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의 지구촌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일보사의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특종을 쓰는 보람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고 언론계에서도 한국언론의 10대 특종으로 꼽고 있는 것은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발굴된 직지심경(直指心經)이다. 1972년 유네스코가 제정한 '책의 해' 행사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책의 역사'라는 종합전시회를 기획했다.

당시 앙드레·모로와의 역사 저서들을 체계적으로 읽기 위해 국립도서관에 자주 나가면서 친하게 된 프랑스인 사서(司書)를 통해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경이 전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국제행사에서 한국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보다 무려 73년이나 앞선다는 역사적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며칠간에 걸친 확인과 보충취재를 거쳐서 본사에 송고한 기사는 1972년 5월28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하면서 세계적인 특종이 되었고 한국은 물론 모든 나라의 역사책을 다시 쓰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보충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파리 개선문 부근에서 고서상(古書商)을 하는 피에르·베레스 씨가 있었다. 국립도서관 간부의 소개로 찾게 된 베레스 고서점의 규모와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1930년에 고서점을 연 후 프랑스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희귀본이라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동양 관계 책에는 조예가 없던 베레스 씨였지만 "직지심경은 세계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책이 틀림없다"고 확인하던 그가 지난달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알바넬 프랑스 문화장관의 "우리 시대 문화의 거성(巨星)을 잃었다."는 추도사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