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북한의 수해로 연기됐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임박했다. 남북간 평화공존과 화해의 장을 열었던 역사적인 6·15 제1차 정상회담이 있은 지 무려 7년만의 경사다. 1차 정상회담 이후 한국정부는 평화공존과 경제통합을 사실상의 통일로 규정하고 그 실천을 위해 이른바 '한미 역할분담'과 '정경분리정책'을 채택했다.
이러한 선택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정치·군사적 틀이 미국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고 남한의 독자적인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된 현실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렇기에 국민적 공감과 기대도 컸었고, 그런즉 남북간 경제교류와 협력이 빠르게 진전됐었다. 화해와 평화의 훈풍이 분단과 냉전의 잔설을 완전히 녹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사는 진퇴를 거듭하면서 진보한다는 말대로 일직선이 아니었다. 지난 7년여 동안 나라 안팎의 수구냉전세력으로부터 역풍이 거셌다. 안에서는 '퍼주기' 시비와 폄훼가 그치질 않았고, 밖에서는 부시정권의 노골적인 대북적대정책이 민족화해와 협력의 새싹을 마구 짓밟고 성장을 방해했다. 뒤늦게나마 부시정권이 삭풍은 아무리 강해도 온화한 햇볕보다 못함을 깨달아 화해정책으로 전환하면서 다시 한반도에 훈훈한 봄바람이 찾아들고 제2차 정상회담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번 기회야말로 한반도를 집요하게 뒤덮는 불신과 적대의 암운을 말끔히 거둬내야 할 때다. 다시는 냉전과 제국주의의 유령이 준동하고 폭력과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지 않도록 결의를 새롭게 할 때다. 이런 맥락에서 제2차 정상회담의 과제는 남북의 상호신뢰기반을 구축하고 공동번영과 상생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협력방안의 제도화에 있다. 정부차원 뿐만 아니라 민간차원에서도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까지 대북경제협력은 주로 식량, 의약품 등 긴급구호물자 위주의 인도적 지원이 중심을 이뤘다. 지당한 일이었다. 기아와 병마에 시달리는 북한동포의 생존을 돕는 것 이상의 협력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빈발하는 자연재해를 고려할 때 앞으로도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만으로는 북한이 빈곤에서 탈피할 수 없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북한경제가 원조의존적인 체질이 될 우려조차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남한에서도 퍼주기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북한의 경제개발을 돕고 남한의 생산력 향상에도 기여하는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남북한은 상호보완적인 요소부존상태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자본, 기계설비, 기술의 부족으로 생산성이 낙후돼 있다. 남한은 투자기회를 찾지 못한 막대한 유휴자금이 투기를 부추기도 거품을 일으켜 경제가 불안하고 노동력과 부지난으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남한의 부동자금을 동원하여 북한의 사회경제개발, 인프라정비, 산업진흥에 활용할 수 있다면 남북한에 이익이 되는 상생의 길이 된다. 경제협력과 교류의 확대는 경제적인 공동번영뿐만 아니라 남북격차를 해소하여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장차 통일에 따른 정치적, 사회경제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경협이 확대돼 평화기반이 구축되면 한국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인도가 높아지고 외자유입이 증가해 자산가치가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대북경협에 비판적인 기득권층의 이기심도 충족시킬 것이다.
오는 제2차 정상회담은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강조한, 남한에게는 투자 기회를, 북한에게는 경제개발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원한다. /박영일인하대 교수·국제통상학부