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의 지구촌
근대 올림픽 대회가 프랑스의 쿠베르탕 남작에 의해서 창시된 이후 아시아에서는 세 번에 걸친 올림픽이 열렸다. 개인적으로도 도쿄, 서울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을 현장에서 참관한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아시아인의 한사람으로써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1964년의 도쿄올림픽 당시 일본의 분위기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도쿄 시내의 수세식 화장실과 일본 전국의 도로 포장율 모두가 50% 미만이었을 때 신칸센(新幹線)을 개통시키고 도쿄타워를 세워 이를 올림픽대회와 절묘하게 접목시키면서 경제대국의 첫 걸음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있었다.

1988년도의 서울올림픽은 바덴바덴에서의 유치과정부터 준비기간까지 직접 참여했었기 때문에 많은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보람이 있었던 것은 80년 모스코바 84년 LA올림픽이 동서냉전의 희생양이 되어 반쪽 올림픽으로 전락된 것을 88 서울 대회가 동서진영이 동시에 참가하는 화합의 장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적 역사학자들은 분단국에서 개최되었던 서울올림픽이 동서냉전을 종식시키고 소연방과 동구권 해체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대회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13억 중국인들이 올림픽대회를 계기로 21세기의 새로운 국가 이미지를 열망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3개국 수도에서 20년 주기로 올림픽이 열린 사실도 흥미롭지만 이들 나라들이 약속이나 한 듯 올림픽 대회를 세계무대에 당당히 진출하는 계기로 삼았다는 사실을 쿠베르탕 남작이 예견했었다면 올림픽 헌장을 다르게 썼을지도 모른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