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꾸고 달집 태우고 … 동네 그대로 '예술'

 

▲ 배다리 마을 한 복판에 있는 텃밭.


몇 해 전부터 부쩍 배다리마을로 이사를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도시 속에서 자연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봄이 시작되니 겨우내 닫혀있던 가게들도 문을 열기 시작하고, 문화공간에서는 하나 둘씩 전시가 열리고, 이에 합세하여 여기저기 들꽃들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배다리마을 한가운데에는 텃밭이 있고, 너른 풀밭이 있다. 12년이 넘게 마을을 가르는 8차선 산업도로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생겨났지만 꾸준히 주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가꿔오면서 이제는 마을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산업도로부지로 불리기도하고, 누군가에게는 생태공원, 생태숲, 마을텃밭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랫동안 방치된 다툼의 장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개발의 눈으로 보면 황금 같은 땅을 놀린다는 질타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이 개발과 속도에 편승하기보다 마을공동체를 더 중심에 두고 이웃과 함께 느리지만 지속가능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자연을 곁에 두게 된 것이다. 주민들의 광장이자 자연그대로의 예술 공간이 된 것이다.

이 곳에서는 계절별로 무수한 풀꽃들이 피고지고 자란다. 허리를 굽혀 자세히 들여다보면 올망졸망한 꽃들이 지천이다. 자잘하게 하얗게 피어오르는 냉이꽃, 작년에 부지런히 홀씨를 날려댄 노란 민들레, 개불알꽃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앙증맞은 보라색 봄까치꽃, 목이 긴 연분홍 광대나물, 줄무늬 제비꽃도 부지런히 꽃을 피워내고 있다. 원추리와 소리쟁이도 나도 질세라 야들한 잎들을 쭈빗쭈빗 내밀고 나오느라 바쁘다. 한쪽에선 바구니를 들고 나오신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쑥을 캐는 모습도 보인다. 새순을 쪼아 먹느라고 날아든 비둘기도 한 무리다.

텃밭에선 겨울을 버틴 마늘싹과 보리싹이 올라오고, 텃밭을 가꾸는 주민들은 서로 씨앗과 꽃씨를 나누며 땀 흘릴 준비를 한다. 시골농사보단 좀 더디고 서툴지만 도시에서 그것도 마을 한가운데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그대로가 예술이며, 삶 자체가 예술이다.

또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와 각자의 색깔로 살아가니 마을자체가 예술공간이 된 것이다. 일부러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배다리가 좋아서 하나 둘 공간을 꾸리거나 삶터를 옮겨 온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텃밭을 가꾸고 집 앞 꽃밭을 돌보고 골목골목 화분에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 공간을 공유하고 재능을 나누며 흙을 빚고 옷을 짓고 커피를 내리고 나무를 깎고 책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일상이 예술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주민들이 지켜서 '마을의 예술광장'이 되어버린 산업도로부지, 생태공원이 있는 것이다. 지켜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광장으로써 쓰임을 위해 시낭송회를 열고, 아이들의 여름캠프를 열고 때론 연극무대가 되기도 하고 책 잔치를 펼치기도 하고 대보름 달집태우기로 불을 밝히기도 했다. 광장이 생기니 사람들은 각자 무대를 만들어 놀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는 이 '광장'이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궁금하다. 마을 곳곳이 갤러리고, 문화공간이지만 이보다 더 멋진 예술공간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 공간을 누리기 위해서는 함께 가꾸는 수고도 기꺼이 따라야 하겠다. 광장은 눈으로만 보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모여서 토론하고 뛰어 노는 자유로운 공간인 것이다. 배다리마을에 자연이 준 선물 같은 공간! 함께 가꿔나가며 마음껏 뛰어놀기를 바란다.

/권은숙 생활문화공간 달이네·요일가게·나비날다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