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럼] '베트남전 양민학살' 진정한 사과부터
[제물포럼] '베트남전 양민학살' 진정한 사과부터
  • 여승철
  • 승인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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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철 문화체육부장
'라이 따이한(Lai Daihan)'은 베트남 전쟁 당시 참전한 청룡·맹호·백마부대 등 한국 군인들과 '베트남 특수'를 좇아 들어간 '파월 근로자'로 불리던 한국인 민간인 가운데 일부가 베트남 여인들과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살며 낳은 혼혈아들을 경멸조로 부르는 말이다. 현재 40~50대 장년층이 된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에서는 1500명 정도로 추산하는 반면, 베트남에서는 최소 5000명에서 최대 3만명으로 추정한다.

전쟁이 끝난 후 '따이한 아버지'는 '월남에서 돌아온 새카만 김상사'가 되어 한국으로 떠나버렸고 남겨진 아이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도, 어머니의 나라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적군의 자식'이라는 조롱과 놀림의 대상이 되어 홀어머니와 함께 고난의 삶을 살아야 했다.
우리가 1950~70년대 미군들과 '양공주'로 불리던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이 무책임하게 버려져 받은 슬픔을 '라이 따이한'도 그대로 겪었다.

하지만 '라이 따이한'보다 더 큰 전쟁의 상흔으로 살아가는 베트남인들이 있었으니 바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양민 학살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이다. 인천일보가 지난달 25일부터 총 4회 분량으로 매주 목요일에 게재하고 있는 영화감독 사유진의 '베트남 학살지 평화순례기'를 보면 '베트남전 양민학살'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했었는지, 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증오심이 처참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사 감독의 순례기에 따르면 베트남의 퐁니 마을에서는 1968년 1월14일 한국군에 의해 주민 74명이 학살되고 마을이 불타버린다. 또 하미 마을에서는 1968년 2월25일 한국군에 의해 135명이 학살된다. 특히 빈호아 마을에서는 주민 430명이 한꺼번에 살해당했는데 그중 268명이 여성이었으며, 연령대별로는 182명이 어린아이였고 109명이 50~80세의 노인이었다. 이 마을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에는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는 문구를 새겨놓았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은 80여개 마을에서 9천여 명의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기록이 있고, 빈호아 마을 비롯한 60여곳의 마을에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
양민학살에 대해 당시 월맹군이 지하땅굴을 이용한 게릴라전을 통해 전혀 사람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곳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사람이 나와 쏘는 총에 아군이 사망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하면 모든 사람이 언제 적으로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는 상황논리로는 노인이나 임산부, 특히 어린아이까지 집단 학살을 자행한 책임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1960~70년대 베트남전에 참가한 한국군과 민간인 일부는 양민학살과 혼혈아 등 수천명의 베트남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존자들의 고통은 2세들에게까지 대물림되는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지난해 11월11일 APEC 정상회의 참석차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식에 영상 인사말을 통해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라며 우회적으로 사과했다. 이에 앞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간접적으로 유감을 표명했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침묵했다. 가해사실에 대한 책임 인정이나 조사·보상 방침 등은 전혀 거론조차 하지 않는 등 50년 넘도록 구체적 언급을 피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월9일 강경화 외교장관이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에 대한 정부 입장을 통해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에서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진정한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며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한결같이 바라시는 것은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라고 강조했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있듯이 한-베트남 간에도 과거사 문제가 있고, 두 문제의 공통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가해자이듯이 베트남에게는 우리가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과거 역사의 올바른 청산이 이뤄질 때 진정한 미래 지향적 관계가 세워진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해자인 우리가 베트남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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