳에 분포된 강화도에서 '걷기왕'이 탄생했다.

영화 '걷기왕'은 무조건 '빨리', '열심히'를 강요하는 세상,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여고생 '만복(심은경)'이 담임선생님(김새벽)의 권유로 학교 육상부에 들어가게 된다.

원래 마라톤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종목을 바꾼 '경보(競步)'선수인 선배 수지(박주희)를 따라 훈련을 시작하고 자신의 삶에 울린 '경보(警報)'를 통해 고군분투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이야기다.

'선천적 멀미증후군을 가진 여고생'의 이야기라는 참신한 소재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고 '걷기왕'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제목과 걸음수 측정기 '만보기'를 연상케 하는 '만복'이라는 주인공 이름이 눈길을 끈다.

'걷기'라는 평범한 재능으로 남들과 조금 다르지만 자신의 속도를 찾아가는 만복이와 함께 스스로의 '길과 속도'를 찾아 걸어가보자.


# 1장 걷는 걸 잘한대

선천적 멀미증후군을 앍고 있는 만복은 4살 때부터 세상의 모든 이동수단만 타게 되면 심하게 멀미를 앓고 구토를 하게된다.

자동차는 물론 경운기, 자전거 심지어 소까지 타봤지만 멀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초등학교 때는 '토쟁이'라는 별명까지 얻게된다.

세월이 흘러 만복은 고등학생이 됐고 집에서 걸어서 2시간이나 걸리는 학교까지 왕복 4시간을 걸어 통학한다.

들판을 가로지르고 큰 산도 하나 넘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거리를 2시간씩 걸어다니다보니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수업시간에는 피곤해 항상 자기 일쑤다.

만복과 상담을 한 담임선생님은 가난 때문에 걸어다닌다고 생각하고 만복과 함께 걸어서 집을 방문한다.

만복의 걷기 능력에 감탄한 담임선생님은 공부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만복에게 딱맞는 '경보'를 하라며 육상부 가입을 추천하고 만복은 마땅히 뭘 해야할지 몰라서 아무 생각없이 육상부에 가입한다.

만복은 경보를 통해 '멀미도 극복하고 도전할 것이 생겼다'는 기쁨에 뒤늦게 의지를 불태운다.

동해에 해돋이가 있다면 서해에는 해넘이가 있다. 강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석양포인트를 찾는다면 장화리 일몰 조망지로 가자.

외세의 침략을 끈질기게 지켜냈던 강화의 치열했던 시간들 속에서 아름답게 저무는 해를 보면 상서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다.


# 2장 육상은 힘들어

육상부에는 에이스인 선배 수지가 있다. '수파르타'로 불리는 수지는 아무런 노력없이 덜컥 육상부에 들어와 경보를 하겠다는 만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까칠하게 대한다.

수지는 코치에게 만복에 대한 비난을 하며 육상부에서 퇴출시키라고 요구하는데 우연히 이 대화를 듣게된 만복은 경보가 좋아지기 시작했지만 육상부를 나온다.

육상부를 나온 만복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만 자는 세월을 보낸다.

만복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걷기임을 알게되고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다시 육상부에 가입을 요청한다.

재가입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수지는 만복에게 자신과 시합에서 이기면 재가입을 받아준다고 하지만 경보선수인 수지를 당연히 이길 수 없게된 만복은 뛰어서 이기는 반칙을 저지른다.

비록 반칙으로 이겼지만 수지는 만복의 재가입을 허락하고 재가입한 만복은 열심히 훈련하고 수지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강화 고인돌 유적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의 하나로서 사적 제 137호로 지정됐다.

북방식 고인돌로서 상고사와 고대사의 좋은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인즈 제24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 3장 연습벌레

다시 육상부에 들어간 만복이는 방학 내내 지옥훈련을 한다.

불안한 맘이 들때마다 훈련에 열중하다 엄지 발가락이 빠지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전국체전 경보대회에 참가할 인천대표를 뽑는 예선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가야하는데 버스를 타지 못하는 만복은 경기장까지 가는 버스에서 계속되는 멀미와 구토로 탈진하고 예선전 경기도중 쓰러지고 만다.

예선대회에서 수지는 1등을 했고 2, 3등을 했던 선수들이 도핑테스트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는 바람에 탈락하게 되자 참가 선수가 4명뿐이었기에 만복은 2등까지 출전자격이 주어지는 전국체전 본선에 얼떨결에 인천대표로 참가하게 된다.

만복은 예선대회를 통과했지만 본선은 서울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서울까지 가는게 문제가 된다.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이 즐거웠던 만복은 서울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수지는 동행하기로 한다.

만복과 수지가 걸어가는 '서울 가는 길'에 순무 가게를 알리는 깃발이 보인다. 순무는 임금님에게 진상한 고급 식재료로 알싸한 맛이 특색이다.

국내에서는 강화도의 흙과 해풍, 기온이 순무를 재배하기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무는 해안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섬쌀'을 비롯하여 인삼, 화문석과 함께 대표적인 강화 특산품이다.


# 마지막장 걷기왕

만복과 수지는 전국체전이 열리는 서울을 향해 하루 전날 강화도에서 서울까지 걸어간다.

걷다가 쉬는 중에 만복의 엄지발가락 발톱이 떨어지려는 부상이 더욱 심해진 것을 수지에게 들킨다.

수지는 만복에게 출전을 포기하라고 하지만 만복은 고집을 피우고 실랑이를 하다 수지를 밀어버려 부상당한 수지는 출전하지 못한다.

만복은 혼자 출전한 경보 본선에서 초반부터 빠르게 앞서나가는 오버페이스로 급격히 체력이 소모되고 발가락 부상까지 있던 만복은 10바퀴를 돌아야 하는 경기에서 마지막 한바퀴를 남긴채 쓰러진다.

주위에서 일어나라는 소리에도 누워버린 만복은 하늘을 보면서 편안한 자세로 계속 누워있는다.

벗겨진 신발 때문에 상처난 발가락을 보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보게 된 만복은 웃으면서 손카메라로 연신 비행기를 찍어댄다.

'걷기왕'은 영화의 마침표를 쉼표로 대신한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땐 '끝'이라는 마침표 대신 '강 아래의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의 강화(江華)에서 만복이처럼 쉼표를 찍어 한 템포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걷기왕' 속 명대사


만복役 심은경

# "내가 왜 그렇게 빨리 달렸던 걸까? 어쩌면 그냥 조금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 전국체전 경보 대회 도중 쓰러지고 나서 하늘의 비행기를 보며.


수지役 박주희

# "경보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지 알아? 뛰고 싶은 걸 참는 거야. 근데 참다가 질 바에는 뛰는게 나아!"

- 경보를 그만뒀다가 다시 하겠다는 만복에게 자신을 경보로 이기면 받아주겠다고 했는데, 만복이 경기 도중 뛰어서 이긴 직후.


만복 아빠役 김광규

# "사회 나가면 보충수업이 있는줄 알아? 바로 실전이야 실전."

- 육상부에 들었다가 금방 관두고 학교 보충수업을 받으러 가는 만복에게 정신력이 부족하다며.


코치役 허정도

# "순위보다는 완주를 목표로, 중간에 격차가 벌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알았지?"

- 1㎞ 직선코스를 10번 왕복하는 10㎞ 전국체전 경보 본선대회 참가한 만복에게.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사진제공=인천영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